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준 목사새누리교회 담임
오세준 목사새누리교회 담임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이후로 
성경에서 건물을 성전이라고 하지 않을뿐더러 
성전 건축을 해서 바치라는 말씀은 
더더구나 없다. 
보이는 건물을 성전이라고 하는 것은 
복음의 왜곡이다.”


지금은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아직도 교회당을 성전이라고 부르는 교회가 많다. 웅장한 교회당 건물을 짓고 성전을 건축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성전을 봉헌한다며 성대하게 예배를 드린다. 이렇게 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풍토라서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다. 오히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을 이상하게 볼 정도이다. 이것이 과연 성경적으로 옳은 것일까? 오늘날도 이런 건물을 성전이라고 해야 할까?
건물을 성전이라고 하는 것은 복음을 모르는 소치일 뿐 아니라 위험한 신앙이 아닐 수 없다. “아니 이게 무엇이 문제냐?”라고 할지 모른다. 예배드리는 곳이니 거룩한 전이 아니냐고 항변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논리가 과연 옳은 것일까? 예수님이 오신 이후로 성전의 개념이 바뀌었다. 왜냐면 참 성전이신 예수님이 오셨기 때문이다(요2:21, 계21:22). 이 문제는 구약의 성전과 거기서 드린 제사를 왜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그림자라고 하는지 안다면, 이해가 쉬워진다(히9:24, 10:1).
예수님이 눈에 보이는 성전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폐하셨다.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새로운 성전을 세우셨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에게 성령을 주심으로 성전이 되게 하신다(고전3;16). 나아가 성전이 된 성도들의 공동체가 성전이다(엡2:22). 이 때문에 여전히 교회 건물을 성전이라고 하면 예수님의 구원 사역을 부정하는 것이다. 이보다 더 위험한 신앙이 어디 있는가? 이것이야말로 이단 사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왜 교회당을 성전이라고 부를까? 성전에 담긴 복음을 모르기에 그럴 수 있다. 실제로 모르고 사용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모르기 때문에 문제의식이 없다. 성전에 숨겨진 복음을 안다면 건물을 성전이라고 부를 수 없다. 만약에 알고 있으면서도 눈에 보이는 건물을 성전이라고 한다면, 속이는 것이요, 사기 치는 것이다. 
  교회당을 건축할 때 하나님의 처소인 성전을 건축한다고 해야 교인들이 반응한다. 물론 복음을 아는 교인은 그렇지 않겠지만, 복음에 우매한 교인은 성전 건축이라고 해야 그나마 헌금을 낸다. 단지 건물 짓는 것으로 이해하면, 건축 헌금에 그다지 동참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성전 건축이라는 말에 집착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교회에 건물이 필요하다. 예배와 교육과 교제, 나아가 지역 사회 섬기는 일을 위해서 공간이 요긴하다. 하지만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같이 화려하고 웅장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이긴 하지만, 웅장하고 럭셔리한 예배당을 건축하는 교회가 있다. 교회 형편과는 맞지 않게 빚을 내서 무리하게 건축하는 교회도 있다. 무리한 건축을 강행할 때는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빚을 내서라도 성전 건축에 동참하는 성도가 복을 받는다는 논리로 설득한다. 하지만 무리하게 빚을 내어 건축했다가 복은 고사하고 고통을 겪는 교회와 교인이 한둘이 아니다. 심지어 뒷감당을 못 하고 파산하여 애써 지은 건물이 경매로 넘어가기도 한다.
  진짜 하나님의 성전이라면 파산하여 경매로 팔리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당신의 집이 팔려나가는 것을 방관하시겠는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면서 팔리는 것은 성전이 아니라는 것을 반증한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이후로 성경에서 건물을 성전이라고 하지 않을뿐더러 성전 건축을 해서 바치라는 말씀은 더더구나 없다. 보이는 건물을 성전이라고 하는 것은 복음의 왜곡이다. 복음의 왜곡을 가볍게 보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헛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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