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6. 정통교회와 전도
정통교회는 두 가지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사회 안정의 든든한 버팀목이면서 미래사회를 위한 바람직한 모델이 되어야 한다.

김명현 목사(선한목자교회)
김명현 목사(선한목자교회)

남성 2명이 혼자 있는 사무실을 기웃거리더니 들어왔다. 교회 밖에 있는 사무실이어서 교회라는 표시는 없었지만,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을 보면 한 눈에도 필자가 목사인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들이 다니는 교회를 설명하면서 발행한 신문을 주고 갔다. 자신들은 ‘어머니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그들이 가장 먼저 필자에게 건넨 말인데, 자신들의 신앙 정체성을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전도를 하면서 정통교회인 척 위장할 법한데 요즘 분위기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그들은 정통교회와 다른 점을 드러내어 부각시키는 것이 전도에 유리하다는 것을 분명 알고 있었다.

정통교회가 이단이라고 규정하는 교회들은 하나 같이 전도에 열심이다. 이들의 열정을 보면서 정통교회의 목사들은 교인들의 전도 열기가 식었다며 한탄하기도 한다. 이단교회의 신자들이 보여주는 전도 열기와 비교하면 정통교회 신자들의 전도 온도는 차디찰 뿐이다. 그러나 정통교회는 ‘전도의 불길을 다시 붙이자’는 식으로 이단교회들과 전도 경쟁을 해서는 안 된다. 왜 그럴까?

전도는 두 가지 상황에서 교세확장의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하나는 새로운 교리를 가지고 옛 교리에 도전할 때이며 다른 하나는 교회가 없는 불모지에 들어갈 때다. 바울의 전도여행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인정하는 전도의 출발이자 모범이다. 바울을 비롯한 초대교회의 전도는 한편으로는 기존의 유대교 교리 속에 새로운 그리스도교 교리를 가지고 들어가 치열하게 다투는 것이었으며, 동시에 미지의 이방 세계를 향한 교세확장의 수단이었다. 중세 가톨릭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개신교가 출발할 때도 개신교는 옛 질서인 가톨릭과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논쟁했으며, 프로테스탄트 교리를 널리 퍼뜨리기 위해 가는 곳곳마다 새로운 복음을 전파했다.

전도는 옛 질서에 도전하는 교리를 실어 나르는 운송수단이며 새로운 질서를 정착시키는 무기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새로운 교리를 주장하는 이단들의 전도 열기를 이해할 수 있으며, 정통교회가 전도의 동력을 상실한 이유도 설명할 수 있다.

정통교회에서도 전도에 열심인 경우가 있는데, 교회를 본 적도 없고 성경말씀을 들어본 적도 없는 불모지에 들어갈 때다. 교회가 없는 해외나 자국 내 미개척지를 향한 선교가 바로 그것이다. 전도는 그 지역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것을 들고 들어가서, 만나는 사람마다 말씀을 증거하며 가는 곳곳마다 교회를 세우는 기초가 된다. 사실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이런 곳에 전도가 필요하고 가장 큰 효과가 있다는 것은 어느 누구라도 인정할 것이다.

이제 이단교회들이 자신들의 새로운 교리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이유가 분명해졌다. 전도는 새로움을 무기로 장착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의 정통교회는 우리 사회에서 이미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새로움을 포기하고 정통이 된 것이다. 한국에 처음 선교사들이 들어왔을 때, 그들은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가져왔고 그것이 전도의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100년이 훨씬 지난 정통교회들은 한국사회에서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한국 땅에는 교회를 접해보지 못한 오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전도는 더 이상 정통교회가 주장해야 할 그 무엇이 아니다. 정통교회는 그 이름에 합당한 안정적인 정통성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전도를 주장하면서 자기들 교회의 전도 열기와 그에 따른 부흥의 역사를 보라는 교회들이 꽤 있다. 그런데 이미 살펴보았듯이 전도가 그 의미와 효과가 있으려면, ‘전도의 내용’이 새로운 것이거나 ‘전도의 대상’이 미지의 개척지라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 땅에 미지의 개척지는 없으므로 전도해서 부흥을 이룬다는 말은 새로운 것을 주장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제 잘 생각해 보자. ‘우리교회는 전도로 실제로 부흥하고 있다’는 교회들을 면밀히 살펴보면 자기 교회만의 ‘특별한 것’ 즉 새로운 것을 내세우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인데, 이 중에 일부는 이단에 가깝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실제로 이단이나 이단으로 의심되는 교회들과 교류하거나 이단과 깊숙이 관련되어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필자는 정통교회가 한때 이단이라고 분류하고서도 나중에 정통교회로 받아들이는 경우의 교회도 있으므로 이단과 관련 있다고 해서 무조건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이 글의 주제에서도 벗어난다.

다만 정통교회는 정통교회가 가야 할 길이 있다는 것이며, 위에서 살펴본 바대로 그것이 전도, 적어도 획일화된 방식의 전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정통교회는 두 가지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사회 안정의 든든한 버팀목이면서 미래사회를 위한 바람직한 모델이 되어야 한다.

신앙은 인류의 보편적 성향이기에 사회에 안정적으로 뿌리내린 정통교회는 시민의 신앙 욕구를 건전하게 지탱해주어야 하며, 이는 사회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기초가 된다. 한편 사회는 미래를 향해 진보한다. 사회를 구성하는 주체들은 이 진보에 나름대로 기여한다. 경제는 시민의 보다 나은 삶을 제시하면서 그 실현을 위해 애쓴다. 정치는 시민의 자유와 권리 증진을 위한 민주적 비전을 제시한다. 그렇다면 종교가 제시할 미래는 무엇일까? 그것은 사회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존재하는 - 그래서 끊임없이 찾아내고 그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야 하는 - 소외된 시민들을 보듬는 공동체적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다.

정통교회는 사회가 신뢰할 만한 교회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동시에 소외된 이웃을 섬기는 모범적인 공동체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현재의 한국교회가 과연 이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깊은 회의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늦은 감도 든다. 그러나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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