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를 요구할 정도로 일을 못 했으면 공로패를 왜 준 것인지 묻고 싶었다. 그 정도라면 공로패를 주지 않는 게 상식이다.

오세준 목사새누리교회 담임
오세준 목사
새누리교회 담임

얼마 전에 필자의 교회가 속한 지방회에 정기총회가 있었다. 총회 개회에 앞서 예배를 드린 후 회장의 임기를 마치는 목사에게 공로패를 주었다. 공로패란 명칭이 말하듯이 공로를 기리는 글을 새겨 넣어 공로를 세운 사람에게 주는 상패이다. 공로패를 주는 관행은 교회의 오랜 전통이 되어 임기를 마치는 회장이나 임원에게 공로패 주는 광경은 전혀 낯설지 않다. 교단 총회에서도 하는 일이고 개 교회에서도 자주 보는 일이라서 수고한 일꾼에게 공로패 주는 행사를 당연시한다. 

그런데 목회자를 비롯하여 모든 성도가 하나같이 교단이나 개 교회의 어떤 직을 수행하다가 마칠 때는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 말의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다. 교단 총회, 지방회, 개 교회의 특별한 행사에서 공로패 주는 순서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을 볼 때이다. 이런 현상은 입으로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사람의 공로라고 여기는 게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의 은혜로 어떤 직을 감당했다는 고백이 진실이라면 공로패를 거부해야 맞고 공로패를 주는 관행을 없애야 한다.

이 같은 현실은 하나님의 은혜는 사라지고 인간의 공로가 판을 치는 한국교회의 민낯을 보여준다. 목회자가 앞장서 공로패를 주고받으니 인간의 공로가 이보다 더 판을 치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받았고 그 은혜로 사는 존재이다. 아무리 많은 충성과 희생하는 교회 일꾼이라도 그의 공로는 일도 없다.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만 남아야 한다. 왜 그런지는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눅 17:10)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만 곱씹어 봐도 알 것이다.

대부분 교단 총회나 지방회에서 임원의 임기를 마칠 때면 관행대로 공로패를 준다. 이런 공로패 수여가 왜 필요한지 돌아보게 하는 민망한 사례가 있다. 필자가 참석한 지방회에서 공로패를 준 후에 회의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임기를 마치는 회장과 임원들에 대해 질타와 추궁이 쏟아졌다. 특히 임기를 마치고 공로패를 받은 회장에게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임기 중 일을 너무나 못했다며, 사과하라는 발언이 나오더니 사퇴하라는 험악한 말까지 나왔다.

이런 광경을 보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 자리에는 목회자만 있는 게 아니고 장로와 일부 교인들도 있기에 좌불안석이었다. 이를 지켜본 교인들이 목회자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졌을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서로 공방하는 장면을 보면서 바로 전 공로패 주는 장면이 오버랩되었다. 그렇게 사과를 요구할 정도로 일을 못 했으면 공로패를 왜 준 것인지 묻고 싶었다. 그 정도라면 공로패를 주지 않는 게 상식이다. 공로패를 주고 나서 공로가 없다고 야단치는 것은 무슨 경우란 말인가?

주로 전직 회장들이 나서서 임원들에게 일을 잘못했다고 질타했다. 이들의 질타가 자신이 과거 회장할 때 잘했다는 자기 공로를 드러내는 것으로 들렸다고 말하면 지나치게 예민하다고 탓할 것인가? 전직 회장들의 노고를 누가 모르겠는가? 후배들의 일 처리가 부족하고 허점투성이라도 수고했다며 격려의 말 한마디라도 한 후, 차기 회장단에서는 좀 더 잘 감당하기를 바란다고 권고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다. 선배들 눈에는 후배들의 리더십이 탐탁지 않게 보일 수 있다. 과거 선배들과 지금의 후배들이 하는 방식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처럼 다른 점이 많기 때문이다. 이 차이와 다름을 이해하고 서로 존중하는 태도가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선배들은 후배들의 허물을 덮어주면서 끌어주고 후배들은 선배들의 귀중한 경험의 자산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선배 목회자든 후배 목회자든 복음의 동역자로 함께 가는 주님의 제자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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