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칫 푸념처럼도 들린다. 그러나 ‘들소리’ 처음 시작했을 때 이런 마음 자세면 훨씬 더 좋았을 거다. 아니야, 그때도 지금과 같은 마음을 분명히 가지고 했지, 다만 그때는 30대요 지금은 80대 인생의 눈으로 나와 현실을 보는 차이가 다를 뿐이지요.

그러나 그 마음의 중심은 같다. 이럴 경우 마음을 다시 가다듬고 오늘이 초심의 그날로 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모두가, 아니 내가 먼저 출발한다. 세월아 너 무엇을 원하느냐? 사람들이 지쳐 무너지고 결국은 한 줌 흙더미 된다고 비웃는가? 그러나 그건 생명 가진 것들의 기승전결 절차가정일 뿐이다.

그리스도인은 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소년은 쉬이 늙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허락받은 시간을 아끼는 것이다. 코로나19가 우리들의 소중한 시간을 4년 가깝게 괴롭히다가 지금은 떠난 듯 하지만 아직도 그것의 뒤치다꺼리에 바쁘다. 교회들이나 신자들이 아직은 생각을 다 정리하지 못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아침에는 건강해 보이던 친구가 저녁 때 죽어버렸을 때의 허망함을 경험해 보았다.

더구나 작은 규모의 교회나 선교기관은 살림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두려워 말자. 이는 모두 산 자들의 고통이요 두려움일 뿐이다. 살아 있기에 약간 불편하고 고통스러울 뿐이다.

“들소리”의 경우 누가 시켜서가 아니고 스스로 일어난 구름 떼 중 하나요 하늬바람일 뿐, 때가 되면 하나님의 손쓰심이 있을 것이다. 갈릴리 비린내 나는 어부들 불러 동행 동업하실 때나 예루살렘 마지막 날 골고다에서 떠나실 때 모친에게 하신 말씀을 대책이 없기도 했지만 우리는 말씀이 없으니 기다리는 현재 동작이 옳을 것이다.

어떤 경우도 누구를 원망하거나 시비하지 말자. 코로나 이후, 모두들 자기 살아갈 궁리를 먼저 하게 되지만 교회는 예수의 집이다. 문 활짝 열고, 문이 없는 집 주인들처럼 인심을 넉넉하게 만들어 가자.

교회는 기준이 없다. 메시아 예수 오실 때도 베들레헴 들판의 목자들, 그 신분을 다 알 수 없는 동방박사들, 또 성전 앞에는 거지 아닌 백세가 넘은 늙은 남녀 선지자인 시므온과 안나가 있다. 나사렛 마리아가 있고, 목수 요셉이나 베다니 마르다와 나사로는 물론  마리아가 또 있다. 모두들 예수의 사랑들이다. 우리도 오늘 하루를 한 평생인 양 살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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