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를 섬기는 교회, 행복한 교회・성도’ 표방하며 ‘삶’ 속에서 주님을 드러내다

노회에서 일본 여행 갔을 때 전도한 집사 요양원에서 소천 소식에 ‘선한 목자’ 역할 위해 한달음에 귀국해 장례-“지금도 감사”

선교사 자녀 등록금 필요 얘기 듣고 ‘등록금 주라’는 마음에 동분서주, 주님의 인도로 해결, 파라과이에 크리스탈 강대상 요청에 흔쾌히, 선교사 자녀 방문에 현수막 환영회 등 감동

가정사역 공부하며 ‘다른 것은 틀린 거 아님’ 배워 관계 좋아지고, 특히 조락희 사모와도 끈끈해져…사모 뒤늦게 신학 및 성악 공부하며 교육하고 음반 출시해 재정에도 도움 줘  

 

  영월이 좋은 목사, 선교사 섬기는 신자들

영월 영락교회에서만 28년째 사역하는 안봉엽 목사. 영월이 너무 좋다고 한다.
영월 영락교회에서만 28년째 사역하는 안봉엽 목사. 영월이 너무 좋다고 한다.


“저는 영월이 참 좋습니다. 너무 좋습니다.”

강원도 영월 읍내에 자리한 영락영월교회 안봉엽 목사(67)가 이렇게 말하며 환하게 웃는다. 안 목사가 영월을 이렇게 좋아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시골 출신이라 도심보다는 소도시가 자신의 정서에 맞고, 스쳐지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감성이 풍부해 사람들과의 관계를 심도 있게 하기에는 2만 여 명이 함께 하고 있는 소도시 영월이 자신에게 딱 맞는단다.

그뿐이 아니라 영월은 산에 둘러싸여 있는 산속 소도시여서 경치도 좋고 공기도 신선하다. 그러나 안 목사가 영월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것은 ‘하나님이 이곳으로 나를 보내셔서 하나님의 양떼를 맡기셨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 사명으로 안 목사는 이곳 영월에서 28년째 신자들과 주민들과 더불어 웃고 울며 인생을 살고 있다. 영락교회 명칭은 한국교회가 존경하는 고 한경직 목사가 서울에 설립한 교회를 떠올리며 정했다. 안 목사가 평소 존경하고 닮고 싶은 분이었다.

영월읍에 자리한 영락교회
영월읍에 자리한 영락교회

이곳 영월에서 영락교회는 ‘선교사를 섬기는 교회’를 표방하며 아낌없이 주고, 섬기는 일을 기쁘게 하기로 유명하다. 영월 영락교회가 선교사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안 목사가 방글라데시로 선교방문을 했을 때 선교사들을 보면서 한국 초기에 외국선교사들이 고생하면서 선교하는 모습과 같은 것을 확인하면서부터다.

마음 같아서는 낙후된 방글라데시에 와서 선교하고픈 간절함이 있었다. 그때 ‘나를 대신해 헌신하는 선교사들이 고국 한국에 왔을 때 최고로 섬겨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래서 선교사들을 잘 섬기다 보니 연결이 계속되면서 한 달에 한두 번은 주일예배에 선교사들이 강단에 설 정도로 선교사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다.

“많은 신자들이 참석하는 주일 낮예배에 선교사들의 사역보고와 간증을 들으면서 도전도 받고, 마음을 모아 기도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그리고 저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5년 전에 마련한 게스트하우스에 선교사들을 모신다. 시골집을 리모델링했는데, 거창하지는 않지만 숙식에 불편함 없이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곳이어서 모두들 만족해 한다.

“성경번역을 위해 어느 단체에서 인근에서 모임을 가졌는데, 숙소 마련이 어렵다는 얘기를 듣고 며칠 머무셨다 가신 선교사님 두 내외분은 ‘친정집처럼 너무 잘 쉬었다 간다’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 감사했습니다.”

중국 모 선교사의 자녀 3명 등록금 6백만원이 모자란다는 소식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빚을 내서라도 해보겠다’며 함께 기도하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는데, 하나님은 이모양 저모양으로 딱 맞춰서 마련해 주신 일 또한 신자들과의 간증거리기도 했다.  

파라과이 &nbsp;남학현 선교사에게 선물한 크리스탈 강대상.<br>
파라과이  남학현 선교사에게 선물한 크리스탈 강대상.

인도네시아의 모 선교사는 서울대 상대 출신인데, 은혜 받아서 선교사가 되어 사역하다가 영월영락교회에 와 있었는데, 그 자녀들이 미국에서 방문했을 때 현수막에 이름까지 넣어서 환영해 준 일, 건축을 위해 준비하던 파라과이 선교사가 크리스탈 강대상을 보고 파라과이에는 없다며 신기해해서 선뜻 헌물한 일, 필리핀에는 캘린더가 필요하다고 해서 몇 년 전부터는 한국에서 만들어서 보내주고 있는 일 등 세계 곳곳의 선교사들과의 연대를 통한 하나님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은 끊이지 않는다. 

선교비와 기도로 후원하는 선교사와 기관이 20곳에 달할 정도다. 교단을 초월해 입소문을 타고 어떻게 알고 연락해 오면 안 목사는 언제나 오케이다.

