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좀 걸릴 뿐이지, 모든 차별은 없어지는 방향으로 역사는 흘러갈 것이다. 뒤따라가거나 부끄럼을 당한 뒤에 어거지로 따라갈 것이 아니라, 이 부분에 대하여는 기독교인들이 방향을 바꿔 앞서 나가면 참 좋겠다.

김조년<br>한남대 명예교수
김조년
한남대 명예교수

나는 며칠 전 어린 두 아이를 남겨 두고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참신하고 귀한 한 젊은 부인을 조문했다. 엄마를 보내는 장례식장에서 철없이 이리저리 오고가는 천진난만한 두 초등학생이 구김살 없이 잘 자라기를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점점 자라면서 빈 엄마의 자리 때문에 어떤 것을 경험할지 생각할 때 맘이 매우 무거웠다.

마침 그 자리에서 조문 온 한 귀한 분을 만났다. 성소수자를 환대하는 목회를 하였다고 고발되고 징계를 받았는데, 다시 고발되어 재판을 받게 될 것이란 말을 듣고, 나는 ‘축하합니다’ 라고 말했었다. 간단한 이야기를 나눈 뒤 헤어지고 나서, 이런 문자를 서로 주고받았다. 

‘성소수자의 문제로 어려움을 당하신다는 소식에 맘이 많이 쓰였어요. 그렇게 고발되고 징계를 받는 중에 아름답고 귀하게 닦여지고 단련될 것이라 봅니다. 그 일이 개인에게 어렵기도 하겠지만, 기독교를 깨우고 일으켜 세우는 데 큰 일을 하실 것이라 봅니다. 그래서 축하한다고 하였어요. 언제나 건강하기를 빕니다.’ 

‘예, 기억하고 연락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역시도 말씀하신대로 이 재판에서 저의 안위나 목사직분에 크게 연연해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조금이나마 XX회가 성소수자에 대해 전향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고 기도할 뿐입니다.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격려해주시고 좋은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새기며 나아가겠습니다.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몇 년 전 ‘차별금지법’이 일부 기독교인들의 반대로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았던 것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바울 선생이 말했듯이 사람이 어떤 모습으로 태어났든 차별을 받는 사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유대인이나 그리스인이나, 백인이나 흑인 또는 황인이라고 하여, 여성이나 남성이나 성소수자라고 하여, 기독교인이나 불교인이나 회교인이나 힌두교인이나 재래종교인이나를 물을 것 없이, 그런 것을 자기 믿음체계로 가졌거나 삶의 행태를 가졌다는 것 때문에 차별을 받는 것은 더이상 없어야 한다고 본다. 이미 사회법에서는 그런 문제들이 해결된 사회가 참으로 많다. 시간이 좀 걸릴 뿐이지, 모든 차별은 없어지는 방향으로 역사는 흘러갈 것이다. 뒤따라가거나 부끄럼을 당한 뒤에 어거지로 따라갈 것이 아니라, 이 부분에 대하여는 기독교인들이 방향을 바꿔 앞서 나가면 참 좋겠다.

최근 ‘피어나라, 퀴어나라’란 큰 주제 아래 퀴어축제가 진행되었다. 성소수자란 말과 그것으로 사는 삶이 상당한 부분 어렵게 되는 당분간은 얼마 동안 계속하여 그런 축제가 연례행사로 진행될 것이다. 축하하는 사람들도 있고,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괜찮다고 보거나 문제가 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것도 얼마 시간이 지나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세상이 될 것이다. 혹시 그것이 문제가 되는 한은, 성소수자라는 것이 정상이라는 판단과 관점과 분위기를 얻어내기 위하여 좀 과장하는 모습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별도의 축제가 될 필요가 없을 때가 되면, 다시 말하면 차별이 없는 때가 되면 그냥 아름다운 사람들의 일상생활이 될 것이다. 신학이나 교리나 교회의 규정을 넘어 차별은 없어야 정상이다. 경전 해석이나 신학 또는 교리 그리고 교회의 규정이란 사회변화에 적극 참여하면서 새롭게 제정되고 발전해야 한다. 사람들의 삶은 언제나 출렁이는 물결과 같이 매우 역동적이다. 진리는 이런 변화에도 잘 적응하거나 새롭게 생생하게 해석될 때 진리로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다. 이렇게 유연하게 대응하는 진리판단이 있다면 고정된 관행이나 판단이나 생각으로 출렁이는 변동상황을 판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욱이나 민주에 맞는 정상사회가 되자는 운동에 강력한 저항이 일어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사랑과 구원과 생명을 말하는 기독교라면 더욱이 경전 해석과 적용에 유연하고 상식에 따라야 한다.

나는 가끔 성소수자를 혐오하거나 범죄시 하는 기독교인들에게 장난조로 묻기도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인가? 아닌가? 하나님은 그들을 멸망시킬 것인가? 구원의 대상으로 삼고 있을까?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예수는 성소수자를 정죄할까? 사랑할까? 과연 사람으로 태어나서 나와 다르게 보이거나 좀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을 정죄할 권한이 있는 것일까?’ 이런 유치한 질문을 떠나서 모든 차별은 없어야 한다. 이 일을 반대했던 기독교인들이 앞서서 차별없는 사회를 만드는 역군이 되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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