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명 한울모임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신앙과 삶, 정치적 날조의 실체 자세히 기록
순수한 신앙공동체의 일원으로 상상도 하지 못한 국가전복이라는 낙인 속에 수형생활을 했고,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감시받으며 학교생활, 직장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어

“홍응표 선생을 통해 예수를 믿고 하나님과 화해하고, 
관계를 회복하여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선생의 인도하에 성경을 읽고 폭넓게 공부하며 
기독교 신앙을 배웠고, 서로 신뢰하는 가운데 형제를 사랑하고
섬기며, 자유인으로 스스로 일어설 수 있게 되었다”

<한울회 사건의 진실>
한울모임 편집위원회 엮음/대한기독교서회

1981년 3월,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에 있었던 사건이다. 전두환 정권은 집권 열흘 만에 ‘한울모임’에 함께 하고 있는 이들을 불법 연행하고 법과 공권력을 악용하여 반국가 단체 ‘한울회’로 조작해 냈다. 기독교 신앙공동체 한울모임은 믿음과 진리를 찾는 순수하고 진지한 젊은이들이 모여 인격적인 관계 속에 기독교 신앙을 펼쳐보려는 꿈을 가진 공동체였으나 철저하게 왜곡, 반국가 단체를 조직한 빨갱이로 날조했다.

그러던 한울모임 구성원들이 사건 41년 만에 한울회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그때의 경험과 생각과 감정을 담은 책을 펴낸 것이다. 사건에 휘말리면서 받았던 이들의 상처는 트라우마로, 가위눌림으로 일상을 옥죄고 있었지만 이제 그 진실을 ‘국가폭력에 희생된 한 신앙모임의 꿈’으로 풀어냈다.

이 책은 이렇게 한울모임에 참여했던 17명이 전기적 이야기 모음으로, 개인적으로 한울모임과 관계를 맺게 된 계기와 모임 경험에서부터 한울회 사건이 날조되는 과정에서 체험한 국가폭력의 실체, 고초의 터널을 통과해 나온 다음에 이어진 생활을 진솔하게 기술하고 있다.

순수한 신앙공동체의 일원으로 상상도 하지 못한 국가전복이라는 낙인 속에 수형생활을 했고,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감시받으며 학교생활, 직장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이들의 아픈 고백이 ‘생존자들의 증언’을 통해 생생하게 기술돼 있다. 그러나 이들은 아픔과 상처를 넘어 화해와 치유를 소망하며 부르는 희망의 노래가 되기를 기대한다는 바람은 지난 12월 27일 열린 출판기념회에서도 간절했다.

한울회 사건으로 2년 6개월을 복역한 바 있고 이번에 집필자로 참여한 박재순 박사(씨사상연구소장)는 이 책을 펴낸 이유는 △국가폭력에 짓밟힌 한울회 사건의 진실과 진상을 밝히는 것, 그리고 낙인을 벗어 명예를 회복하는 것 △한울회 사건 관련자들이 서로 용서하고 화해함으로써 맘 속 깊이 맺힌 상처와 응어리를 풀어보려는 것 △한울모임의 의미를 새겨보고 다시금 평가하려는 것 등 3가지라고 말했다.

한울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믿음과 진리를 찾는 순수하고 진지한 구도자였음은 그들이 기술한 글 곳곳에서 포착된다. 그들은 강의와 설교의 품값을 주고받는 일도 없이 서로 베풀고 나누며 더불어 살고자 했다. 함께 성경을 공부하고, 책을 읽고, 학업에 열중하며, 어떻게 사는 것이 뜻 있게 사는 것인지를 고민하고 배우는 사람들이 만나는 자리였으며, 신앙만으로 구원 받는다는 믿음을 갖고, 이 땅 위에 하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기를 열망하는 바라는 마음 등 순수한 신앙의 마음이 고스란히 표현돼 있다.

홍성환 씨(서울대 사범대학 졸업 후 영어교사로 재직)는 얼마나 열심히 신앙생활는지 술회하며, 그것이 과연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이었는지를 반문한다. 그는 “해수욕하러 온 사람들을 붙잡고 전도를 하기도 했다. 심지어 최소 하루에 한 명 전도하기로 약속하고, 그날 전도를 못한 것이 생각나면 밤중에 자다 말고 일어나 포장마차에 가서 전도하기도 했다. 이게 어디 사람이 할 짓인가? 해수욕하러 온 이들이 얼마나 불쾌했을까?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큰소리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는 진상이 바로 나의 예전 모습이었다”고 회고한다.

