부르심 따라서 걸어온 60여 년 동안 단 한 순간도 나그네 처지를 면해 본 일이 없는 또 하나의 히브루, 이브리, 떠도는 나그네에게 모리아 만큼한 성지는 어디 없는가? 다시 길 떠나려 한다.

가능한 일이라면 “재 창간”을 하고 싶다. 본디 “들소리”가 신문제작에 뛰어들었던 것은 자기 현재를 못다 헤아린 착오였을까?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돌파구로 선택했었다. “들소리” 10년차가 되었을 때 기성교회와의 거리가 나는데 자칫 ‘이단자’ 소리를 듣게 될 처지였다.
그때 필자는 기존의 프로테스탄트(신교) 한국교회와 들소리 운동 간의 거리감을 좁히고 교회가 지향해가는 개혁운동에 발을 맞춰보자는 뜻으로 신문 발행을 병행했었다.
그러나 곧바로 후회가 찾아왔다. 신문이란 문명구조는 교회개혁이 쉽지 않은 현실이었다. 신문발행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지면 배치를 정통 기독교 30, 유대교, 이슬람, 로마 가톨릭 등 세 교파에게 30, 기독교 밖의 비・미・타종교까지 포함 30%로 계획했으나 어림없는 일임을 곧바로 발견했다.
어찌하는가? 이미 엎질러진 물, 들소리신문은 교회의 울타리를 벗어나기 힘들었다. 주변으로부터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소리”가 요즘은 들리지 않더라구, 새소리인지, 모기소리인지, 바람소리인지를 알 수가 없어요! 왜, 그래요? 힘을 내야지….
하기 쉬운 말들이 책임자인 내 심사를 들쑤시고 있다. 20년 쯤 경영을 해오던 2001년 봄 필자는 이스라엘 키부츠로 들어가서 40여 일 간 지내면서 해법을 찾아본다면서 엎디어 꿈을 꾸기도 하고, 다윗과 요나단이 어울렸던 기브아산 동편도 거닐어 보고, 여호수아가 태양을 멈추게 했다는 골짜기에서 밤을 세우기도 하고, 네게브 사막에 들어가서 밤샘기도를 하면서 울어보았지만 버리고 떠나는 길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또 미국으로 옮겨가서…, 까지도 생각했으나 돌파구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필자에게 허락하신 시간이 남아 있다면 정면 돌파가 있을 뿐이다. 문명의 한계라고 탄식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났고, 다시 하란에서 밧단아람을 경유하여 75살에 세겜에 짐을 풀었듯이, 또 거기서 이집트로 건너가서 나일강 문명을 염탐하고 돌아와서 헤브론에 정착하여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양대 문명을 좌우 어깨로 견제하면서 “모리아 제단의 대속죄” 신학과 신앙을 인류사 앞에 제시했다. 필자 또한 세월을 후회의 눈물로 삼지 않고 길을 열어갔던그 모습을 나침반 삼아야 하지 않을까.
부르심 따라서 걸어온 60여 년 동안 단 한 순간도 나그네 처지를 면해 본 일이 없는 또 하나의 히브루, 이브리, 떠도는 나그네에게 모리아 만큼한 성지는 어디 없는가? 다시 길 떠나려 한다.
다시 재 창업을 하려드는 들소리 45년차 떠돌이에게 아직도 기다려줄 하늘이시여. 아버지여, 아직은 주님의 시간 또 나의 알숨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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