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기 교회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장로교회이자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대성당

스코틀랜드 종교개혁 당시 장로교 교리를 채택, 건물 그대로 보존하게 돼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하기 이전인 2019년 8월 저자는 2주간 16세기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자 존 녹스의 흔적을 찾아가는 ‘존 녹스 로드’의 순례를 했다. 존 녹스는 루터와 칼뱅에 버금가는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의 상징적인 인물로, 한국교회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위대한 종교개혁자라고 저자는 밝히면서 일반 성도들이 알기 쉽게 접할 수 있는 존 녹스 관련 서적은 국내에서 흔치 않아서 저자는 여행을 준비할 때부터 일반 성도들도 함께 읽고 묵상할 수 있는 집필을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저자는 존 녹스가 갔던 길을 따라가 보면서 오늘의 위기가 일상화된 한국교회에 종교개혁 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관심 있는 성도들에게 진지한 묵상과 논의의 자료로 활용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피력했다.

이 글은 저자가 최근에 펴낸 <존 녹스 로드-영국 종교개혁지 순례> 중에서 5편을 골라 신문사에 맞게 글과 사진을 재구성했음을 밝힌다. 저자 김승호 교수는 장신대 신대원을 졸업하고 영국 케이펀리신학교와 버밍엄대학교, 켄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귀국 후 한성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하면서 장신대 등 여러 대학에 출강했다. 현재는 영남신대 신학과 교수, 목회윤리연구소 소장, <목회와 윤리> 편집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편집자 주>

 

글래스고 대성당.
글래스고 대성당.

글래스고 대성당(Glasgow Cathe-dral) 투어는 두 시간 정도면 충분하리란 생각이 들어, 2시간 주차비 3.60파운드를 주차권 발매기에 넣었다. ‘찌직 찌직’ 소리와 함께 주차권이 아래로 떨어졌다. 운전석 보드 위에 주차권을 올려놓고 거리를 가로질러 대성당 쪽으로 걸어갔다. 대성당 뜰의 넓은 광장 입구에는 커다란 동상이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데이비드 리빙스턴(David Livingston)의 동상이었다. 19세기 당시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남아프리카를 탐험했던 리빙스턴. 탐험가였던 그는 남아프리카에서 복음을 전한 선교사이기도 했다.

탐험가의 복장으로 콧수염을 길게 기른 스코틀랜드의 신사 리빙스턴은 왼손으로는 책을, 오른손으로는 모자과 코트를 들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동상 맨 아래쪽은 대리석으로 여러 단을 쌓아 놓았고, 이런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데이비드 리빙스턴, 출생 1813년, 사망 1873년>

(David Livingston, BORN 1813, DIED 1873)

데이비드 리빙스턴 상. 그 뒤가 글래스고 대성당.
데이비드 리빙스턴 상. 그 뒤가 글래스고 대성당.

글자가 새겨진 부분의 위쪽에 있는 검은색 대리석에는 리빙스턴이 아프리카인들을 돌보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었고, 그 위에는 정면을 주시하는 검은색의 리빙스턴 입상이 세워져 있었다. 리빙스턴의 모습을 올려다보면서 문득 사도바울이 떠올랐다. 선교와 탐험이라는 두 분야에서 활동한 리빙스턴처럼, 사도바울 또한 선교와 천막제조업이라는 두 분야에서 활동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도바울과 리빙스턴의 모델은 오늘날 ‘비즈니스 선교’(Business as a Mission) 혹은 ‘이중직 목회’(Bi-vocational Ministry) 개념과도 연결된다.

특히, 새천년에 들어서면서 국내에서 ‘이중직 목회’ 개념이 논의되던 초기에는 한국교회에서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20여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그런 부정적인 시각은 상당 부분 해소되었다. 이제는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상당수의 개신교 교단 총회에서 이중직 목회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는 분위기로 전환되었고, 몇몇 교단에서는 목회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이중직 목회에 대한 안내를 제공하고 있다.

2016년 필자는 국내 최초로 『이중직 목회』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에는 신학적, 성경적, 역사적, 및 실천적 차원에서 이중직 목회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중직 목회를 수행하는 목회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저술도 출간되고 있다. 또한, 2021년부터 예장 통합 교단에서 <선교형 교회 개척 사례 공모전>을 시행하여 모범적인 사례를 발굴하여 목회자들과 예비목회자들에게 새로운 유형의 교회 개척 사례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이런 경향은 급변하는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한 가지 유형의 목회만이 아니라 다양한 유형의 목회가 절실히 요구되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글래스고 대성당 입구에서 만난 리빙스턴은 이중직 목회를 연구하는 내게, 19세기 당시 탐험가와 선교사라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수행한 이중직 목회자의 한 모델로 다가왔다.

