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이 증거하는 예수(4)-요한복음 7장

철새떼들인가 싶은 사막의 무리들이 저 멀리 구름떼처럼 엉겨 움직인다. 그들이 길 잃은 모세의 무리들인 줄은 알지만 그 모습이 눈길에 잡히면 가슴은 철렁인다. 혹시 내가 저들에게 할 일 다 못한 것은 아닐까. 내 소임을 다하지 못하여 책잡힐 일은 없을까. 예수는 혼자서 웃었다. 그냥 웃음이 나온다. 누가 저들더러 사막을 무작정 떠돌라 하였나. 저마다 스승 찾아서 둥지를 틀고 지혜의 가슴을 열면 살 길이 열릴 터인데 떠돌이 노릇을 마냥하면 어찌되는가.

떠돌이로 끝나느냐, 히브리로 끝내자는 것은 아니었지. 그래서 그들을 불러서 먹이고, 한시름 돌린 후 떠돌이 생활은 그만 청산하자고 호소 할랬더니 평생 먹거리를 내놓으라잖아. 날더러 모세 노릇을 계속하라는 거야. 때를 따라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놓으라는 것이야.

백번 양보하여 모세노릇 하느라 때를 따라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놓는 모세, 자기네들은 광야의 떠돌이, 거지떼가 되어 세상을 괴롭히겠다는 것이다. '그건 아니잖아. 인간이 세상에 보냄을 받았으면 자기는 물론 이웃들과 나누어 먹을 정도의 수고는 해야지.'

그런데 광야의 떠돌이들이 예수 주변에 몰려들어 욕설을 퍼붓고 집기를 부수고, 난장판을 만들어버린 일을 잊을 수가 없다. 모르쇠로 덮었으니 망정이지 예수에게도 손찌검을 하고 멱살을 잡아 흔들어댔던 그들이다.

그러나 마냥 그럴 수는 없다. 모세의 떡은 없다. 모세가 광야에서 나누어 준 그것은 떡이 아니야. 먹으면 다시 배고프고 먹으면 더 먹고 싶고, 먹다가 내일 먹을 것을 감추고 싶은 것은 떡이 아니야.

이튿날, 예수 찾아서 눈이 뒤집힐 만큼 앞뒤 분간을 하지 못하는 자들이 온다. “허둥거리지 마. 당신들이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것이 아니라 떡을 먹고 배 불러서지…”(요 6:26~).

'그건 썩는 양식들이야. 내게는 썩지 않는 양식이 있어요. 이 양식을 내가 당신들에게 주고 싶어요.'

이 얼마나 신나는 양식인가. 더 들어보면 뭐하나, 그걸 가지고 싶다. 먹고 싶다. 광야의 군중은 박수치며 환호한다. 그러나 예수의 말씀은 끝까지 듣고 보니 예수 자신이 그 떡, 한 번 먹으면 영원히 더 먹지 않아도 되는 기적 같은 떡인데 막상 예수의 말씀을 새김질 해보니 장난 같은 우스갯소리였다.

갑자기 환호하던 무리들 얼굴이 험상으로 바뀐다. '앳기, 이놈. 우리가 너에게 떡 한 덩이 구걸했다고 이제는 우리를 장난감 취급 하는 거야?' 난폭하고 험상궂은 표정으로 바뀐 사막의 무리들은 인정사정 두지 않고 욕설을 하고 기물을 부순다. 예수 주변의 사람들, 예수가 더 이상 봉변당하지 않게 하려던 제자들까지 얻어터지고 갈비뼈가 부러졌다고 비명을 지른다.

예수는 더 이상 저들과 대화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자리를 피하려 했다. 그러나 모세의 제자들은 예수의 길목을 가로막고 그를 괴롭혔다. '아, 사람들아. 모세의 사람들아 모세처럼은 해야지. 왜 그렇게 허둥대는가? 하늘 떡이라 했지? 하늘 떡이야. 어디 나 뿐인가 여러분 또한 그 떡이야.' 배고프고 목마른 자들의 떡이 되고 물이 되자 했던 아브라함의 뜻 받들어 우리가 나그네 되고 떠돌이 생활에 익숙해 있으나, 맹목성 거지떼가 아니다.

