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에서 다스려 나갈 때마다 방어력을 기를 줄 알아야

요즘 교회가 사회적 쟁점에서 비켜 서 있는듯한 소외감을 느끼기도 한다. 섭섭함에서 오는 착각일까? 그리고 우리 사회가 안정되고 국내정치현장이 조금씩 여유를 찾았으면 좋겠는데 너무 삭막하다. 어떻게 도와줄 수 없을까.

한 번만 생각을 고쳐서 살펴보면 인간은 모두 약자일 뿐이지, 80년대 대책이 없을 때 이리저리  쫓기던 아이들, 나 몰라라 했던 때를 회상해 본다. 하긴 시대의 흐름은 단번에 깨달음이 주어지는 것 아니다. 반복을 거듭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발견해 가는 것도 고마울 따름이다. 새해는 총선거도 있으니 교회들도 여와 야당 눈치 보지 말고 과연 의회를 잘 이끌어 대한민국 민주제도를 한 단계 끌어 올릴 수 있는 인물을 찾아보는 것이다.

우리의 민주주의도 그동안 많은 훈련을 한 셈이다. 시행착오도 많았고 잘못된 방식도 많았다. 민주제도의 일반론 위에 교회가 지닌 예언자적인 힘을 통해서 수준 있는 민주제도를 정착시키는 일에 기여했으면 좋겠다. 그럴 수 있으려면 교회나 그리스도인들이 정세를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이스라엘 하나나님이 그 백성과 선지자들을 이끌고 이스라엘을 지키고자 했으나 북왕조나 남왕조 모두 망했음을 깊이 생각해 보라.

그러나 메시아 예수 오셨다. 예수께서 생각하시는 나라가 있다. ‘…그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사 11:6-8)

어떤가? 사실 이 구절은 ‘들소리’가 지상의 푯대로 삼고 있는 최상급 가치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어떤 이는 거부감을 느낀다고 내게 귀띔해 주기도 한 일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말씀을 대응 용어로 제시했다. 이사야 53장 1절 이하 7절까지다.

이 정도의 말씀이면 넉넉하다. 신앙과 생활 속에서 자기를 다스려 나갈 때마다 우리는 자기 방어력을 기를 줄 알아야 한다. 내가 한 방 멋지게 날리면 상대방 펀치도 곧바로 날라온다는 것을 모르고 방심하다가는 상대방에게 당하고 만다.

사단이 얼마나 영악한가? 높은 수준의 신앙은 자랑스럽지만 소중한 자기 신앙을 지혜롭게 지켜내는 법을 늘 익혀두어야 한다.

어려운 한 해를 마무리한다. 재난의 4년 동안 겪으며 살아남은 것, 참으로 감사하다. 14세기 흑사병으로 서유럽인들 절반이 무너졌다는 내용을 책에서만 읽다가 지난 3~4년 동안 피가 마르도록 경험했다. 이제 우리는 잃어버린 그 날들 아쉬워하기보다는 그날들을 교훈삼아 앞으로 더욱 열심히 애쓰고 노력하고, 또 더욱 기도하면서 살아가자.

/본지 발행인

<복음인in 들소리>는 하나님의 교회다움을 위해 진력하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동반자로서 여러분과 동역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 샬롬!

후원계좌 : 국민은행 010-9656-3375 (예금주 복음인)

저작권자 © 복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