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협 언론위-8월의 시선으로 ‘최옥란과 수원 세 모녀’를 선정, 발표

조규홍 보건복지부 제1차관이 지난 8월 24일 복지 사각지재 발굴 전문가 간담회를 갖고 있는 모습.
조규홍 보건복지부 제1차관이 지난 8월 24일 복지 사각지재 발굴 전문가 간담회를 갖고 있는 모습.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총무 이홍정, 교회협) 언론위원회(위원장 김상균)는 8월의 시선으로 ‘최옥란과 수원 세 모녀’를 선정하여 발표했다.

지난 22년간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수급자를 우선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보완이 이루어졌으나 현 제도는 스스로 가난을 ‘떳떳하게’ 증명하지 않고는 사회권을 보장받을 수 없는 상태이며, 찾아가는 행정도 충분히 제공되지 않는 상태에서 지난 22년간 수많은 빈민들은 사람답게 살아갈 권리는 보장받지 못한 채 쓰러져갔다고 언론위는 짚었다.

그러면서 ‘8월의 시선’은 지금도 어딘가에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고통 받는 이웃이 있는 현실을 주목하면서, 이제라도 입법과 행정에서 찾아가는 복지를 만들어내기를 촉구했다.

언론위원회의 ‘주목하는 시선’에는 김당 UPI뉴스 부사장, 김태훈 지역스토리텔링 연구소장,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겸임교수, 장해랑 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정희상 시사IN 선임기자,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등이 참여하고 있으며. 이번 달의 필자는 심영섭 교수가 맡았다.

아래는 교회협 언론위가 발표한 8월의 시선으로 꼽은 ‘최옥란과 수원 세 모녀’에 대한 전문이다.

1. 빈곤을 증명하거나, 궁핍을 배려하거나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요한복음 15:15)”

남편도 두 아들도 세상을 먼저 떠나보내고 두 며느리와 남게 된 나오미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귀향이었다. 나오미의 두 며느리는 모압에서 얻은 모압인이었다. 나오미가 이들을 데리고 고향에 갈 수는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이방인에게 타향살이는 낯설고 모질기 때문이다.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모압 땅에 남아서 새롭게 출발하도록 권한다. 그러나 며느리 가운데 룻은 나오미를 따라서 이스라엘로 떠나기로 한다.

중동지방에서 부자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해야 하는 사회적 책임의 하나가 나눔이다. 부자들은 추수 때 자기 일꾼들이 곡식을 거두다가 알곡을 떨어뜨리면 줍지 않고 들판에 남겨두도록 지시한다. 들판에 떨어진 알곡은 가난한 이들이 거둬다 생계를 잇는 수단이자, 들짐승의 먹이였다. 룻은 공동체가 남겨준 들판의 알곡을 주워서 시어머니와 생활할 수 있었다. 시댁의 먼 친척인 보아스와 재혼하기까지 룻이 나오미와 생존한 경제적 토대는 공동체의 불문율이었다.

현대 사회에서 가난한 이웃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한 공동체의 불문율은 헌법을 통해 사회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헌법 제34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고, 국가는 책임지고 사회권을 보장해야 한다. 헌법은 시민 누구나 최소한의 삶을 국가에 정당하게 요구할 권리를 보장한다. 그러나 국민 개개인을 빈곤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국가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세부적인 사항은 정부에 맡겨져 있다.

두 가지의 길이 놓여있다. 보아스처럼 시어머니를 부양하며 살아야 하는 룻이 필요한 만큼 알곡을 밭고랑 사이에 떨어뜨려 놓는 것이다. 친구는 친구가 필요로 하는 일을 알고 먼저 배려하기 때문이다. 친구가 되기 위해서 소득을 증명하거나 사회적 신분을 비교할 필요는 없다. 빈곤에 몰려 생존을 위협받는 사람의 친구라면, 그가 필요로 하는 만큼 나누면 되는 법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친구에게 궁핍한 이유와 생존을 위해 필요한 수요를 증명하도록 만드는 방법이다. 이때부터는 친구가 아닌 주인과 종의 관계가 된다. 누군가에게 군림하는 관계가 형성된다.

