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를 통해 ‘하나님과의 만남’의 영적 세계를 만난다, 인류사에 미친 영향을 짚는다

김리아 지음/신의정원
김리아 지음/신의정원
마크 래리모어 지음/강성윤 옮김/비아
마크 래리모어 지음/강성윤 옮김/비아

교회개혁(종교개혁) 504주년을 맞이한 한국 교회의 모습은 안타깝고 부끄럽다. 루터와 칼빈을 비롯한 개혁 신앙의 선배들은 ‘바른 교회’, ‘참된 교회’운동에 목숨을 걸었다. 이제 한국 교회도 바른

고난 속에서 사람은 어떻게 자기 신앙을 지키며 하나님의 뜻에 부합할 수 있을까 하는 데 답을 주는 것으로 <욥기>를 꼽는다. 최근에 나온 두 건의 욥기 책은 같은 이야기를 다른 시각에서 풀어내고 있다.

김리아의 책은 '인내하는 신앙의 승리'나 '왜 의인은 고난을 받는가에 대한 신정론적 주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어떠한 결론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김리아는 “욥기는 개인의 경건한 의를 초월해서 하나님의 의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의로 비약하여 존재 변화를 경험한 어느 위대한 인간에 관한 이야기”라며 “불가해하고, 때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잔인하며, 도도하게 흐르는 거대한 파도 같은 삶의 한복판에서, 그 모든 것을 넘어 생과 사를 초월하여 우뚝 서 있는 창조주의 오, 그 자유로운 얼굴! 자유와 사랑의 영이신 그분을 욥은 영혼의 깊은 곳에서 만난다”고 말한다.

기존의 욥기 해석이 인간적 차원의 교훈적 요소로 머문 채 하나님의 근원적 관계 안에서 변혁되는 욥의 영적 여정이 무엇을 마주하게 되었는지를 좀처럼 드러내지 못했음을 주목한다.

특별히 인간의 의의 프레임이 갇히지 않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얼굴은 욥기를 둘러싼 우리들의 해석의 틀을 깨부수며 자신의 프레임으로 해왔던 모든 질문을 함구하게 만든다.

나만의 신앙, 은혜의 근원을 잃어버린, 자기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하나님께 실망한 우리네 신앙의 모습에 욥기의 이야기는 의문을 던지게 한다. 즉, 우리의 얄팍한 자기 의에 대한 신뢰를 압도하면서 우리가 안다고 자부했던 자신의 정체성과 하나님의 상에 의문을 던지고, 우리가 성취했던 것을 회의에 빠뜨리며, 우리가 믿고 있던 세계 전체를 붕괴시킨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현실을 마주하는 것이 회의를 넘어 근원적 관계 안으로 초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강조한다. 영혼의 어둔 밤을 통과하는 욥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티끌 같은 존재인 한 인간이 창조주의 은총으로 경험한 거룩함의 실상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요즘 많은 이들이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라는 질문을 한다고 하는데, 이 책은 그런 근원적인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이들에게 해답을 찾아갈 길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시간을 초월해 이 세상의 시원이 있는 곳, 시간이 영원과 함께 공명하며 신의 음성을 듣는 곳, 아무것에도 매일 수 없는, 인간의 의의 프레임에 갇히지 않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얼굴에 관해 눈을 뜨게 만들며, 우리의 인생을 그곳으로부터 다시 시작하라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래리모어는 욥기를 통해 욥기와 관련된 다양한 논의들을 살피며 욥기라는 저작이 인류사에 미친 영향, 그리고 인류사의 전환이 욥기 해석에 미친 영향을 다룬다.

욥기를 해석하고 활용한 과정, 욥기를 두고 논쟁하고 옹호하고 재해석한 과정, 이 고르디아스의 매듭(Gordian knor)을 풀어내려 했던 여러 해석자의 시도를 검토한다.

유대교 랍비들, 그레고리우스 교황이나 토마스 아퀴나스, 칼뱅과 같은 신학자들, 윌리엄 블레이크와 같은 예술가들, 초서, 카프카와 같은 작가들, 칸트와 같은 철학자들, 볼테르와 같은 사상가들은 이 욥기라는 수원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해석해냈다.

래리모어는 △고대 해석자들의 바라본 욥기 △욥기를 일종의 철학 담론으로 여긴 중세의 해석 △그리스도교 장례 예식에서 욥기가 지니는 의미와 종교 의례 및 일반 공연에서 욥의 역할 △근대 서구에서 신정론 문제에 바탕을 둔 종교 개념이 출현하는 과정에서 욥기가 맡게 된 상징적 역할 △역사 비평 작업이 어떻게 기존의 해석들을 뒤흔들었는지 △전 세계에 퍼진 그리스도교, 세속화된 서구 사회라는 맥락을 고려해 욥기 해석들이 지닌 생명력 등을 살핀다.

욥기의 내용을 다루고 있는 책은 무수히 많지만 욥기가 인류사에서 어떠한 식으로 해석되었는지, 그리고 인류 지성의 변화가 욥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욥기가 어떠한 사상가들과 작품에 영향을 미쳤는지까지를 학문적으로 다룬 책이라는 점에서 유의미해 보인다.

교회 운동에 뼈를 깎는 수고와 결단을 해야 할 때이다.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파괴된 성전을 재건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전의 솔로몬 성전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았던 노인들은 작고 초라한 새 성전의 터를 보며 대성통곡하였다(스 3:10~13). 그런데 하나님은 울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라고 위로하셨다(학 2:9). 그런데 이후의 역사를 보면 스룹바벨 성전의 외적 아름다움이 솔로몬 성전을 뛰어넘은 적이 없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 
세계 교회사에 기록될 만큼 부흥하던 한국 교회가 초고속으로 쇠퇴하고 있다. 코로나 위기까지 덮쳐 이제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십자가만 세우면 사람들이 몰려오고, 아이들이 바글거리던 옛날을 생각하면 눈물이 흐른다. 한국 교회의 이전 영광은 사라진 듯하다. 그런 절망 가운데 있는 한국 교회에 하나님은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라고 하신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성전의 외형보다 중심을 보신다. 스룹바벨 성전 때에 예수님이 탄생하시고, 성전을 드나들며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셨다. 하나님의 눈에는 예수님 모신 성전, 예수님과 가까운 성전이 영광스러운 성전이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성전 운동에 집착하시는 분이 아니다. 어느 때든지 성도들이 성전을 우상화하고 주님과 멀어지면 가차 없이 성전을 버리고 말았다. 결국 스룹바벨 성전도 무너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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