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터 브루그만의 〈안식일은 저항이다〉, 〈헨리 나우웬의 안식의 여정〉에서 보여주는 진정한 ‘안식’

“안식일이 없는 실존은 우리 뜻대로 살아나갈 궁리를 하며, 함께 쉬어야 할 우리 이웃에게까지 확장된 쉼을 깨닫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상처와 두려움, 탈진 상태를 붙들고 쉼이 없는 채로 버려진 자들이 될 것이다.”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쉼, ‘안식’에 대해 이론에 근거해서 현실을 문제를 뚫고 제시하는 월터 브루그만과 삶 속에서 진정한 안식의 여정이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가를 만나게 해 주는 헨리 나우웬의 책은 결이 전혀 다르다. 하지만 넓은 의미의 ‘안식’이란 측면에서 보면 관통하는 주제는 다르지 않다.

<안식일은 저항이다>
월터 브루그만 지음/박규태 옮김/복있는사람 펴냄

브루그만은 <안식일은 저항이다>라는 책에서 안식일과 첫째 계명(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에 관해 제일 먼저 다룬다. 네 번째 계명(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은 먼저 나온 1~3 계명과 쉬시는 하나님을 돌아본다. 아울러 이웃과 관련된 마지막 5~10계명을 내다보며 이웃과 함께 하는 쉼을 제시하고 있다고 말한다.

첫 번째 계명은, 출애굽을 이끄시는 하나님이 노예들이 그때까지 알았던 다른 모든 신들과 다르다는 선언이라고 강조하며 이 하나님과 만족함 없이 제국의 생산 행위를 끝없이 독려하는 여러 잡신을 혼동하거나 같은 반열에 놓아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종교개혁과 계몽주의 속에 자리한 뿌리들이 우리를 활력 있게 지지해 주는 공동체 및 전통과 우리를 단절시키는 상황을 만들어 냈으며, 우리 사회의 상황은 더 큰 안녕과 더 큰 행복을 끝없이 추구하게 하지만, 이런 추구에는 늘 만족이 없음이 그것을 반증한다고 분석했다.

창조와 출애굽의 정점인 안식일은 상품을 추구하는 파라오의 욕망을 거부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며, 제국이 물리는 무거운 세금이나 지나치게 율법에 매인 종교를 염두에 두시고 그 대안을 ‘내게 와서 쉬라’고 제시하신 예수는 더 이상 생산 시스템에 규정당하지 않고 헌신하지 않는 이들에게 안식일의 쉼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상징임을 강조한다.

시장신학을 섬기는 소비자주의의 제의(祭儀)는 생산품도 더 사고, 차도 더 사고, 탈취제도, 핸드폰도, 맥주도 한 병 더 사라고 늘 부추기는 광고 게임 같은 이 제의의 메시지는 결국 상품이라는 여러 잡신을 만족시킬 노력을 끝없이 하게끔, 이런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게끔 만든다는 것이다.

안식일은 실제로 그런 시스템을 벗어 버림으로써 생산과 소비가 아니라 사랑이 오고 가는 이웃 사이의 사귐이 우리 삶을 규정하게 하며 불안에 저항하려면 이웃에게 사랑을 쏟으라고 브루그만은 말한다. 또한 안식일은 단순히 멈춤이 아니라 강요와 경쟁에서 벗어나 서로를 긍휼히 여기는 연대성에 비추어 사회의 모든 삶을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돼야 하며, 일을 멈추라는 이 명령은 모든 사람이 지킬 수 있으니, 인종이나 남녀, 동성애자 등 누구라도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다 지킬 수 있다고 말한다.

브루그만은 시편 73편을 근거로 “시인은 또 다른 문화가 만들어 내는 엉터리 욕구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발견한다”며 “안식일은 우리의 요구를 알려주는 학교요, 우리에게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우상숭배와 탐심에 초점을 맞추는 거짓 욕구들을 폭로하고 비판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일을 그치지 않고 안식일을 지키지 않을 때, 이런 거짓 욕구들이 우리를 지배한다”고 경고한다.

