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부활절이 올 때면 부활의 주체가 누구인지가 궁금하다. 성경의 요구는 분명히 예수를 믿는 자들의 부활신앙인데 부활의 주인공들인 신자들이 안보인다. ‘나는 부할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예수 친히 말씀하셨다.

이 말씀이 요한복음 11장 25절 이하의 기록으로 오늘의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지켜주고 있다. 생명은 영원한 것이다. 죽음이라는 것을 의식하며 사는 사람은 생명의 본질을 모르기 때문에 인생을 오해하는 것이다.

생명체를 소유개념으로 본다든지, 욕망으로 계산하든지, 단순한 흙덩이처럼 하나의 물체로 볼 때는 삶과 죽음으로 볼 수도 있으나 생명체는 본질상 영원성을 가지고 있다. 인생에 있어서는 더 말해 무엇하랴. 인간의 삶에 아름다움을 부여하면 그 아름다움의 힘으로 영원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부활이 말해지고 있음은 생명의 영원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가진 자들이기 때문이다. 생명은 아름답다. 이 봄의 부활은 그래서 딱 어울린다. 영원한 아름다움, 바로 이것이 부활이다.

노래하라! 그리스도인이여! 죄와 악을 메시아 예수의 속죄단 아래서 벗어버리고 일어나 저기 무덤이 쪼개지고 그 앞에 서신 이를 보라. 막달라 마리아가 먼저 달려가서 미명을 지켜 다시 사신 예수를 맞이한다. 다시 죽음과 상관없이 일으켜 몸을 세운 나와 너를 향해 찬사의 박수를 보내고 있다.

오늘은 예수의 부활이 아니라 나와 당신, 우리들이 미명에 허덕이던 잠고대를 털어내고 일어나 아침의 태양처럼 성큼 우리들의 가슴을 감격으로 채우시려는 믿음의 주 하나님을 향하라.

그리고 속지 마라! 오늘 부활절은 예수의 날이며 너와 나의 부활이다. 너와 나의 부활이 아닌 부활 절기가 오늘의 시대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

부활의 현재화, 예수 부활의 신자화! 예수 부활에 머무는 것으로는 반쪽짜리다. 온전한 그리스도의 절기인 부활 절기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 신자들이 부활의 중심이어야 한다.

요즘 사회 환경이 어수선하고 유사 기독교 신자나 목사들이 우리사회에 누를 끼치기도 하는데 부활 예수, 예수와 동행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우리 사회인들에게 보여줄 필요도 있다.

부활은 목숨 연명의 욕망이 아니라 인생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천국을 현재화” 시키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열망과 마주치는 찬가도 되느니…, 그리스도인들이 부활이 동행하는 이 봄에 몸을 추스르고,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움을 노래할 준비를 오늘 했으면 좋겠다.

인생은 아름다움, 아름다움이 동반한 인생의 영원함이 있는 나라를 꿈꾸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이여, 부활의 날을 찬미하자. 노래하자.

조효근/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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