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자가 다른 종교 사람들과 시비하는 것을 볼 때는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 입장에서 오히려 부끄러울 때가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타 종교인들과 종교시비 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잘라서 말한다면 타 종교와 시비나 하는 수준의 종교적인 확신 수준은 아직 많이 미숙한 수준이기가 쉽다.

기독교는 태생적으로 유대교와 이슬람까지 믿음의 동일한 조상을 가지고 있다. 아브라함이다. 아브라함은 유대교,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의 동일 조상이다. 아니라고 할 사람이 있을까. 구약성경 내용의 절반 가까이가 이스마엘과 에서는 물론 그들의 자손들이 주인공 또는 부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더구나 아라비아는 문명 탄생지이다. 메소포타미아 남단 수메르가 아라비아로 통하는 문명의 핵심 통로이다. 상고대 사회의 문명의 고향이 아라비아이다. 인더스의 모헨다조르 문명,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이집트는 물론 지구상의 그 어느 문명이든지 아라비아나 아프리카 문명의 상호관계가 깊다. 

종교들은 저마다 자기 종교의 우위를 고집하지만 아브라함의 유일신 집안에서는 서로 사촌의 예로써 상대를 대우함이 옳다고 본다. 서로의 자존심을 존중해 주면 시비는 저만큼 비켜 서게 된 것이다. 

인도 여행 중의 경험인데 구르나 뭉크들을 만났을 때도 서로 존중, 중국의 도교 사원 방문 때도 역시 충분한 사귐이 가능했었다. 터키에서 마주치는 무슬림들 역시 내게 괜찮은 친구들이었다. 

마음의 아량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자부심이 가득하면 세상살이가 넉넉한 법이다. 서둘러서 타종교 사람들을 사단이나 우상에게 사로잡혀 있다고 판단하면서 저들을 꾸짖거나 개종시키려고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타종교에 비판적인 주변에 대해서 너무 나무라거나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아무튼 종교는 문화와 문명양식의 옷을 입고 나타나는 것이기에 낯선 종교가 가까이 다가올 때 껄끄럽고 조심스러울 수는 있다. 조심스러운 대상은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이 예의다. 그래서 서로 먼저 존중하는 것이 좋다. 서로 인간적인 경외심을 가지고 상대를 대하면 된다. 그 정도의 분위기가 될 경우종교들 간의 지향점이야 어느 종교인들 큰 차이 있으랴. 

21세기 형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종교들과 마주 치고 사회 공동체 안에서 어울릴 때도 의연하고 당당해야 한다. 경계하거나 기피하려드는 좀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말자. 자연스럽게 ,또 자신감 넉넉한 아량을 보여야 한다.

바로 이때는 자부심과 실력이다. 주춤거리지 않기 위하여 교회에서 충분한 훈련을 해야 한다. 자유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키기 위해서도 기도와 넉넉한 교육이 필요하듯이 타 종교 특히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 이슬람을 많이 만나게 될 터인 데 아량과 너그러움을 가지고 리더십을 발휘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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