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그리스도인들 곧 주님의 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은 혹 어떤 죄악된 본성의 가면을 쓰고 있다면 하나님께 회개하고 영적으로 성결한 삶을 살면서 주님을 닮아가야 한다.
괜히 경건한 체, 거룩한 체 쇼하는 가면놀이를 이 시점에서 끝내자. 이 시간 이후부터는 거룩한 이중인격자로 살기를 거부하자.

박현식 목사한국목회임지연구소장
박현식 목사
한국목회임지연구소장

1930년대 미국의 경제 공황기에 나온 이야기이다. 어떤 사람이 굶주리고 오갈 데가 없어 일자리를 찾아 이리 저리로 다니다가 한 사설 동물원 주인을 찾아가서 사정 이야기를 했다.  동물원 주인은 그의 딱한 사정 이야기를 듣고 한 가지 조건을 제시하며 약속을 했다.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밥을 주겠다.’ 그는 주인의 말을 듣고 너무나도 기뻐서 ‘주인께서 무엇이든지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약속했다. 

주인은 그에게 약속을 받고 그를 데리고 창고로 가서 원숭이탈을 꺼내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것을 쓰고 원숭이 우리로 가서 마음껏 놀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절대로 소리 내어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시오’라고 당부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밥을 얻어먹기 위해서 비겁하지만 날마다 시간을 지켜 출근해 원숭이탈을 쓰고 하루 종일 놀았다. 어느덧 어색한 원숭이 노릇도 익숙해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그네를 타고 힘껏 올라갔다가 그만 실수하여 무서운 호랑이 우리에 추락했다. 그는 너무나도 놀라 말해서는 안 된다는 주인과의 약속을 깜박 잊고 ‘어머니’하고 크게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정신이 바짝 들어 호랑이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쪽 구석에 있든 호랑이는 오히려 얌전하게 그의 곁으로 오더니 속삭이듯 ‘너도 내 팔자와 같구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위하여 이렇게 자기 위장의 탈, 다른 말로 더 쉽게 설명하자면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어떤 사람은 사람들 앞에서 선의 가면을, 어떤 사람은 경건의 가면을, 어떤 사람은 지식과 명예와 권위의 가면을, 어떤 사람은 정직의 가면을, 어떤 사람은 비굴의 가면을, 어떤 사람은 청빈의 가면을 쓰고 사는 모습을 본다. 특히 목회자들의 경우 그 증세가 아주 심각한 상태다. 하지만 사람의 본성, 즉 속사람은 하나님 앞에 드러나므로 숨길 수가 없다. 이처럼 사람들은 알맹이가 없이 거짓으로 껍데기만을 치장하고 자신이 해야 할 의무를 하지 않고 직장과 사회에서 실제로는 사람들을 속여 해를 끼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겉과 속이 다른 회칠한 무덤과 같은 자들로 규정하시면서 미워하셨다(마23:25~29).

성도는 종교라는 이름, 특히 기독교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일이라고 해서 무조건 신뢰하고 추종해서는 안 된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생각하고 판단하여 그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하나님의 일인 줄을 분별해야 한다. 만일 그렇지 못한다면 결코 우리는 기독교란 이름으로 위장된 사단의 계략에 속아 그 미혹하는 자들과 함께 멸망을 피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인간들은 이처럼 표리부동한 가면을 쓰고 속이며 속고 살고 있을까? 에덴동산에서 아담의 범죄 이후 인간은 타락하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인간은 자신의 죄악을 감추려는 가면을 쓰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아담과 하와는 왜 위선의 가면을 쓰게 되었을까?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있었을 때에는 어떠한 가장된 모습도 필요치 않았다. 하지만 사단의 유혹을 받아 넘어지므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되고 나서는 자신의 죄악을 감출 가면을 쓰고 태연한 채 살게 되었던 것이다. 구약과 신약시대, 오늘날 우리들의 시대에도 거짓의 가면을 쓴 이들이나 단체는 있었다. 이처럼 사단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시키는 장본인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죄악의 가면, 즉 위선의 가면을 벗어 버릴 수가 있을까? 바울은 육신의 가면을 벗어 버릴 수 있는 길은 주님께 있다며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고후3:16)고 말씀했다. 여기서 ‘수건’은 ‘가면’을 의미한다. 그리고 ‘돌아가면(헬, 에피스트랩세)’은 ‘회심하다’란 의미가 있다. 따라서 누구든지 회개하고 성자 하나님이신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가면 수건, 즉 가면이 벗겨진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곧 주님의 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은 혹 어떤 죄악된 본성의 가면을 쓰고 있다면 하나님께 회개하고 영적으로 성결한 삶을 살면서 주님을 닮아가야 한다. 

“돈을 사랑함은 일만 악의 뿌리”라고 목이 쉬도록 외치며 청빈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던 필자가 잘 아는 한 선배 목사가 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분이 은퇴하면 살 수 있는 소형 아파드를 교회에서 마련해주었는데 “도대체 나를 어떻게 이런 식으로 대접하느냐? 서울의 최고급 대형아파트를 사달라”고 그 교회 중직자들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선배 목사님이시여! 간곡하게 부탁드린다. “당신이 쓰고 있는 청빈의 가면을 벗으라.”  “그래 나는 원래 돈을 사랑하는 사람이야”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라. 한국 교회 목회자들이여, 괜히 경건한 체, 거룩한 체 쇼하는 가면놀이를 이 시점에서 끝내자. 이 시간 이후부터는 거룩한 이중인격자로 살기를 거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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