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믿음과 거룩한 행실은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는 신앙의 자세이다. 성탄절을 맞는 우리는 깨어 재림의 주님을 맞이할 수 있어야 한다.

동인교회 윤형식 목사
동인교회 윤형식 목사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BC31-AD14)는 가장 위대한 로마 황제 중 한 사람이었다. 그가 황제로 있고 퀴리니우스가 수리아 총독으로 있을 때, 로마는 병역과 세금을 위해 인구조사를 했다. 로마가 인구조사를 할 때면, 유대인들은 각기 조상들의 고향에서 호적(戶籍)을 하게 된다. 다윗 가문인 요셉과 마리아는 호적하러 베들레헴으로 가게 되었다. 당시에 마리아는 성령으로 잉태된 상태였고, 출산 일이 가까운 상황이었다. 예수님은 베들레헴(떡의 집)에서 탄생하시게 되었다.

교회들은 성탄절 전 4주간을 대강절(the advent:혹은 대림절)로 지키는데, 대강절은 ‘도착, 오다’를 의미의 라틴어 Adventus에서 유래했다. 이 절기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기다리듯, 재림의 주로 다시 오실 것을 기다리며 보낸다. 대강절은 초림의 주님을 기억하고, 다시 오실 예수님의 강림을 고대하는 절기이다. 예수님의 초림을 준비 없이 맞았기에 다시 오실 주님은 맞을 준비를 하자는 의미로 지키는 절기가 대강절 기간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 준비한 사람들이 많지 않다. 마리아가 출산 당시에 예수님을 맞을 준비는 요셉과 마리아뿐이며, 그들이 준비한 강보(σπαργανόω)가 전부였다. 강보는 붕대와 같이 작고 긴 천 조각으로 우리의 배냇저고리 혹은 아기 이불과 같은 역할을 한다. 유대인은 아이를 낳으면 천으로 아이를 감싸는데, 이는 추위 혹은 세균 감염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산모들은 성경 말씀이나 아이의 이름을 강보에 수를 놓으며 출산을 준비하곤 했다.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은 호적령으로 인해 여행 중에 탄생하심으로, 마리아가 준비한 강보 외에는 아무것도 준비되지 못한 상황에서 태어나셨다. 

이와 같이 재림의 주님께서도 언제 오실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초림의 주님은 준비하지 못했어도 죄인을 부르러 오셨기에 그분을 만날 기회가 주어졌다. 하지만 재림의 주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시기에 준비하지 못하면 그분을 뵐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성도는 재림의 주님을 위해 온전한 믿음과 거룩한 행실로 단장하고 기다려야 한다. 기름과 등불을 준비하고 신랑으로 오실 주님 맞을 준비를 하며 기다려야 한다.

예수님은 편안하고 안락한 장소나 요람도 준비하지 못했다. 요셉과 마리아가 호적령으로 인해 여행 중에 마땅한 숙소를 찾지 못해 결국 가난한 한 집에서 태어나시게 된다. 주님을 누우신 요람은 짐승들의 구유(φάτνη)였다. 구유는 마굿간 안팎에 놓이거나, 집안에 놓아 양이나 염소를 먹이는 그릇이다. 구유가 어디에 있었든지 아기 예수님의 안전을 위해 요람처럼 사용되었다. 예수님은 안락하고 편안한 집과 요람마저도 없이 세상에 오셨다. 있을 곳이 없어 누구의 집인지도 모를 장소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 오셨다.

하지만 재림의 주님으로 세상에 오시는 주님은 낮고 천한 자리가 아니라, 천사장과 호령과 나팔소리와 함께 세상에 심판의 주로 강림하신다. 초림은 누구의 집인지도 모를 곳에 오셨지만, 재림은 가심을 본 그대로 약속된 장소에 오신다. 우리가 예비하지 못한 집을 주님께서 예비하신 후에 우리를 데리러 오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따라서 우리도 주님을 위해 온전한 믿음의 집을 짓고 기다려야 한다. 주님이 오실 것을 예비하지 않으면 다시 오실 주님은 맞을 수 없으며 주님께서 예비하신 집에는 결단코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이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주님의 탄생을 보면서, 이제는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을 때는 깨어 준비해야 한다. 온전한 믿음과 거룩한 행실은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는 신앙의 자세이다. 성탄절을 맞는 우리는 깨어 재림의 주님을 맞이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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