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 또는 편 가르기는 여기서 잠시 멈추고 대한민국의 21세기 초 중반의 위상을 가늠해 보자. 공부도 경쟁

드러난 숫자는 빙산의 일각. 무조건 20대 대통령 선거는 57% 야당 승리로 예상자료가 나타났었다. 작은 표차이로 패배했다 하지 말고, 또 승점이 아슬아슬 했다고 현기증 난다 하지도 말자. 인고의 지난 5년, 그리고 탄핵과정까지면 6년 가까운 세월이 너무 길었다. 때로는 숨을 쉴 수 없을 만큼의 고통, 심할 때는 목숨을 버려야 하는가 하는 극심한 분노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여기까지다. 그만 싸우자. 편 가르기 계속하다가는 함께 망하는 수가 있다. 싸움 또는 편 가르기는 여기서 잠시 멈추고 대한민국의 21세기 초 중반의 위상을 가늠해 보자. 공부도 경쟁, 싸움이나 투쟁도 죽기 살기 절차가 있는 법이다. 정치 무대라고 예외일 수 있을 까. 치고, 싸우고, 모략과 중상은 물론 사기술 가까운 위험한 방법까지도 때로는 등장하지만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은 다르다.

대국중심 우월주의, 북한의 왕조식 짝퉁 공산당 버릇, 러시아의 늑대들, 일본 역시 삼국시대부터 한반도 해역을 도적질해 먹고 살았던 왜구의 본성을 버리지 못한다. 중국이 찬밥 만들어버린 정주학, 그것을 금이야 옥이야 하면서 “성리학”으로 모시고 공자 흉내를 내려다가 임진전쟁 7년 동안 나라 살림 바닥 났었고, 청나라 오랑캐 타령하다가 삼전도 국치, 절박하고 피눈물 삼키며 살아온 날들을 잊지 않기로 하자.

싸움질은 멈추자. 0.73% 차이로 이겼느니 졌느니 입씨름 하지 말기로 하자. 대통령 선거 여론 조사 시작부터 끝까지 단 한 번도 정권교체 요구가 50% 미만으로 내려가지 않았으며, 거의 모든 기간 내내 50~57%였으니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표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긴급 간여를 하셨다. 여당은 물론 청와대가 막바지에 K방역 카드를 휘두르는 것을 보면서, 서글픈 권력의 종말을 보게 되었다. 불쌍한 노인들, 양로원이나 독거인 생활을 하는 가난한 병약자 늙은이들은 걸렸다 하면 젊은이들의 30배 이상 죽음의 위험이 있다는 데 왜, 며칠 더 견디다가 선거 끝난 후에 완화조치를 취하지 않고 그토록 서둘러야 했을까?

설명 그만 하자. 그리스도인들은 금번 대통령선거 유권자 57% 속에 자기는 반드시 들어갔다고 자신하는가? 그런데 어떤 목사가 신자들 중에 정부 여당의 지난 5년에 동의하고 동참하는 이들이 있음을 보고 놀라움을 느꼈다. 물론, 좋은 정책도 있었다. 특히 북한의 문을 더욱 활짝 열어 대화의 길을 열었고, 남북 권력자들이 오고 가고, 9.19 남북 군사 합의서 등을 작성하는 등 획기적인 일들이 있었다. 그러나 아쉬움과 위험성을 크게 느끼는 것은 브레이크가 없다는 점이다. 남북 대화나 함의 등의 편향성, 주적관계 모호성, 9.19 합의에 여야 합의가 없이 서둘렀다는 점은 문제였다. “비핵화 문제”를 적당히 구렁이 담 넘어가는 식으로 비켜서 버린 점 등은 대한민국의 생존을 결정적으로 위협하는 것으로 57% 거부권 대상 핵심이 된다.  
정권교체 민심 57%를 하나님의 절대수로 본다. 거부할 수 없는 그 분의 결단이다. 이는 한국교회 목회자들에게 주시는 경고가 된다. 하나님은 한국 교회와 착한 한국인 몇 명을 불쌍히 여기셔서 57% 카드를 제시하신 것이다.

짝퉁 좌파, 내로 남불 여당, 위선의 철벽인 청와대의 온갖 재주를 모두 꺾어버리신 하나님의 결단 57%는 한국교회에게 해당될 눈물어린 은총이심을 깨달아야 한다. 더 이상 방치해 둘 경우 중국의 종속이요 북한의 노리개 노릇을 하게 될 수 있는 대한민국을 한번 살펴보시고 눈물겨운 은총을 내리셨음을 받아들였으면 한다.

교회여, 권력자들을 의식하지 말고 교회의 구조를 개혁하고 변화시키자. 겨우 짝퉁 좌파에  이토록 휘둘리는 초라한 꼴 더 이상 보이지 말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권력자들이 두려워하고, 또 겸허한 자세를 취하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교회는 교회의 길을 정확하게 가야 한다. 특별히 정권을 의식하고, 여야 정치세력과 특별한 관계를 가질 필요는 없다. 복음을 가진 사람이면 그 정도를 따라 형통하면 되는 것이다. 또 광장에 나가서 정치적 발언을 할 필요도 없다.

기독교나 목사들의 이름으로 정치적 성명서를 내거나 플래카드를 들고 광장으로 나가지 않아도 된다. 그런 시간이 있으면 기도하고, 말씀을 더 깊이 탐구하고 묵상하는 일, 또 신자들과 교회당 주변 주민들의 삶을 도와주는 일 등이 먼저다. 그리고 전국에 흩어져 있는 교단 산하 지교회들과 친교를 나누는 일들이 있다.

더더욱 중요한 일은 자기가 지켜 돌보면서 가르치는 신자들을 위하여 일손이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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