당시 학교 분위기는 교련 반대, 유신 반대로 매일 시위, 단식 투쟁 등이 있었으나 신앙에 전념해야 한다며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주님의 일이 아니고 방해되는 일이라며 일절 참여하지 못하게 했다며 “온 나라가 독재로 인해 자유가 말살되고 억압되고 있는데도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노래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건 도대체 말도 안 되는 짓이었다. 말로는 주님을 위한 것이라며 사실은 이 단체의 확장을 위해 목숨을 바치라는 것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한진수 씨(충남대 영어영문학 졸업 후 캐나다로 이주해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활동)는 홍응표 선생을 회고하면서 “꼭 필요한 때에 만나서 배우고 고심하며 더 넓은 진리의 세계로 이끌어주신 것을, 그리고 당신의 범주 안에 나를 붙잡아 두지 않고 자유롭게 놓아주신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배운 것은 많았지만 배운 대로 살지는 못하였다. 지금까지 은혜로 살아온 것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한다. 이기적이고 게으르게 살아온 시시한 인생이 아닌가 하는 회한이 든다. 좀 더 열심히 공부하고 깊게 사색할걸, 형제들을 정성으로 대할걸, 만나는 사람들에게 좀 더 따뜻한 사람이 되어줄걸 하는 아쉬움”은 오늘을 사는 크리스천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같다.

임세영 씨(서울대 대학원 졸업, 현 한국기술교육대 명예교수)는 홍응표 선생을 만나서 어떻게 인생이 바뀌었는지 얘기한다. 임 씨는 “그를 통해 예수를 믿고 하나님과 화해하고, 관계를 회복하여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며 “선생의 인도하에 성경을 읽고 폭넓게 공부하며 기독교 신앙을 배웠고, 서로 신뢰하는 가운데 형제를 사랑하고 섬기며, 자유인으로 스스로 일어설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홍 선생 댁에서의 수련을 시작으로 그리스도인의 공동생활을 체험적으로 배우고 실험하며 지상에서 천상의 맛을 미리 보는 듯 기독교 공동체를 경험했으며, 섬김이라는 공동생활의 원칙을 배웠고, 자신의 부족과 한계를 알았다면서 “이처럼 개인적 차원뿐 아니라 평신도 중심 기독교 신앙운동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홍 선생 성경공부 모임은 공권력 폭력적 개입으로 터전을 잃었으나 결코 흔적 없이 소멸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한울회 사건과 나’를 기술하면서 홍성환 씨는 “나 개인으로는 함석헌 선생의 영향을 받아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변선환 교수의 주장은 하나마나한 너무도 당연한 얘기로 여겼고, 이 일이 문제가 되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며 “나더러 말하라면 차라리 이렇게 말하겠다. ‘오늘날 교회 안에 구원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오늘 예수 같은 이가 여기 산다면 그가 과연 교회에 다니려고 했을까? 아니면 그런 교회를 허물려고 했을까? 적어도 신약성서의 사복음서에 묘사된 예수라면 오늘날의 대형교회에 대해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그랬듯이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일갈했을 것이며, 그들은 구원의 문을 막고 자기는 물론이고 다른 이들을 못 들어오게 하는 자들이라고 비난했을 것이다.’”라고 강하게 말한다.

1부는 홍응표 선생과 모임이 형성되던 시기에 참여한 사람들의 체험이 담긴 글, 2부는 사건 당시 고등학생 혹은 대학생으로서 사람됨과 개성을 존중하여 참된 교육에 열정적인 스승이나 선배의 소개로 성경을 배우고 독서를 하기 위해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의 글, 3부는 사건 당사자로서 재판을 받아 실형을 살았던 사람들의 글, 4부는 법원에 제출한 탄원서와 호소문 등을 실었다.

임세영 책임편집자는 “한울회 사건에서 드러난 오남용된 국가폭력은 개인이 감당하기에 너무 거대할 뿐 아니라 치밀하고 중층적이어서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경찰이 강제 연행하여 고문으로 날조한 조서를 생산하는 가운데 행사된 폭력, 이것이 날조된 것을 알고도 ‘성공적’으로 기소하기 위해 더 완벽하게 만든 검사의 폭력, 법정에서 고문에 의해 날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피해자들의 호소를 외면한 판사들의 폭력은 공권력이 통째로 누구에게 봉사하는 공권력이었는지를 보여준다”고 증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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