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써서 할 때는 잘하다가 무명으로 할 때는 중단하거나 줄어든다면, 그동안 신앙생활을 하나님 앞에서 한 게 아니라 사람이나 의식해서 한 반증이 아니겠나? 교회가 교인들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도록 훈련해야 한다.

오세준 목사새누리교회 담임
오세준 목사
새누리교회 담임

한국교회에는 헌금을 정기적으로 잘하는 교인이 많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에는 헌금이 연보의 개념으로 바뀌었다. 따라서 신약 성경에는 헌금하라는 말씀이 없다. 바울 서신에 연보에 대한 기록이 나올 뿐이다. 따라서 헌금을 연보로 변경하는 게 복음적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헌금이라는 용어에 익숙하여 바뀌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보다는 교회가 바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수 있다. 

헌금이 연보로 바뀌면서 교회 재정이 훨씬 더 증가했다는 교회가 많다면 쉽게 바꾸려고 할지도 모른다. 코로나19로 인해 교회 재정에도 타격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종종 접한다. 그래서 헌금을 강조하는 일이 빈번하여 교인들이 교회에 가기 싫어졌다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 재정에 도움이 된다는 확신도 없이 연보로 변경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에서는 헌금을 연보로 변경하고 무명의 연보를 하도록 했다. 목회적 고민 끝에 이런 방법이 더 복음적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결정했다. 사실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께 드려진 자이다. 그래서 그 자신은 말할 것이 없고 모든 게 하나님의 소유이다. 이 사실을 부정할 그리스도인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더 드릴 것이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 바친다는 개념의 헌금이 아닌 연보가 옳다는 말이다. 그리고 모든 물질도 하나님의 소유이기에 자기 이름으로 연보 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청지기이다. 따라서 청지기의 이름이 아닌 주님의 이름으로 물질을 사용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무명으로 하는 게 성경적이라는 것이다. 교회에 주님의 이름으로 내놓은 물질을 교회가 주님의 이름으로 사용해야 한다.

자기 이름으로 연보를 하게 되면, 어느 순간 이것이 자기 의와 공로로 작용할 수 있다. 무명으로 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이다. 물론 자기 의와 공로로 여기지 않을 사람도 없지 않겠지만, 대부분은 어느 순간 인간의 속물근성이 나와 공로 의식이 발동한다. 액수가 큰 금액이라도 내면 교회가 믿음 좋은 신자로 대접하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교회 일에 목청의 볼륨이 올라가기도 한다. 이게 다 공로 의식에서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소유로 자기 의를 삼아 공로라고 여긴다면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가?

교회가 연보를 무명으로 하고 싶어도 재정이 푹 줄어들까 걱정하여 결단하지 못할 수 있다. 실제로 오래전부터 무명으로 헌금하는 어느 교회의 사례를 보면, 교인 수에 비해 헌금이 적게 나오는 게 현실이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는 아직 실행한 지 얼마 안 되어 평가할 수 없지만, 아직까지는 이름을 써서 할 때보다 더 나오면 나왔지 줄지는 않았다. 그러나 줄어들 수 있다는 예측도 하고 있다. 사람은 시간이 흐르면서 누가 보지 않으면 슬그머니 하던 일도 하지 않는 습성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재정이 조금 더 나오고 덜 나오고의 문제는 본질이 아니다. 교회는 재정 확보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교회는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해야 하며, 구원받은 사람을 물질에서 자유하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도록 안내해야 한다. 이름을 써서 할 때는 잘하다가 무명으로 할 때는 중단하거나 줄어든다면, 그동안 신앙생활을 하나님 앞에서 한 게 아니라 사람이나 의식해서 한 반증이 아니겠나? 교회가 교인들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도록 훈련해야 한다. 사람이 보든 안 보든, 하나님만 의식하고 물질에서 자유로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 말이다. 언제까지 사람 눈치나 보며 신앙생활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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