광장을 가로질러 글래스고 대성당 입구에 도착했다. 대성당 외부를 둘러싼 빛바랜 대리석은 대성당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었다. 대성당은 13세기 교회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스코틀랜드 종교개혁 당시 장로교 교리를 채택함으로, 대성당 건물이 파괴되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었다. 현재 글래스고 대성당은 스코틀랜드 장로교 소속의 교회이자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대성당으로 알려져 있다.

종교개혁 당시에 글래스고 무역상 회원들이 앞장서서 대성당 내부가 더 심각하게 파괴되지 않도록 보호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다. 당시에는 가톨릭의 성상 숭배와 과도한 교회 장식이 신앙의 본질을 벗어나게 하는 이단적 요소임을 강하게 인식함으로, 완전한 철폐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성당 내부를 과도하게 파괴하지 않고서도 개혁교회의 특징을 살린 예배를 드릴 수 있고, 개혁교회의 이상을 펼칠 수 있다는 무역상 회원들의 인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루터와 칼뱅의 종교개혁으로 인한 성상 파괴와 교회 장식물의 제거는 회중이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게 함으로 성도들을 진리의 본질로 인도하는 데 상당히 공헌했다. 그런데, 개신교가 성경과 설교에 초점을 맞춘 언어 중심의 종교, 이성적 차원을 강조하는 종교로 기울어진 반면, 정서적 차원 혹은 감성적 차원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를 상당 부분 상실하는 결과를 초래한 점도 있다. 최근 한국교회가 ‘설교,’ ‘성경읽기,’ ‘성경공부’ 등 신앙의 이성적 차원만을 강조하던 전통적인 패턴에서 벗어나, ‘성찬식’의 강조 및 ‘사진’과 ‘그림’과 ‘음악’과 ‘영화’ 등 문화예술을 통한 하나님 인식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런 변화는 이성적 차원뿐 아니라 감성적 차원이나 의지적 차원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 역시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 결과라 할 수 있다.

글래스고 대성당 내부
글래스고 대성당 내부

대성당 내부에 들어서자마자 강렬한 빛이 강단 앞에서 뿜어나오고 있었다. 그 빛은 복음서에 등장하는 장면들의 문양이 그려진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것으로, 대성당 밖에서 들어온 햇빛이었다. 강단 앞 벽면에 설치된 파이프 오르간이 유난히도 눈에 띄었다. 대리석 벽면과 예배실 곳곳에 높이 솟은 대리석 기둥들은 보는 이가 장엄함과 신비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나무 바탕에 곡선미를 자랑하는 여러 개의 줄을 질서 있게 연결한 천장 일부와 대리석 천장 일부가 하나로 조화를 이루는 모습은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내었다. 기둥 곳곳에 보이는 흠집과 대리석의 색 바랜 모습은 대성당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압도적인 예배당 분위기는 방문객에게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모든 죄가 낱낱이 드러난 자신’을 자각하게 하여, 자연스레 옷깃을 여미게 했다. 대성당의 실내 분위기에 압도된 채, 회중석 곳곳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조용히 눈을 감고 기도하는 사람, 정면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응시하고 있는 사람, 신기한 듯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가며 사방을 둘러보는 사람, 그리고 성스러운 분위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바쁘게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사람 등.

계단을 따라 내려간 지하에는 대예배실과는 다른 작고 아담한 크기의 채플이 있었다. 예배당 곳곳을 돌아보면서, 작은 부분 하나에도 심혈을 기울인 장인의 섬세한 손길이 건물 곳곳에 스며들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시대적 환란과 절망 속에서도 이곳을 드나들며 눈물 뿌려 기도하던 신앙의 용사들, 그들의 기도 소리가 여전히 예배당의 한 공간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글래스고 대성당은 글래스고의 역사, 스코틀랜드의 역사를 품에 안고서 다소 낡았지만 웅장한 모습으로 떡하니 그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이들에게, 글래스고 대성당은 스코틀랜드를 지탱해온 영적 토대가 바로 신앙의 힘이었음을 증언하고 있었다. 비록 예배당 내부의 각종 성상과 과도한 장식물은 제거되었지만, 오랜 세월 개신교 예배당으로 사용되어 온 글래스고 대성당은 스코틀랜드의 신앙 유산을 가득 담은 신앙의 보고였다. 이처럼 신앙 역사를 간직한 예배당은 이곳을 드나드는 이들에게, 이 세상뿐 아니라 이 세상 이후의 삶을 바라보고 살아갈 힘과 용기를 제공해 주고 있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모든 예배당 건물은 신앙의 역사를 담고 있다. 지금까지 방문해 본 예배당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곳은 어디인가? 그리고 그 예배당에서 어떤 점이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는가?

2. 내가 출석하는(출석했던) 교회의 예배당에 남아 있는 나의 신앙 이야기는 무엇인가? 그 이야기는 오늘의 내 신앙과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는가?

 

* 본 내용은 김승호, <존 녹스 로드: 영국 종교개혁지 순례>(하명출판사) 3장 내용과 사진을 재구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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