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년<br>한남대 명예교수
김조년
한남대 명예교수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 전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에 일본 사가미만(相模灣)을 진원으로 한 7.9도의 큰 지진이 일어났을 때 도쿄 주변에 막대한 피해가 있었다. 사망자와 행방불명자가 약 10만 5000여 명이 되고, 도쿄시의 60%가 불에 탔다. 이때 군부, 경찰, 일반 사람들에 의하여 그 지역에 살던 조선인 중 6000여 명, 중국인 700여 명이 학살당했단다. 그 일이 일어난 100년이 되는 지금 희생자를 추모하고 반성하고 새로운 역사를 짓고자 하는 모임들이 참 많은 행사를 벌였다. 

도쿄의 퀘이커 친우들의 배려로 나도 도쿄를 방문했다. 세심하게 연구하고 조사한 도쿄 친우의 안내로 도쿄 밖 요코하마와 그 주변 흔적없는 학살지역을 답사했다. 그리고 일본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일본 정부에 진실선언을 촉구하는 촛불집회에도 참여했다. 그런 다음 ‘관동대지진 조선인, 중국인 학살 희생자 100년 그리스도인 추모집회’에 참석했다. 내가 참석하지 않았고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집회와 행사들이 많이 열렸다.

그 당시 처음에 누가 발설했는지 모르지만, 당시 불안한 정국이나 상황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하여 정부에서 그렇게 말을 조작하여 퍼트렸다고도 하지만, 아무튼 ‘불령선인’(不逞鮮人: 원한을 품은 불량한 조선인)들이 일본인을 죽이려고 우물에 독약을 넣고, 집에 불을 질렀다는 유언비어, 헛소문이 퍼졌다. 그에 따라 처음에는 군인과 경찰들이, 나중에는 ‘자경단’이라는 민간인으로 조직된 단체가 주동이 되어 이른바 ‘조선인 사냥’을 하였다. 

농기구, 칼, 창, 죽창, 몽둥이 따위를 이용하여 마구 죽이고, 집단 매장을 하고, 기름을 뿌려 태우고, 시신을 강물에 흘려보냈다는 것이다. 그때 여러 이유로 그곳에 와서 살던 조선인들과 중국인들이 이렇게 하여 끔찍하게 희생당했다. 중국에서는 공식으로 요청하여 중국인 희생자를 위한 추모비가 세워졌지만, 조선인은 당시 일본인 신분이었기에 아무런 추모의 흔적을 두지 않고 있다. 이 말은 곧 그 당시 조선인 학살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발표와 희생자를 위로하는 말이 없단 뜻이다.

누구는 아주 넓은 관용을 베풀듯이 100년 전의 사건으로 지금을 어렵게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과거의 일에 발목이 잡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편 맞기도 하 그 말은 엄밀한 전제가 필요하다. 그런 말은 인간사를 모르는 일이요 역사라는 것이 어떻게 흐르고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 연관을 맺는가를 모르는 자의 어리석은 소리다. 지나간 날에 한 번 흘러간 더러운 물을 마신 나무를 정화하려면, 계속하여 ‘지금’ 맑은 물을 흐르게 하여 씻어내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오래 전 나는 깊은 바다 고기를 연구하는 분을 만났었다. 그는 독일 해양관련기관의 초청을 받은 분이었다. 그 당시 독일에서는 먼 바다에서 잡아 온 물고기들이 이상한 모양으로 뒤틀린 것을 발견하고 연구 기간 내내 깨끗한 물로 오염되어 뒤틀린 부위를 끝없이 씻어 보겠단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매우 깊은 신선한 감동을 받았다. 과거의 오염된 부분을 지금의 깨끗한 물로 씻어낸다는 것, 이것이 바로 역사청산이요,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것이요, 새로운 인류의 문화를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왜 로마가톨릭 교황청은 수백년이 지난 십자군전쟁을 회개하며, 루터를 시작으로 한 개신교운동을 파문한 것으로부터 복권하였을까? 왜 영국왕실은 수백 년 전 벌인 식민지침탈의 역사를 사과했는가? 조선 왕조에서도 사문난적으로 몰려 유배를 가거나 처형당한 이들을 뒤에 풀어주기도 하였다. 그렇게 한다고 그 당시 그 일을 당했던 사람들이 그 당시의 삶으로 복권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위로를 받는 것도 아닐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그 당시의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과 앞으로의 삶을 말하는 것이다. 과거 억울하게 죽은 자들을 해원하지 않으면 지금 살아가는 사람들의 해원과 활발한 삶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과거를 지금의 맑은 물로 씻는 일반 시민들의 국제연대운동이 펼쳐지기를 빈다. 한 정부의 잘못에 대한 반성과 사죄는 형식이지만, 그 형식은 활발한 지금과 앞으로의 생명살이를 약속하고 이끌 것이다. 한 정부의 사실인정은 곧 보편 생명의 흐름을 보장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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