헌법은 정부가 사회권 보장을 위해 ‘찾아가는 친구’가 될지, ‘궁핍을 증명하도록 요구하는 주인 노릇’을 할지는 온전히 정치인과 행정가에게 맡기고 있다.

2. 빈곤의 연대기, 보장받지 못한 ‘사회권’

1998년2월25일, 외환위기로 졸지에 국가부도 상태에 놓인 대한민국의 제15대 대통령으로 한국 민주화의 상징인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가 취임하였다. 김대중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의 혹독한 사실상의 ‘총독정치’를 당하면서도 경제난을 헤쳐 나갔고, 2000년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실업과 채무, 빈곤으로부터 사람답게 살 권리를 보장받도록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도입하였다. 이제는 가난하더라도 시민 누구나 최소한의 삶을 국가에 정당하게 요구할 권리를 보장받은 것이다.

그러나 2002년3월26일, 뇌성마비 여성 장애인 최옥란은 과산화수소 두 병과 수면제 20알을 복용하고 자신의 고통스런 운명을 정지시키며 비현실적인 기초생활수급액수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허울뿐인 기초생활수급의 민낯을 고발한 것이다. 1970년대 청계천에서 노동자의 권리인 ‘노동기본권을 지켜라’고 외치며 분신했던 전태일처럼 최옥란은 외롭고, 소외된 존재였지만 살아보려고 홀로 몸부림치며 ‘제발 관심을 가져달라’는 절규와 함께 본인을 희생하였다. 최옥란은 시작이었다. 비록 사회권은 법률을 통해 보장되었지만, 행정은 변하지 않았다. 가난은 가난한 자 스스로 공개적으로 증명하여야 했다.

2003년2월25일,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으로 인권변호사였던 노무현 전 의원이 취임하였다. 2004년 12월, 대구시 동구 불로동에 있는 한 단칸방 장롱 안에서 4살짜리 아이의 주검이 발견되었다. 영양실조로 인해 사망한 지 며칠이 지났고, 함께 발견된 여동생도 영양실조 상태였다. 어느덧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된 지 5년여가 되었지만, ‘극빈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여전히 엄격한 소득·재산 기준과 부양의무자 기준을 통과해야 했다. 때로는 증명할 수 없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2005년 정부는 긴급복지지원법을 제정하여 주 소득자의 사망 등으로 생계유지가 어려울 때 우선 생계비를 지원하도록 했고, 보건복지부는 보건복지콜센터 129를 신설하였다. 129는 아동학대(1391)와 노인학대(1389), 푸드뱅크(1377), 위기가정(1688-1004), 노인치매(1588-0678) 상담 전화를 하나로 통합하여, 국민 보건과 복지에 관련된 모든 상담과 정보를 제공하는 체계를 갖추었다. 2006년에는 의료급여제도에서 부정수급을 막겠다는 의도로 본인부담금 제도를 도입했다. 인권변호사의 시대에도 헌법이 보장한 사회권은 정당한 권리로 온전히 보장받지 못했다. 이때부터 기초생활수급자들은 ‘부정한 무임승차’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받고 살아야 했다. 신자유주의적 공공행정 관리의 서막이었다.

2008년2월25일,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이겨내고 평사원에서 대기업 경영인으로 성공했던 이명박 전 현대건설 회장이 제17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국민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릴 줄 알았다. 그러나 2010년 정부는 효율적인 국가경영을 위해 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한 근로능력평가제도를 도입하였다. ‘일하지 않는 자’는 국가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다는 대원칙이 제시되었다. 또 정부는 통합전산망을 구축하면서, 수급자에 대한 전수조사와 ‘일할 수 있거나, 일할 수 있는 누군가 곁에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에게는 기초생활 수급 기회를 주지 않았다. 대대적인 기초생활 수금 탈락통보가 이어졌다.