내가 왜 왔을까? 하늘 모범이고 떡의 시범 아닐까? 구차한 설명 필요 없다. 나는 떡, 떡 덩이야! 예루살렘. 요한복음 7장. 성전 한복판, 초막절 행사가 한창이다. 절기에 모인 유대 사람들이 예수 이야기를 한다.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네, 아니야 선동꾼, 거짓 선지자래, 가야바가 체포령을 내렸어, 나도 봤다구, 오랏줄을 허리춤에 감춘 체포조가 수십 명 지금 성전 안에 와 있다. 우리들 곁에서 당신은 예수 모습과 많이 닮았으니 조심하라구, 잡혀가서 주리돌림 당하지 말고' 등등.

 예수는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발디딜 틈도 없는 사람들 속에서 잠깐식 스치는 공포감을 느낀다. 드디어 때가 오고 있구나. 한덩이 떡이 되어 진실로 목마르고 굶주리는 이스라엘 아브라함 자손들에게 생명의 떡으로 선물할 날이 오고 있구나. 

예수는 갑자기 소리쳤다. “외쳐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니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되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다”(요7:28~29)

'너희는 모르지, 나는 안다. 여기 너희 안에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진실을 말한다. 나는 날 안다. 나는 나의 아버지 곧 너희 하나님이 보내셔서 여기 지금 너희 앞에 서서 외치노라.'

예수는 그의 주변을 오고 가면서 눈길을 주고받는 장정들이 자기를 잡아오라고 보낸 가야바 대제사장의 하수인들을 잘 안다. 그러나 그들이 허리춤 속에 감추고 있는 체포도구를 향해 눈길을 주면서도 예수는 주눅들지 않았다.

예수는 다시 한 번 더 크게 몸동작을 했다. 이번에는 않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다”(요7:37~44).

야단났다. 예수는 백주대낮, 이스라엘 큰 절기 끝날, 보란듯이 대제사장 수하들이 지켜보는 자리는 물론이고 흩어진 이스라엘, 곧 디아스포라들까지 가득 모인 예루살렘 성전 한복판에서 그가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이심을 밝히 선언하고 있는 셈이다.

예수의 도발은 집요하다. 그 저항 또한 만만치 않다. 어린아이가 들어도 예수의 표현은 일종의 “메시아 선언”인데 기득권자들이 지켜보고만 있다. 대제사장 체포조가 수십 명이라더니 헛소리였던가.

아니다. 잔치가 끝난 후 대제사장 부하들이 가야바 앞으로 불려 나갔다.

“너희가 어찌하여 예수를 잡아오지 않았느냐?”

가야바는 노발대발이었다. 하수인들을 줄줄이 무릎 꿇리고 자초지종을 실토하도록 호통을 쳤을다. 

부하들이 하는 말, 첫째는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을 이제까지 들어본 일이 없었나이다.'

대제사장이 기가 막혔다.

“이놈들, 너희도 그럼 미혹되었단 말이냐? 율법을 모르는 놈들, 그러고도 너희가 내 밥을 먹고 사느냐?”

가야바는 억장이 무너졌다. 하수인들의 말대로 당시 예루살렘의 분위기는 반반이었다. 예수가 메시아인 것으로 믿는 자들과 거짓 선지자로 아는 자들이 각각 절반쯤 되었다는 것이 요한복음 해석이기도 하고, 당시를 증언하는 예루살렘 거주자나 유대인들의 표현이 거의 비슷했다(유대인 절반 정도는 예수를 메시아로 믿고 있었음을 그리스도인들은 오래 기억해야 한다).

아무튼, 예수는 더 이상 할 말이 필요치 않았다. 그의 말에는 시비를 하고 그의 행동에는 침묵해야 하는 유대 사람들의 다음 판단을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예루살렘 초막절 끝날의 선언이 선전포고였을까?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괄호 안에 성경에 이름과 같이를 가두어 두는 자의 심정도 기억해 두기를 바란다. 

여기서 나를 믿는 자라고 했다. “나”가 누군가? “예수”인가? 믿는 자 곧 하나님은 예수처럼 믿는 자들을 나라고 하는가? 아니면 둘 다인가?

/ 목사,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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