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지변이 없는 한 교회당이 없어지지 않는 항구성을
가진 교회조직이 되었으면 한다. 이동 인구가 많고,
사업상 주거환견도 자주 변할 수 있다는 말을 하는데…

성령과 교회, 신자와 교회의 관계를 잘 모르는 프로테스탄트 교회 신자나 목사들이 참으로 많다. 교회당 이름 앞에 접두사를 쓰지 말라. 형용구를 사용치 말아야 한다고 많이 지적해 보았지만 듣지 않는다. 교회 이름 앞에는 ‘지역명’만 사용해야 한다. 아닌 경우는 기념교회나 교회 기관 이름 앞에 형용구를 적을 뿐이다.

오늘은 교회 이름 시비가 아니라 교회의 존엄에 관하여 몇 마디를 하고 싶다. 함부로 교회당 간판을 걸었다가 쉽게 철수하는 등 그 기복이 너무 심하다. 코로나19 이후 정밀조사를 해보면 교회 통계가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한국 가톨릭과 비교하면 교회 허가조건이 크게 다르다. 가톨릭은 50년, 그 이상된 공소(본당 교회 허가 이전 집회소)가 본당 승격을 못하고 있는 곳이 상당히 많이 있다(2023. 4. 30 평화신문 17면 참조).

양측의 교회관이나 제도 등 역사적 의미가 얼마간 다르다고는 하지만 ‘교회 허가’ 과정에 있어서 프로테스탄트 쪽에서 생각을 더 많이 해보아야 할 듯하다.

‘교회’란 신앙고백이 완료된 단 한 사람부터 효력이 발생할 수 있다. 예수께서 두세 사람 머무는 곳에 나도 너희와 함께 하겠다 하신 말씀을 하신 바 있는데 이 말씀 해석을 이렇게 해볼 수 있다. 두세 사람이란 나와 너, 그리고 성령님과 하나님을 말할 수 있기에 단독자의 경우도 교회가 성립된다.

예를 들면 국회의원을 말할 때 개개인을 입법기관, 곧 “국회”로 볼 수 있듯이 신자 개개인을 “교회”로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통상 교회는 믿는 자, 신앙 고백하는 자들의 모임이요 죄악 세상에서 불러낸 자들로 차별, 구별, 성별(聖別)한 조직기관이 된다.

프로테스탄트 교회도 “교회” 호칭으로 바로 들어가지 말고, “기도소” 또는 전부터 관리해 온 “구역회”, “지역회”, “속회” 등 약식 또는 교회의 전 단계 과정을 두고 교회는 한 지역공동체를 대변하는 기관으로 자리잡았으면 한다.

천재지변이 없는 한 교회당이 없어지지 않는 항구성을 가진 교회조직이 되었으면 한다. 이동 인구가 많고, 사업상 주거환견도 자주 변할 수 있다는 말을 하는데 그래도 교회는 태산을 옮기거나 강줄기를 바꿔야 할 정도가 아니면 존엄으로 동구 밖 당산나무 5백 년 묵은 나무처럼 우뚝설 수 있어야 교회다.

규모가 크거나 작은 것과는 상관이 없다. 교회의 주인인 예수께서 인간 인격 존엄의 정점에 있기 때문에 열등감 없이 하나님의 교회는 오직 교회로서의 자부심과 존엄을 지켜갈 수 있으면 된다.

조효근/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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