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전에는 성경을 복음으로 읽어내는 눈이 닫혀 있어 늘 교인의 도덕성, 윤리성에 초점을 두거나 율법적이고 기복적인 설교를 했다. 이런 자신을 발견하면서 그렇게 부끄러울 수 없었다.

오세준 목사<br>새누리교회 담임
오세준 목사
새누리교회 담임

구원의 복음을 모르는 사람이 목사가 될 수 있을까? 교인들이 들으면 말이 안 된다고 할 것이다. 교인들은 목사라면 당연히 구원의 복음을 알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구원의 복음을 모르고도 목사가 되고 복음을 모르는 상태에서 평생 목회하는 목사도 있다. 이런 실태를 조사하여 발표한 통계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상당수의 목사가 복음을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목회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목사가 된 후에 복음을 알았다는 목회자들을 종종 만나기 때문이다. 필자의 군목 동기 중에도 있었다. 오래 전에 필자가 군종 목사로 있을 때 군목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때 같은 방에 있었던 동기 군목이 필자에게 “오 목사, 나는 이제야 복음을 알고 구원받았네”라고 했던 말이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적잖게 충격을 받았지만, 참 솔직한 목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십 년을 목회하고 은퇴하신 모 교단 소속의 원로 목사님이 있다. 필자가 시무하는 교회에 몇 달 전부터 출석한다. 그런데 이 목사님에게서 얼마 전에 놀라운 고백을 들었다. 우리 교회 소그룹 모임에서 고백한 것이다. 그 고백은 “나는 아직도 복음을 잘 모릅니다”라는 것이었다. 교인들은 놀라움과 함께 이 목사님에게 박수를 보냈다. 솔직한 이런 고백이 감동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평생 목회한 목사님 입에서 이렇게 실토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필자도 복음에 눈이 열리기 시작한 게 목사가 되고 나서 십수 년이 된 후이다. 그런데 복음을 모른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복음적인 목사라고 스스로 평가했다. 그리고 복음적인 목회를 한다고 자부했다. 자주 복음을 전하라고 설교했고 전도를 강조했다는 것만으로도 복음을 아는 목사라고 자평한 것이다. 복음을 알기 때문에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목회한다고 여겼다. 그런데 필자의 막역지우(莫逆之友)인 목사가 어느 날 “오 목사! 복음을 아는가?”라고 질문했던 적이 있다. 당시에 이 질문이 황당하게 들리기도 했고, 기분이 상하기도 했다. 아무리 친구지만 나를 무시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이게 필자에게 거룩한 자극이 되고, 복음을 탐구하는 도화선이 되어 복음에 눈이 열리는 계기가 되었다. 복음에 눈이 열리면서 내가 바로 복음을 모르는 목사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성경을 복음으로 보기 시작했고, 복음이 있는 설교에도 눈을 떴다. 그전에는 성경을 복음으로 읽어내는 눈이 닫혀 있어 늘 교인의 도덕성, 윤리성에 초점을 두거나 율법적이고 기복적인 설교를 했다. 이런 자신을 발견하면서 그렇게 부끄러울 수 없었다. 지금은 많은 변화가 왔지만, 아직도 내 안의 율법주의 잔재를 발견하면서 흠칫 놀랄 때가 종종 있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도 복음을 몰랐다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 복음을 모른다는 게 말이 되냐고 하면서 말이다. 교회에 다니면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듣는 말이고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도 이 정도는 아는 내용이니 그럴 만도 하다. 교회에 다니는 많은 교인이 이러한 수준에서 복음을 안다고 말한다. 실상은 복음을 모르는데 안다고 하는 게 문제다. 이런 사람은 복음을 들려줘도 듣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같은 상태에 머물러 있는 목회자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목회자의 설교를 듣는 교인들이라면 이 수준을 벗어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교인들이 복음을 듣고 구원받으려면 목회자가 먼저 복음의 눈이 열려야 한다. 목회자가 복음의 눈이 어두워 교인들과 함께 구덩이에 빠진다면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마 15:14)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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