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이 증거하는 예수(5)-요한복음 8:12-20

예수의 이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는 자들이 예수와 어울리는 바리새인 중에는 없다. 껍데기들 뿐이다. 멍청이들, 먹고 배설할 줄이나 겨우 하는 수준의 자식들. 예수의 답답한 시간이다. 아직 제대로 귀가 뚫린 자들이 예수 앞에 없다. 잘하면 뭉둥이 찜질이라도 한 번 당했을 터인데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씁쓸하다.

“나는 어디서 오며 또 어디로 가는지를 아는 사람이다.” 단순명쾌한 예수님의 인생론이다. 본문 안에서 바리새인들과 만나는 자리니까 조심스럽게 접근하신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이렇게 운을 떼자 저들은 눈을 부릅 뜬다.

어찌 너 스스로 자기증거를 즐기느냐? 네가 너를 증거하였으니 이는 참되지 못하도다. 그러나 예수는 저들의 올가미에 걸리지 않았다.

이 사람들아, 나는 내가 나를 증거하여도 충분한 (실력이 있는) 사람이야. 난 내가 어디서 오며 또 어디로 가는지를 잘 알아요. 세상 사람들 중에는 자기가 누구인지? 또 출생지는 어디인지, 장차 갈 곳이 어딘지를 전혀 모르는 이들이 많지만 나는 알아. 예수는 자신감 넘치게 말했다.

바리새인들이 위축될 수밖에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어디서 왔으며, 또 어디로 갈지를 (잘) 알고 있다니 일단, 그들은 에수의 이 말에 기가 꺾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쉽게 물러날 바리새인들이 아니다. 어찌해서든지 예수의 말꼬리를 잡아서 물귀신 작전을 하려고 벼르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껌뻑거리지만 묘수가 없다. 그래도 앞서 한 말 자기가 자기를 증거한다는 것이 쟁점이 될 듯했다. 그들은 줄기차게 물고 늘어졌다. 너는 네가 너를 증거하고 있어. 겸손치 않아요. 잘난척 하고 자기는 선지자라는 자부심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말투가 너무 당돌해요.

쉽게 물러서지 않는 바리새인들에게 예수께서 말했다. 사람을 외모로 보고 판단하지 마시오. 사람을 육체를 따라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아요. 당신들은 내가 갈릴리 어부들의 친구요 배운 것도 별로 없는 사람, 겨우 선지자 흉내나 내는 사람으로 알고 있어요. 내가 나 자신을 증거하니까 여러분은 율법이 요구하는 증인을 떠올리는가 보지만 정히 그렇다면 내게도 율법 이상의 증거가 있어요.

예수께서는 감추어 둔 비밀, 또 비밀이 아닌 비밀을 하는 수없이 꺼내들었다. 내가 세상의 빛이라 했던 말의 반복이다.

대화의 첫마디부터 저들은 예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라 했을 때 잘난 척 하는 말로 알아들었다. 비린내 나는 갈릴리 촌놈으로 알고 있는데 자기를 세상의 빛이라 하고, 나를 따르라 하고,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라고 세상의 빛을 얻는다면서 허풍을 떠는 예수가 저들은 못마땅했던 것이다. 그저 그 정도의 판단이었을 뿐이다.

율법의 증인을 말하지만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잘못된 종교가들의 입버릇일 뿐이다.   종교인들, 종교 전문가라고 자칭하는 율법학자들이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는 사람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핵심을 파고드는 힘이 없으니 안타깝다.

오늘의 우리 종교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세상의 빛”이라 했는데 반응이 없다. 이 말을 추상적 발언 또는 관념어로 치부하는 사람들은 영적 감흥도가 낮은 사람들이다. 지능지수가 떨어지는 편에 속한다.

하는 수 없이 예수는 바리새인들과의 대화를 싱겁게 이어가게 되었다. 어린아이의 입에 밥을 떠먹여 주듯이 하게 되었다.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인이 참되다 기록되었으니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느니라”(요 8:17-18).

이렇게 말을 하시니까 겨우 저들 바리새인들이 심장이 꿈틀, “…그들이 묻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도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요 8:19).

예수의 이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는 자들이 예수와 어울리는 바리새인 중에는 없다. 껍데기들 뿐이다. 멍청이들, 먹고 배설할 줄이나 겨우 아는 수준의 자식들. 예수의 답답한 시간이다. 아직 제대로 귀가 뚫린 자들이 예수 앞에 없다. 잘하면 뭉둥이 찜질이라도 한 번 당했을 터인데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씁쓸하다.

우리들이 예수와 함께 살고, 기독교인이고, 목사요, 또 더 좋은 칭호도 가진 기독교인들이 많은데 우리들도 모른다. 내가 빛이라 했으나 그 말씀을 하시는 이 앞에서 눈만 껌뻑거리는 사람들. 내가 나를 증거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가 또 나를 증거한다는 말을 무더운 여름날 밤 앵앵거리는 모기 소리 정도로 듣는 자들이 예수 주변에서 앵앵거리거나 깡깡거려도 세상 사람들은 긴장하지 않는다.

사람아, 예수를 가슴에 담은 사람들아. 하나님 품속에서 지금도 살아가고 있다면 이 어려운 때에 나요, 나 여기 있어요, 소리쳐 보시라. 세상이 어디쯤인지, 우리 곁에 예수 또는 예수와 함께 하는 이들이 있는데도 기쁨과 삶의 위안을 나누어 갖지 못한다면 내가 빛이야, 내가 이렇게 엎드려 있지만 나 혼자가 아니야, 나를 보내신 이가 지금 여기 나와 함께 계신다고 소리쳐 보라.  

/목사,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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