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인 대안은 30년 전 “1993년 이-팔 오슬로 평화협정”을 다시
살려내는 것이다. 같이 살아야 한다. 왜 너는 죽고 나는 살아야 한다는 것인가. 함께 살아야 하는 법칙을 따라야 한다.

가자지구의 파괴 &nbsp; 사진출처=유엔, 유니세프, 하산 이슬리에<br>
가자지구의 파괴   사진출처=유엔, 유니세프, 하산 이슬리에

     또, 중동전쟁 하려 하나?         

며칠 전 가자지구 한 병원에 로켓포탄이 떨어졌다. 남녀노소 환자들, 특히 어린이들이 많이 희생되는 등 처참한 현장을 바라보게 되었다. 시가지 한복판에 로켓포탄이, 그것도 주로 노약자나 어린이들이 치료 중에 포탄을 맞아 안타까운 처지가 되었다.

이에 이스라엘을 기습 침공한 당사자인 가자지구 지배자들인 하마스 세력은 이스라엘이 무차별 공습으로 병원에서 치료 중인 아녀자들과 어린아이들이 처참하게 죽어갔다고 했다. 그러나 전쟁 당사자인 이스라엘보다 그 시간 이스라엘 상공을 비행하였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맨 먼저 부인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 국방성 자료를 근거로 포탄이 이스라엘 방향에서 날아가지 않았다고 부인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하마스나 그의 동조자인 중동의 팔레스타인 지지세력들의 이스라엘 포격론이 생각보다 요란하지 않았다. 하마스 내부의 오발사고인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 될까.

가자지구 병원에 포탄 하나가 잘못 떨어져서 500여 명이 억울하게 죽어갔다는 것이 이 전쟁의 실상은 아니다.

비참, 비극, 인류사의 부끄러운 비극의 현장이 이스라엘 영토 안에서 잊힐만 하면 다시 일어나곤 하는 중동참상이다. 이스라엘은 아주 먼 옛날, AD 135년 로마제국을 상대로 3년 전쟁을 일으켰다.

이른바 바르코크바 전쟁, 로마제국의 식민지 생활 더는 싫다고 일어난 이스라엘의 로마제국을 향한 제3차 항쟁은 3년 만에 패전했다. 이스라엘의 거센 도발에 혼쭐이 난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이스라엘 영토를 말 그대로 초토화시켰다. 나라 이름을 이스라엘에서 팔레스타인으로 바꾸어버리고, 예루살렘도 캐피톨리나로 바꿔버렸다. 또 유대-이스라엘 국민들을 자기 영토인 이스라엘 땅에서 국외 추방시켜버렸으며, 유월절과 같은 절기에도 유대인들은 고국, 고향인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방문마저 막아버렸었다.

다행히 예루살렘만큼은 옛 이름을 찾아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모친 헬레나의 은혜로 되찾았으나 이스라엘 국호는 사라지고 계속해서 중세기 오스만 투르크시대 300여 년은 조직적인 규모의 팔레스타인 종족들이 자기들의 영토 행세를 했다.

그러던 그 땅 팔레스타인(옛 이스라엘 터전)은 제1차 세계대전을 독일과 동맹군이었던 오스만 투르크의 패전과 함께 당시 점령군 영국은 1917년 "벨푸어 선언"을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나라 이름을 되찾아 주었다.

옛날 이야기가 아니다. 2천여 년 전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분노. 또 있다. AD 637년 아라비아에서 일어난 이슬람 무함마드의 제자인 칼리파 오마르가 유대-예루살렘을 점령했고, 십자군 전쟁 승리한 AD 1099년 유럽 기독교 십자군이 예루살렘은 물론 이스라엘 대부분의 땅을 되찾았다. 

그러나 AD 1291년 십자군이 완전히 패전하여 맘루크 이슬람 세력에게 쫓겨난 이후 AD 셀주크 투르크, 그 뒤를 이어서 AD 1453년 오스만 투르크가 동로마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이후는 제1차대전 종전까지 세계기독교의 영향권 아래서 살아왔던 이슬람 종파를 기독교는 관리하지 못했다.

오늘의 중동문제, 아프가니스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문제까지도 모두 세계기독교,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신교의 윤리와 실제적인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시사문제, 정치사회 현상을 말하자는 것이 아니다. 금번에 일어난 가자지역의 하마스 세력이 이스라엘 네타냐후 정부를 우습게 보고 있다. 네타냐후 자신이 장기권력을 누리면서 약점도 보이고 있을 뿐 아니라 1-4차 전쟁 때와는 다르다는 중동사의 변화, 하마스나 헤즈볼라 등 친 팔레스타인 세력들도 실력이 향상되고 있음을 기독교를 둘러싼 서유럽 세력들은 방심해서는  안 된다.
 

     중동의 해법은 무엇일까?      

+  함께 살아가는 길이다.

필자는 이스라엘과 튀르키예를 비교적 많이 방문했다. 그것도 단독여행이 10여 차례가 넘을 정도다. 초기에는 이스라엘에서 구약, 튀르키예에서 신약공부를 전문가답게 해보자는 것이었으나 이스라엘을 열심히 다니던 2000년대 초, 벳산 키부츠에 짐을 풀고 40여 일 지낼 때는 상당한 경험이 쌓였던 때다.

어느날은 사마리아에 들어갔다가 요셉의 무덤가에 차를 막 세우고 내리려 하는데 어디선가 교복을 입은 중고등생들이 20여 명 우르르 몰려들어 차를 두드리면서 위협했다. 한동안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었는데 담임선생인가 싶은 사람들이 학생들을 불러세웠다. 그 사이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우리 일행은 차를 돌렸는데 차 뒤로 크고 작은 돌멩이들이 날아오르기도 했었다. 튀르키예(터키)에서는 몇 배가 더 큰 나라인데도 어떤 봉변을 당해본 일이 없었는데 팔레스타인 지역은 가끔씩 험한 곳들이 있었다.

그래도 이스라엘 여행을 다녀보면서 깊이 느끼는 것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공생관계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팔 지역은 과감하게 <연방정부>를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까지 해본다.


+  3자 공동체를 만든다.

이스라엘 땅은 아브라함의 땅, 약속의 땅이다. 아브라함이 그 땅 가기 전 5천여 년 전부터 인류가 살아온 초기 구석기시대를 형성했던 곳이지만 아브라함이 메소포타미아의 갈데아 우르를 떠나 하란에 왔다가 다시 이스라엘 땅 세겜에 짐을 풀었고 다시 이집트를 경유하여 헤브론에 정착할 때부터는 가세가 넉넉해졌으며, 고대문명의 중심 메소포타미아와 지중해 문명권으로 이동하여 나라를 세운 그의 자손들의 이스라엘은 문명의 첨단을 목표했을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유대교가 나왔고, 이스라엘에서 기독교, 또 이스라엘 사촌이 이슬람 아닌가. 이 세 종파, 유일신 종교의 대표들이라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은 오늘의 인류사의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평범한 현실적인 대안은 30년 전 “1993년 이-팔 오슬로 평화협정”을 다시 살려내는 것이다. 같이 살아야 한다. 왜 너는 죽고 나는 살아야 한다는 것인가. 함께 살아야 하는 법칙을 따라야 한다.

아직도 늦지 않다. 오슬로 평화협정을 되살릴 수 있다. 주변 강대국들이나 종교나 종파적 이해 당사자들도 두 국가 해법을 위해 힘을 보태주는 것이 인류가 공존하는 기초기반이 될 것이다. 

/목사,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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