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7. 죄인과 악마의 대결

오늘날 일부 목사들과 교인들은 진리인 하나님께 나아가는 대신 악마와 죄인의 순환구조에 갇혀버렸다. 권력에 맛들린 종교인들은 극단주의자가 되어 악마나 죄인의 편에 서서 서로를 경쟁상대로 보면서 죄인으로 낙인찍거나 악마로 부르기를 서슴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권력을 차지하려는 자들의 편 가름에 놀아나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그럴 수 있다면 그들의 힘은 점점 약해질 것이다. 악마가 되었던 자는 인간으로 변하면서 시민을 섬기게 될 것이며, 죄인으로 몰렸던 상대 역시 시민을 섬기기 위한 준비에 매진할 것이다.

 

김명현 목사(선한목자교회)
김명현 목사(선한목자교회)

정복자들에게 권력이란 빼앗아 차지하고, 강화해서 지배하고 누려야 하는 것이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나 로마의 시저를 비롯한 황제들이 권력을 차지하고 유지했던 방식을 보자. 그들의 권력은 외부의 적을 대상으로 승리를 거두는 데 있었다. 이들이 권력을 지속시키는 방법이란 끊임없이 적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사실, 적으로 규정된 이들은 정복자들보다 더 선량한 사람들이었을 테지만, 패배한 이들은 반역의 죄인이 되어 죽임을 당하거나 노예가 되었다. 힘을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문제는 자신의 힘을 드러내기 위해 경쟁자를 의도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경쟁을 통한 승리는 힘을 극대화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력은 주권자인 시민이 자신들을 위해 봉사하라고 위탁한 것이다. 그런데도 정치권력은 서비스 정신으로 무장된 사람보다는 정복자들처럼 권력욕을 가진 사람들의 차지가 되곤 한다. 서비스 정신과 권력욕 간의 정도의 차이가 민주주의의 성숙도가 될 것이다. 권력에 대한 욕심이 있는 자들은 적을 만들고 경쟁을 부추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극심한 갈등 원인은 여기에 있다.

먼저 권력을 가진 자는 어떻게 적을 만들어낼까? 그는 공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상대를 범죄자, 즉 죄인으로 몰아간다. 범죄자는 권력자가 힘을 드러낼 수 있는 최적의 대상이다. 반역, 적폐, 카르텔 등은 상대를 죄인으로 낙인찍는 말들이다. 게다가 권력자에겐 죄인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큰 힘을 행사할 수 있다. 우리는 북한을 대할 때도 범죄자, 범죄 집단처럼 인식하곤 하는데 그럴수록 국방력을 강화시키는 명분이 되는 것과 같다. 이처럼 정권을 차지한 권력자는 진영 간의 갈등을 부추기고 동시에 상대를 죄인으로 만드는 것으로 권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

반면 권력을 잡지 못한 쪽은 어떻게 적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들은 권력을 잡은 쪽을 악마화시킨다. 우리의 현대사와 가장 최근의 이태원 참사를 통해서 보듯, 권력을 손에 쥔 자들은 피도 눈물도 없으며, 자신의 실수도 전혀 인정하지 않으며, 오로지 권력을 유지하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사과하거나 반성하기는커녕 거짓말로 둘러대며,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빠져나간다. 권력자는 아랫사람들에 의해 아무 오류도 없는 신처럼 떠받들어진다. 하지만 권력자는 결코 완전무결한 신은 아니므로 상대에게 악마로 보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현실 정치는 이처럼 범죄집단과 악마집단이 서로 싸우고 있는 형국이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범죄집단으로 내몰린 사람들과 악마집단으로 손가락질 당하는 사람들 사이의 투쟁이다. 시민에 대한 봉사 보다는 권력에 대한 욕심이 강할수록 이들의 성향은 강해진다. 그러면서 악마와 죄인의 역할을 서로 뒤바꾸고 있는 것이다. 죄인과 악마의 대결은 흥미로운 구경거리이긴 하지만 바람직한 것은 분명 아니다.

과거 군주주의 시대에는 권력을 잡은 악마와 권력을 잃은 죄인만이 존재했다. 시민은 악마의 편일 수밖에 없었으며, 악마가 힘을 잃고 죄인이 되면 악마를 따르던 시민들도 죄인이 되어 노예가 되었다. 그러나 종교는 특히 기독교는 이 사슬을 끊어냈다. 예수는 사람들을 악마로부터 벗어나게 하며, 죄의 노예에서 해방시켰다. 그리고 지상의 권력 너머에 있는 하나님에게로 인도한다.

그런데 오늘날 일부 목사들과 교인들은 진리인 하나님께 나아가는 대신 악마와 죄인의 순환구조에 갇혀버렸다. 권력에 맛 들린 종교인들은 극단주의자가 되어 악마나 죄인의 편에 서서 서로를 경쟁상대로 보면서 죄인으로 낙인찍거나 악마로 부르기를 서슴지 않는다.

종교적 갱신이 필요하다. 사랑 없이 내가 옳다는 주장으로는 악마와 죄인의 딜레마를 벗어날 수 없다. 종교는 악마와 죄인을 만들어내는 정치 그 너머의 것이 되어야 한다. 영원한 것을 지향하는 종교가 썩어 없어질 권력에 기생할 수는 없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있다.”(베드로전서 1:24-25) 그리스도인은 언젠간 꺾일 힘에 좌우되는 정치가 아니라 영원한 말씀에 붙들려야 한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모든 악의와 모든 기만과 위선과 시기와 온갖 비방하는 말을 버리십시오.”(2:1) 악의, 기만, 위선, 시기, 비방, 이러한 것들이 마르고 떨어져 썩어버리는 것들이다. 정치인들이 서로를 향해 매일 같이 쏟아내는 말들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그런 말을 버리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런 말은 악마가 되어 죄인을 정죄하는 것이며, 죄인이 되어 상대를 악마로 규정하는 말들일 뿐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썩어버리는 것이 아닌 영원한 사랑과 평화를 외쳐야 한다. 동시에 사랑과 평화의 공동체를 만들어 내야 한다. 권력을 가진 악마를 비난해야 하지만, 그것이 또 다른 악마를 만들기 위한 것은 아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권력을 차지하려는 자들의 편 가름에 놀아나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그럴 수 있다면 그들의 힘은 점점 약해질 것이다. 악마가 되었던 자는 인간으로 변하면서 시민을 섬기게 될 것이며, 죄인으로 몰렸던 상대 역시 시민을 섬기기 위한 준비에 매진할 것이다.

누구든 자신의 돈을 빼앗으려는데 혈안이 된 악마나 범죄자가 운영하는 식당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준비된 최상의 음식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식당에서 식사하고 싶지 않겠는가. 분명한 것은 우리가 그러한 식당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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