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위에 승부수를 놓기로 하자

낡은 시대의 퇴장에 이어 새로운 출발선에 선다. 늘 그랬듯이 이 충격이 또 지나가면 가는 것이라고 쉽게 생각하려 들지 마라.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어디에 있겠느냐 하지도 마라. 세상살이란  호락호락 하지 않다. 혹시  주변으로 부터 저항이나 공격이 없으니까 이만큼 살아가는 것도 주님의 은혜라고 안도하기에는 오늘의 한국교회 현실은 너무나 절박하다. 이념 제국화 하려드는 좌파 정치 세력들과 전통세력들 간에 균형 잡힌 역학관계를 마련해 주어야 할 터인데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다. 

한국교회는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얼마나 많은 희생을 했는가를 미처 다 모르는 것일까.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지난 2020년 1월 이후 세계는 코로나 19라는 흉악한 질병에 지금까지 고통하고 있다. 팬데믹 현상이다. 인류 전체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3 년째 되었으나 아직도 우리는 이 우환과 질병에서 언제 쯤 벗어날 수 있을까를 모르고 있다.

해가 바뀌는 2022년 1월 초 대강의 통계가 정리되었는데 2억 5천여만 명의 확진자와 550여만 명 이상의 사망자로 확인 되고 있다 그러나 통계에 잡히지 않은 사람을 포함한다면 갑절은 더 될 것으로 계산하는 이들도 있다. 또 완치자라고 해도 정상적인 사회활동에 쉽게 참여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또 얼마나 될까?

정말 무서운 재난이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받아들이는 겸허한 자세가 필요하다. 특히 크리스천의 입장에서야 두말할 이유 없이 우리들의 책임이 절대적이라고 고백해야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스스로의 모습을 되돌아본다. 간판을 내 건지 45년 긴 시간이 흘렀다. 후회 없이 달려왔고 다른 표현으로는 후회막급한세월이기도 했다. ‘후회 없이’라는 표현으로는 처자식까지 내 팽개치고 맨 들판에 나와서 때로는 개처럼 살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고 내가 모범하여 배우는 예언자 이사야를 본받으며  살아온 세월이다. 결단코 좌우 살피며 기회를 노렸던 일 단 한 번도 없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후회스러운 날들은 있었다. 무식하고 무모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던 때도 있었으니까.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인 데 자학의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45년 동안 좀 길기는 하지만 서투르게 배우자니 세월이 생각보다 많이 흘렀다. 훈련기간으로 받아들인다. 이제 겨우 한 뼘 남아 있을까? 예측할 수 없는 내 인생의 날들을 모두 던져서 교회가 한국사의 앞날에 축복을 안겨주는 일에 동참했으면 하는 소원이 있다. 마치 바바리안(게르만 대표종파)이나 프랑크 게르만이 로마제국을 인수받아서 서유럽의 기독교 역사를 바꾸었듯이 여기 동북아시아의 중심인 대한민국에 자유와 인권 그리고 자유민주주의가 대하처럼 흐르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

한국교회여, 우리 함께 일어나자. 지금이 딱 그때이다. 주 예수께서 부르신다. 지금 대한민국 주변 중국, 러시아, 북한 등이 말하는 사회주의나 사이비 공산당 권력들은 시효가 끝나고 역사현장을 떠난 박제된 그것들의 망령들일 뿐이다.

결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두려워할 실세들이 아니다.1950년에서 1970년에 수명이 끝났고 1991년도 사망신고까지 마친 사회주의 좌파들의 유령들일 뿐이다. 그러므로 두려워 말자.

다만 한국사회가 급성장을 하다 보니 빈부의 격차가 너무 심하고 치열하게 경쟁하다가 보니 이른바 남남 갈등도 도가 넘었다는 우려가 있다. 바로 이 문제를 한국교회가 해결해 보겠다는 용기를 가져보았으면 한다.

교회는 한다. 할 수 있다. 십자가의 예수와 동반 죽음도 해낼 수 있는 은총의 자녀들인 교회가 한 번 솜씨를 발휘해 보는 것이다. 희생이다. 죽으면 죽을 수도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의 명령이다. 교회는 빈부의 격차를 바라만 보고 있을수 없다. 어떻게 부자와 가난한 형제들을 한 밥상에 마주 앉을수 있게 하나. 교회는 어버이나 큰 형님의 마음으로 국민을 대하는 자세를 늘 가져야 한다.

소위 남남 갈등이라는 말 더는 하지 말자. 그리스도인들이 1천여만명이 사는 곳에서 나머지 4천여만명의 갈등 정도는 조정하고 해결할 수는 있어야 한다. 코로나와 함께 찾아온 비대면 시대의 은총이 예배당에 웅크리고 있던 신자들을 사회현장으로 내 보내심도 하나님의 섭리일 수 있다.

자 우리 이제 현장에서 만나는 시간이 많기를 바란다. 시대의 요구에 쫓기고 하나님께 멱살을 잡히는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이 또한 은총일지니 우리 모두 아멘으로 화답하자.

인류 전체가 떨고 있는 코로나는 물론이고, 아직은 성장 과정에 있는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우리 주변을 둘러싼 사회주의 국가들 틈에서 남북 간의 생사를 건 투쟁, 남남 간의 갈등, 교회 내부의 분열 등 이건 사면초가가 아니라 백척간두라 해야 할 것 같다. 도무지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 기간에 교회들이 30 퍼센트 이상이 문을 닫았다 해도 놀라거나 고민하지도 않는 교회들 분위기인데도 어떤 사람들은 한교총 대표회장 출마자격에 현직 교단장이 아니어도 1억 5천만 원 내놓으면 자격요건이 된다는 논의나 하고 있으면 될 일인가.

다시 말하거니와 한국교회는 대한민국이 인권과 자유, 시장경쟁이 작동하는 자유민주주의를 지켜갈 수 있는 일에 전적으로 동참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유민주주의 체제 아래서만 선교와 신앙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여 !벌써 2022년 1월 중순으로 간다. 지금 여러분의 눈에 무엇이 보이는가? 자칫 앞으로 무위로 세월만 홀로 흘러가 버리면 돌이킬 수 없는 날들이 우리의 길목을 막아설 수 있다.러시아 혁명이 일어났던 1917년 까지 러시아는 99 퍼센트가 기독교 신자였다. 중국은 어떤가? 1949 공산당 혁명이 일어났을 때 중국교회는 오늘의 한국교회보다 교세가 더 좋았었다.1945년 북한이 김일성 지배로 들어갔을 때까지 한국에는 북한지역에만 교회가 있다할 정도였었다. 그만큼 북한지역은 기독교 왕국이었다. 그러나 지금 북한에 기독교 신자 보이던가?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코로나 시대 전후를 겪으면서도 깨달음의 표현이 없다면 지금의 힌국교회는 죽은 거나 마찬가지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코로나 19 재앙은 하나님께서 기독교를 철저하게 심판하신 것이다.

기독교는 큰소리만 치고 늘 책임을 회피한다. 지금 세계는 빈부격차가 극심하다. 빈곤 인구가 30퍼센트, 한 끼만 더 굶으면 죽을 수 있는 절대 기아 인구는 10억 명이다.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 등의 무정부 상태, 빈곤과 종족과 종교의 갈등을 들여다보면 기독교나 기독교 국가들이 훨씬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 이 모든 것을 포괄하여 한국 교회는 돌이킬 수 없는 날이 오기 전에 예수 앞에 똑바로 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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