2010년10월, 건설 일용직으로 일하던 가난한 아버지가 장애를 갖게 된 아들의 수급권을 지켜주기 위해 자살했다. 그 해 겨울.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서류상 이혼 처리를 하고 1인 수급비로 함께 생활하던 노부부가 더는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2011년4월,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수급권을 받지 못하던 노인이 폐결핵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아갔지만, 치료도 받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거리에서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2011년7월, 남해 노인요양시설 에서 생활하던 70대 노인과 청주의 70대 노인은 부양의무자의 소득으로 인해 수급탈락 통보 받고서 자녀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2012년 2월, 양산의 지체장애 남성이 자녀의 소득으로 기초생활 수급에서 탈락하자 집에 불을 내고 생을 마감했고, 2012년7월엔 거제에서 한 할머니가 사위가 소득이 있다는 이유로 수급에서 탈락하자 시청 앞에서 독극물을 마시고 세상을 떠났다. 2012년9월엔 다시 서울의 한 노인이 치매 부인의 기초생활 수급 탈락을 염려해 투신했다. 그렇게 CEO의 잔혹시대가 끝났다.

2013년2월25일, 독재자의 딸인 박근혜 의원이 제18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2013년5월,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수급조차 받지 못하던 서울 돈의동 쪽방에서 한 주민이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2013년7월엔 장애등급 조정으로 수급탈락을 우려한 의정부의 한 주민이 가족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다는 글을 남기고 목숨을 끊었으며, 2013년9월엔 신장투석환자였던 부산의 한 남성이 딸의 취업으로 인한 수급탈락통보를 받고 딸에게 병원비를 부담시킬 수 없어서 생을 마감했다. 2014년1월, 아버지의 유산 때문에 기초생활 수급 신청에서 탈락하고 단칸방에서 홀로 지내던 한 뇌병변 장애인이 원효대교에서 몸을 던졌다. 2014년2월, 서울 송파구에서 세 모녀가 사망했다. 단독주택 반지하에 세들어 살던 이들은 생활고에 시달리다 집세와 공과금 70만원, 그리고 ‘죄송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떠났다. 그러나 정부는 대책보다는 2014년 부정수급 콜센터를 먼저 설치하였다. 여전히 ‘부정수급자’ 때문에 복지체계가 작동하지 않는 것처럼 몰아갔다. 정부는 100억 이상 부정수급을 적발했다고 발표했지만, 대부분 수급자가 아닌 제공기관의 부정행위였다.

기초생활수급제도가 도입된 지 15년만인 2015년 ‘송파 세 모녀 법’으로 명명된 위기가구 발굴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여론에 밀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긴급복지지원법, 사회보장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률 등 복지3법이 ‘송파 세 모녀 법’이라고 이름으로 제·개정되었다. 통합급여가 맞춤형 급여체계로 개편되었고, 단전, 단수, 보험료 체납 등 18종의 위기가구 관련 정보를 입수하여 복지사각지대를 발굴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었다. 입수 정보는 34종까지 늘었으며, 수원 세 모녀 죽음을 계기로 9월부터는 39종으로 확대했다. 또 교육급여부양의무 제도가 폐지되었다. 2017년에는 기초생활 보장 적정급여 TF를 만들어서 또다시 ‘맞춤형 부정수급자’ 사냥에 나섰다. 여전히 기초생활보장은 2.4%수준일 때였다. 그사이 가난으로 세상을 떠나는 사람은 계속 늘었다. 재난의 시대가 끊임없이 지속되었다.

