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들, 특히 50대 이하의 생각이 그전 같지 않아요. 젊은이들의 경우는 더 그렇구요. 개척교회도 아닌데 한눈에 들어오는 100~500명 사이의 교회에 출석하던 이들이 좀더 자유롭게 신앙생활하기를 원하는 것 같아요.” 

이런 현상은 아마 한국교회 전반의 변화이기도 할 것이다. 모든 마음을 다 표출하지는 못하지만 속으로 끙끙~ 속알이를 하는 목회자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목회자와 신자들과 그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대략 문제점이나 해결점을 알기는 아는 것 같다. 성경말씀을 통해 그들은 모두 주님의 부탁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주님의 사람으로서 우리는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막연하게 아는 것 같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머리’는 크고 ‘몸’은 가냘픈 비대층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신구교를 불문하고 현대인들에게 울림을 준 영성가 헨리 나우웬이 유명한 대학에서 공부를 가르치다가 장애인들이 함께 하고 있는 라르쉬 공동체에서 함께 살며 쓴 책들은 오늘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있게 한다.

또한 라르쉬 공동체를 설립한 장 바니에가 헨리 나우웬을 그곳으로 초대했다고 하는데, 장 바니에 역시도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쓴 <공동체와 성장>에서 풍부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장 바니에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계약을 맺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속에 파고들어 우리가 우리 형제자매들, 특히 희망이 없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창조되었음을 깨닫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말씀,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마 25:40)에 대해 장 바니에는 이렇게 말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어떤 신비가 존재한다... 더없이 불안하고 고통과 궁핍에 시달리는 가난한 사람들이 예수님과 동일시되고 있다. 그들의 철저한 가난, 그들의 뚜렷한 상처 속에 하나님 현존의 신비가 숨어 있다.”

장 바니에의 말이 깊고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은 그가 몸소 그런 사람들과 함께 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뤄내야 한다면 예수님이 한 말씀,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때에 따라 주민센터를 통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성금이나 물품을 보내는 것으로 다했다고 생각하지 말고 진정 내 옆, 우리 지역의 ‘보잘 것 없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 장 바니에의 말대로 ‘행위’(doing)로 무엇을 해주려고만 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지체로서 함께 있어 주는 것(being). '우는 자와 함께 울어 주는 '(롬 12:15) 사람으로 그 현장에 있어주는 것이 필요한 시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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