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온 지 130년이 넘어서면서 한국에서는 기독교가 많은 이들에게익숙해져 있는 상황이다. 많게는 한국 인구의 4분의 1로 보는 통계도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만큼 기독교를 접한 사람들 숫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그만큼 기독교에 대한 반감도 높아졌다는 것이다. 이는 통계를 굳이 들이대지 않아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느끼는 것이다. 한동안은 “이렇게 기독교만큼 사회봉사와 구제에 힘쓰는 종교도 많지 않은데 왜 인식은 이렇게 형편이 없는 것인가” 하는 말들로 난무했다.

무엇이 부족한 것일까. 구원을 말하면서 믿음이냐, 행함이냐를 논하곤 한다. 요즈음 대세는 ‘행함’에 방점을 찍는 분위기다. 구원을 행함으로 얻느냐, 구원으로 얻느냐는 얘기가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1세기 정도 그렇게 믿음을 주창하며 노력했지만 그 믿음의 모습이 제대로 보여지지 못하고 퇴색되자 ‘행함’이 강조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많은 목회자와 신학자들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맞다”, 그러나 “행함이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다”라는 결론에 큰 이견이 없다.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입으로만  말하고 주장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비기독교인들이 기독교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그것 아닐까.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말하는데 기독교인들이여, 제발 사랑을 보여주세요. 아니, 먼저 목회자들이라도 먼저 그렇게 살아주세요.”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우리네 속담이 있듯이 ‘사랑’의 진정한 삶을 살아내고 있는 이 시대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자고 강단에서 선포하고, 거리에서 전도하는 그 사랑을 가정과 친구, 이웃, 회사 등 우리 삶에서 어떻게 실현해내야  하는지 ‘모델’이 많아진다면 따르는 삶도 수월해질 것이다.

신자들 중에는 ‘목회자들 먼저 잘 했으면 한다’는 속내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목회자들에게만 미루지 말고, 목회자 신자 가리지 말고 먼저 깨달은 사람이 실천하면 된다. 우리는 ‘제사장’ 아닌가.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더 쉽다고 하지 않나, 때가 덜 묻은 신자들부터 믿은 대로, 말씀대로 ‘사랑하기’의 발걸음을 옮긴다면 교회 분위기, 사회 분위기는 훨씬 좋아질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더 가까워질 것이다. 더 많은 이들이 아름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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