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덕비전북하우스 대표
이종덕
비전북하우스 대표

오프라인 도서 판매율이 낮다는 얘기는 이제 옛날 얘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이 말을 예전에는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말로 들리면서 사람들이 글과 거리를 두고 산다고 이해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오프라인 책은 멀리할지 모르지만 SNS를 통해서 인터넷을 통해서 각종 글을 올리고 읽고 하는 일들이 일상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오프라인 책들이 독자들에게 감동으로 다가간다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지난달 양길순 시인의 시집 <자운영꽃 그리움>을 만들면서 가슴이 울컥하는 경험을 했다. 감동이 있었기에 그렇다. 목경희·목경화 자매가 쓴 <그리움의 빗장을 열고> 시집에서도 같은 감동이 있었다. 두 시집에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가족에 대한 따뜻한 사랑이 감동있는 단어들로 표현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의 예지만 이러한 감동과 기쁨을 다양한 책들의 다양한 글에서 그리고 SNS의 다양한 글에서 많은 사람들이 느낀다는 것이다.

내가 박사 논문을 지도하고 있는데 1년에 한글을 500만 자 이상을 볼 때도 있다. 그 논문들을 보면 정말 힘을 쏟고 진심을 다해 연구한 학자들이 쓴 한 글자 한 글자가 진실하게 다가와 감동을 받곤 한다. 그런데 최근에 어느 한 논문의 글 중에 ‘하나님의 구원 행위’라는 글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물론 이 연구자가 다른 저자의 책에서 인용한 글인데 전후의 글은 차치(且置)하고 한 구(句)에 ‘하나님의 구원 행위’라는 표현이 있었던 것이다. ‘행위’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 의지를 가지고 하는 짓”, “법률상의 효과 발생의 원인이 되는 의사(意思) 활동”, “환경에서 유발되는 자극에 대하여 반응하는 유기체의 행동”으로 나와 있다. 그 원작자가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하나님의 구원 행위’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자기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사전적 의미로의 ‘행위’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미 글로 나온 그의 신앙은 거기에 맞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다윗의 승전가(시 18편)라고 할 수 있는 사무엘하 22장을 보면 31절에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 ‘하나님의 도’라는 말을 한국어 번역본들을 보면 [개역 개정]과 [개역 한글]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도’라고 했고, [표준 새번역]에서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로, [공동 번역]에서는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로, [우리말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길’로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행위’라고 표현하고 있다. 물론 이런 말이 나오게 한 히브리어 성경의 단어는 ‘’이고, 이것을 영어 번역본 [KJV]이나 [NASB]에서는 ‘His way’로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원어본이든 번역본들이든 아무리 둘러봐도 ‘하나님의 행위’라고 표현된 성경은 하나도 없다. 

앞에서 말했지만 ‘행위’라는 단어의 뜻은 “사람의 의지를 가지고 하는 짓”이다. 어떻게 하나님의 뜻과 하시는 일에 대해서 ‘행위’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을까가 나는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을 소개하고 설명하는 단어에 그런 단어를 썼다는 것에 정말 화가 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과 계획을 인간의 지식과 수준과 이익에 맞추어 해석한다거나 이해하려고 한다면 구원과 별개의 삶을 살아가는 아찔함이 현실이 될 것이다.

글은 어떤 단어를 사용하느냐 그리고 어떤 문장으로 확대하느냐에 따라서 다른 사람에게 감동도 줄 수 있고, 분노와 상처도 줄 수 있다. 힘들고 어려운 세상에 꿈이 되고 기쁨이 되고 행복이 되는 글들만이 온이든 오프이든 풍성해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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