 

   신자들이 행복했으면 

“한 사람이든 백 명이든 하나님이 맡기신 양 떼이니 저는 다른 생각 하지 말고 그들을 돌보고 양육하는 일에 끝까지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이런 순수한 사명으로 사역하는 안 목사가 한 번은 교단(예장통합) 노회에서 일본으로 연수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아내와 함께 많은 동역자들이 함께 동행한 여행이었는데, 한국교회에서 연락이 왔다. 안 목사가 전도한 집사님이 치매가 걸려 요양원에 모셨는데 돌아가셨다는 슬픈 소식이었다.  

해외 선교지를 방문했을 때. 현지에서 사역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서 대신 선교사들을 아낌없이 후원하고 지지하며 선교사를 섬기겠다고 다짐한 안봉엽 목사. 그 이후 영락 영락교회는 지금까지 그 초심을 키워가고 있다. 
해외 선교지를 방문했을 때. 현지에서 사역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서 대신 선교사들을 아낌없이 후원하고 지지하며 선교사를 섬기겠다고 다짐한 안봉엽 목사. 그 이후 영락 영락교회는 지금까지 그 초심을 키워가고 있다. 

그 소식을 들었으니 비행기 티켓을 마련해 빨리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일본까지 왔는데, 다른 사람에게 맡겨도 되지 않겠느냐는 조심스러운 제안들이 있었다. 그러나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목숨도 버린다는데, 여기서 여행하고 있으면 되겠나’ 하는 마음이 들자 두 번도 생각하지 않고 비행기표를 구해 택시를 타고 주검이 된 그 집사님과 마지막을 함께 했다. 

한평생 보살피며 사랑하고 돌아본 그 집사님을 입관부터 발인까지 정성껏 마음을 다해 보내드리고 나니 얼마나 감사한지, 지금 생각해도 돌아와서 목양한 그 일은 감사한 일이 되었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목숨까지 버리는 마음으로, 섬기는 마음이면 성도들도 알아주는 것 같습니다. 가끔 염소도 있어서 받아치기도 하는 신자가 있지만, 어떻게 합니까, 그때는 그저 받아주어야지요.”

주님 가신 길이, 사도 바울이나 제자들이 가신 길이 그 길이 아니었겠느냐며, “평생 감사, 평생 사랑하는 마음이고, 성도들이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목회의 길을 걸어왔다고 안 목사는 고백한다.  

자기 생각에 빠지게 되면,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늘 주님을 바라보면서 걸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게 살다보니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지 모른다”고 싱글벙글이다.

 

   아내 사랑 익히니 신자들 사랑도 익어가

특별히 좋을 것도 없을 것 같은데, 안 목사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세 가지 감사가 있다고 말한다.

첫째는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을 받은 것이 감사하고, 새벽 첫 시간에 날마다 하나님께 찬송과 기도로 예배드릴 수 있는 사역이 자신의 일이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고 고백한다. 세 번째는 아내 조락희를 만난 것을 꼽았다. 

“시골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사는 저에게 도심에서 자라 피아노 잘 치고, 노래도 잘 하고, 세련된 여인을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 지금 생각해도 감사합니다.”

그런 아내를 위해 안 목사는 일찍이 가정사역 공부를 함께 해 어려운 남녀 사이를 극복하고 더 견고해지는 부부관계를 통해 교회도, 가정도 행복의 길로 젖어들게 하는 계기가 됐다.

“나와 다른 건 틀린 게 아니고 그저 서로 생김새가 다른 것처럼 다른 것임을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그런데 사실, 가정사역 공부는 군대생활보다 더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아내와의 관계를 위해서도 열심히 노력하는 안 목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아내가 달라고 하면 뭐든지 다 준다고 말한다. 그렇게 사랑을 받아서인지 아내는 몇몇 교단에서 신학을 공부하기도 하고, 체계적으로 성경을 공부해 지도자과정을 마치고 신자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기도 한다. 늦은 나이 60이 넘어 평생 하고 싶었던 성악을 전공해 찬양 음반도 낼 정도의 실력을 겸비하고 있다. 그런 아내를 만나 슬하에는 두 아들(큰아들은 목회자로, 작은아들은 탤런트로)은 제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사실 아내의 성악 찬양 음반은 7년 전 모 교회와 합병을 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많은 이들로부터 후원을 받는 통로가 되기도 했다. 어려워진 목회자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합병을 했는데, 복병을 만나 시련을 겪을 때였는데, 찬양 음반을 많은 이들이 구입해줘서 은혜롭게 해결할 수 있었단다.

영월 영락교회는 이렇게 가정에서 꽃피운 사랑 가운데 교회 신자 개개인과 주민에게도 향기가 번져서 주님의 생명들이 조금 더 아름다워지는 데 제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주민을 대상으로 무료 의료봉사와 이미용봉사를 하기도 하고, 장수사진을 무료로 찍어드리는 등 교회 손길과 위로가 필요한 곳에는 언제든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다.

인정이 많고 베풀기 좋아하는 어머니, 그리고 일찍이 영남지역에 신협을 설립하실 정도로 추지력이 강한 아버지 슬하에서 태어난 안봉엽 목사인데, 자신은 어머니 성격을 그대로 닮은 것 같다고 말한다. 어머니의 ‘아들 하나 주시면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한 기도를 통해 목회자가 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오늘도 환한 미소와 사랑 가득한 에너지로 사역하는 안 목사의 얼굴이 떠오른다. 영월은 영락교회가 있어서 참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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