2017년5월10일, 촛불혁명을 통해 문재인 변호사가 제19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2018년 정부는 복지위기가구발굴시스템을 강화하고, 주거급여부양의무자 기준도 폐지했다. 그러나 2018년4월, 충북 증평군에서 남편의 사망 이후 빚 독촉과 생활고에 시달리던 40대 여성이 세 살 난 딸과 세상을 떠났다. 2018년5월엔 경북 구미시 한 원룸에서 20대 남성과 생후 16개월로 추정되는 아기가 숨진 채 발견됐다. 복지사각지대 발굴에서도 찾아내지 못한 극빈가정이었다. 인권변호사의 시대에도 빈민은 가난을 증명해야만 구제받을 수 있었다. 2019년7월 서울 관악구에서 탈북민 모자가 사망했다. 아동수당을 신청하기 위해 세 차례나 지역 주민센터를 방문했지만, 그 누구도 기초생활 수급에 대해 설명해주지 않았다. 낯선 조국에서 그렇게 탈북민 모자는 삶을 마감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고 위험 위기가구 실태조사를 정례화하고 명예 사회복지공무원을 활성화했다. 그러나 근본적인 제도가 개선된 것은 아니다. 2020년 방배동에서 발달장애인 아들과 살던 60대 여성이 숨진 지 반년 만에 발견됐다. 이들은 주거급여 수급자였지만, 어려운 사정이 오래전 이혼한 배우자(부양의무자) 등에게 알려지는 것을 꺼려 생계·의료급여를 신청하지 않았다. 서울시는 부랴부랴 복지 수급 가구를 정기 방문하는 ‘위기가구 방문 모니터링’을 도입했다. 그러나 모니터링은 주민센터 모니터에서만 작동했다. 현장엔 사람이 없었다. 2022년4월 서울시 창신동의 한 낡은 주택에서 80대 노모와 50대 아들이 숨진 채 뒤늦게 발견되었다. 지병을 앓고 있던 두 사람은 별다른 소득 없이 낡은 주택에서 지원도 제대로 못 받고 살았다. 수도요금이 90만 원 정도 밀려있었다. 수도국 직원이 수도요금 고지를 위해 방문했지만, 응답이 없어서 쪽지만 붙이고 돌아가곤 했다. 그러다가 2022년4월22일, 이를 수상하게 여겨서 찾아갔던 다른 직원이 신고하여 죽은 지 1개월 후에야 발견되었다. 찾아가지 않는 서울시의 모니터링은 위기기구를 알아챌 수 없었다.

2022년5월10일, 재20대 대통령으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취임했다. 2022년8월21일, 경기도 수원시에 있는 한 다세대 주택에서 어머니와 두 딸이 목숨을 잃은 채 발견됐다. 중증질환을 앓고 있었고, 채무로 인한 생활고로 18개월 치 건강보험료 33만9830원이 체납되어 있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 신청 내역이나 수급을 받은 이력은 없었다. 누군가 찾아가서 건강보험료 체납추징이라도 시도했더라면, 그리고 위기가구를 주민센터에 알렸으면 막을 수 있는 죽음이었다. 그렇게 지난 22년간 수많은 빈민에게 사람답게 살아갈 권리는 보장받지 못한 채 쓰러져갔다.

3. 여전히 불안정한 기초생활 보장제도

2000년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도입된 이후 정부가 일관성 있게 추진해 온 정책은 부정수급에 대한 적발과 수급자격 박탈이었다. 2000년대 초반 유럽을 중심으로 시작된 사회보장제도의 전면적인 개혁을 계기로 우리나라에서도 사회보장제도의 등급화와 엄격한 사후관리체계를 보완적으로 도입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유럽처럼 수십 년 간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운영하면서 발생한 문제점을 보완해야 할 만큼 사회보장제도가 촘촘한 그물망을 갖춘 게 아니었다. 기초생활 보장제도는 국민의 최저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급여와 현물을 보조하는 공공부조 제도로 생계급여, 의료급여, 주거급여, 교육급여 등을 통해서 위기가정에 최저생계를 보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초생활 수급을 받을 수 있는 대상자를 소득수준과 재산, 근로능력 등을 고려하여 발굴하는 행정이 앞서야 하며, 지역사회에서 공동체 생활을 위해 체면과 사회적 평가를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는 대상자의 현실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는 기초생활 보장제도가 정착되기도 전에 부정수급 적발과 엄격한 대상자 선정에 집착하면서, 누군가의 사람답게 살아갈 권리를 빼앗아왔다.