안식일이 없는 실존은 우리 뜻대로 살아나갈 궁리를 하며, 안식일이 없으면 하나님 자신이 쉬신 것에 뿌리를 두고 우리와 함께 쉬어야 할 우리 이웃에게까지 확장된 쉼을 깨닫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는 브루그만은 그렇게 되면 상처와 두려움, 탈진 상태를 붙들고 쉼이 없는 채로 버려진 자들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lt;헨리 나우웬의 안식의 여정&gt;<br>헨리 나우웬 지음/윤종석 옮김/두란노 펴냄<br>
<헨리 나우웬의 안식의 여정>
헨리 나우웬 지음/윤종석 옮김/두란노 펴냄

이렇게 논리적으로 다룬 책과는 다르게 헨리 나우웬은 안식년 1년 기간을 보내며 마음껏 묵상하고 글을 쓰며 가족과 친구들을 방문한 이야기들을 여러 가지 질문과 함께 담은 책이다. 나우웬은 하버드신학대학원 교수직을 내려놓은 뒤 9년을 같이 살면서 섬기던 발달장애인 공동체 ‘라르쉬 데이브레이크’에서 안식년을 얻어 보내고 다시 복귀한 지 3주가 지났을 무렵, 업무 차 떠났던 고향 네덜란드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이 책은 본향을 향한 여정의 마지막 한 바퀴를 돌던 나우웬의 당시 생각과 활동을 담은 소중한 기록이다. 그 자신도 몰랐던 그의 안식년은 ‘영원한 참된 안식’으로 가는 여정이 되었다. 이 책에는 나그네 길과 본향에 대한 그의 믿음이 글 도처에 배어 있으며, 늘 변화하며 성장하는 신앙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소명을 다하려 했던 그의 평생의 갈망과 씨름이 고스란이 배어 있다.

나우웬 특유의 ‘현실을 사는 가슴과 머리의 대화’는 우리 내면에도 역시 존재하는 부분들을 끄집어내어 성찰해 보는 방향으로 인도하며, 신앙이 일상에 어떤 식으로 파고드는가를 알 수 있게 한다. 어디를 가든, 나우웬은 심지어 잡초에서도 선(善)을 보았다. 사람들의 친절을 받아들이고, 고마워하며, 거기에 보답했다. 

특히 인간적인 나약함을 표현할 때는 나우웬도 그랬구나 하며 우리와 같은 여러 가지 면모를 확인하게 한다.

“왜 이렇게 피곤할까? 실컷 잤는데도 깰 때문 한없이 피로가 몰려온다”, “내 몸이 신음하며 쉴 곳을 갈망한다”, “내가 피곤한 것은 단순히 내 일을 하고 싶은데 할 수 없어서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의 짐을 덜어주고자 내가 분에 넘치는 짐을 지고 있어서인가?”

나우웬이 안식년 기간 1년동안 관계한 사람이 1천명이 넘고, 그중 우정으로 이름을 언급한 사람만도 600명이 넘는다. 그의 일기에 언급한 많은 사람은 나우웬과 만남이 자기 인생에서 중요한 ‘사건’이었다고 고백한다. 나우웬은 작고 좋은 만남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를 마주한 사람에게는 그 것 자체가 곧 깊고도 아름다운 것이었다고 한다.


“내 소명에 충실하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이전의 생활 및 사고방식을 고수해야 하는가 아니면 일부 사람들에게 실망을 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용기를 구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은 공동체, 기도, 우정, 친밀한, 일, 교회, 하나님, 삶, 죽음 등 나우웬의 모든 차원에 해당되는 것이었다.


날마다 거행하는 성찬식에 대한 그의 열정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맥이다. 결혼식과 장례식에서 많은 무리와 함께 행할 때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사람들 사이에 공동체 의식이 느껴지는 작고 친밀한 성찬식에서 더 큰 은혜를 받은 듯하다고 수 모스텔러(나우웬유작센터 유작 관리인)는 말한다.

그러면서 이 책은 나그네길과 본향에 대한 그의 믿음이 도처에 배어 있어, 늘 변화하며 성장하는 신앙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소명을 다하려던 그의 평생의 갈망과 씨름을 잘 증언해 준다고 말한다.

“내 소명에 충실하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이전의 생활 및 사고방식을 고수해야 하는가 아니면 일부 사람들에게 실망을 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용기를 구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은 공동체, 기도, 우정, 친밀한, 일, 교회, 하나님, 삶, 죽음 등 나우웬의 모든 차원에 해당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이런 갈등에 답과 방향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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