‘가난을 몸소 이겨냈다’고 주장한 대기업 회장 출신의 대통령 시절인 2010년에 만들어진 기초생활수급대상자에 대한 엄격한 근로능력 평가는 수급자 가운데서도 일할 수 있는 몸과 일할 수 없는 몸을 점수로 구분하고 있다. 마치 건설공사 현장에 나온 일용직 일꾼처럼. 근로능력이 있는 18~64살 수급자 중 소득 활동을 하지 않을 때는 근로 능력이 있는지를 따진다. 만일 근로 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자활 사업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기초생활수급을 받을 수 있다. 정상적인 노동 시장에 참가하겠다는 의사가 있어야만 기초생활수급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기초생활수급자가 질병이나 여러 가지 이유로 노동시장에 나갈 수 없는 경우, ‘근로 능력 없음’을 스스로 증명하기란 쉽지 않다. 설령 증명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비용과 시간이 들어간다. ‘근로 능력 없음’이 증명되더라도 의료급여나 생계급여를 받기 위해서는 질병에 시달리고 있음을 반복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실제로 2012년부터 근로능력 평가를 담당하는 국민연금공단은 ‘근로능력 있음’ 판정이 2012년까지 5%수준이었다면, 2013년에는 15.2%, 2014년에는 14.2%로 3배 정도 늘어났다. 찾아가지 않고 서류를 통해 찾아오도록 만드는 행정이 낳은 반사회적인 제도이다.

정부는 2023년 사회복지 예산을 2022년보다 11조4175억 원(14.2%) 증가한 92조659억 원으로 책정했다. 사회복지 예산 중에선 기초연금 등 공적연금 예산이 37조1590억 원으로 가장 많았고 ▶노인 지원 23조1143억 원(2조6551억 원 증액) ▶기초생활보장 16조4059억 원(1조9462억 원 증액) ▶아동·보육 9조8206억 원(6386억 원 증액) ▶취약계층지원 4조6026억 원(4544억 원 증액) 순으로 늘릴 예정이다. 그러나 예산을 늘렸음에도 기초생활수급대상자를 찾아서 위기가구를 돕는 시스템은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정부는 지난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도입된 복지 사각지대를 발굴해 지원하는 ‘찾아가는 보건복지 전담팀’(찾아가는 복지팀)을 운영·관리하는 ‘주민복지서비스 개편 추진단’(복지개편단)이 2022년8월31일부로 종료하면서, 나머지 후속업무는 AI복지사에게 맡길 예정이다. 대통령 훈령인 ‘주민복지서비스 개편 추진단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 제11조(존속기한)의 기간이 종료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위기가구 발굴은 ‘찾아가지도 않고 판단하는’ AI복지사가 맡고, 근로능력 평가는 서류심사를 통해 국민연금공단이 맡는 ‘비대면 복지행정’이 확대되고 있다.

지난 22년간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송파 세 모녀 법’처럼 수급자를 우선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보완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두 명의 인권변호사가 대통령을 역임했어도 제도는 여전히 바뀌지 않아서 가난을 ‘떳떳하’ 증명하지 않고는 사회권을 보장받을 수 없는 상태이다. 더욱이 찾아가는 행정을 약속한 서울시도 주민복지센터를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이제 게으른 자는 일어나 걸어야 한다. 입법과 행정에서 찾아가는 복지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 끝 어딘가에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고통 받는 이웃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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