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광섭 목사<br>창현교회 원로
허광섭 목사
창현교회 원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치심과 그때 그 상황에서 응답하신 예수님의 모습이 지금 나의 삶에서 실천하며 살아가자는 사람들의 신앙공동체가 교회다. 교회의 사순절은 △예수님의 돌아가시는 과정과 결과를 알아보고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에 모인 사람들의 종교와 신앙 모습을 헤아리고 △오늘 너와 나의 신앙으로 하늘을 향해 결단하는 것이며 △예수님의 부활을 맞이하는 신앙공동체로서 생명 살림을 준비하고 확장에 헌신을 다짐하려는 것이다. 

초대교회는 1, 2세기까지 치열하게 그리스도론을 정립했다. 사순절은 개인과 지역과 개별 교회의 신앙 표현의 다양함으로 생긴 무질서와 신앙혼돈을 막고 교회가 지켜야 할 복음과 개인과 신앙공동체의 바로 됨을 위해 공회의 결정으로 현재의 사순절 모습을 결정했다. 기원후 325년 니케아총회에서 사순절 기간 문제를 부활전 40일로 정했다. 

40일로 결정한 데는 성서로부터 40이라는 의미의 숫자를 찾았다. (1)모세의 인도 아래 조상 아브라함이 약속받는 자유와 평화의 하나님 나라 건국을 위한 광야 40년 생활에서 40을 찾았고 (2)건국이념을 잃어버리고 보다 강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은 변질된 종교·권력과 사회풍속들을 향해 아니요! 안되오! 하며 도전했던 선지자 엘리야가 신앙 때문에 죽음의 위기에 처했다. 하나님의 약속과 역사란 무엇인가? 이런데도 신앙과 사명을 지켜야 하나? 하나님은 왜 침묵하시나? 하는 현실적 갈등 속에 해결의 응답을 받은 기도의 기간 40일이다. 

(3)위의 두 경우보다 강조된 것은 예수님이 세례 받으신 후 하나님 나라 운동을 시작하시기 전에 40일 동안 광야에서 유혹자 되는 또 다른 자신과 싸우시며 기도하신 기간이다. 소유보다 하나님의 복음을, 가능성과 절망에서도 하나님 절대 신앙을, 나의 출세와 명예보다 하나님 나라 건립을 위한 절대 순종을, 하나님에게 만 영광을 드린다는 절대 예배를,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사람 되기를 위한 절대 헌신을 결정하신 광야기도에서 40이다. 

예수님께서 세상을 행해 첫 복음전파를 위한 걸음을 걸으시며 외치시기를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셨다. 하나님 나라 건립은 세상 안에서 사는 교회와 개인의 삶 가운데서 이루어야 할 절대 사명이요 절대 과제다. 이제 스스로 묻자. 나의 됨됨이를 돌아보는 회개가 있는지? 현실에서 하나님 나라 사람답게 살고 있는지? 나의 믿음은 무엇을 위해 무엇을 믿고 있는지? 혹시 내 믿음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없거나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나의 욕심과 욕망을 그리스도의 자리에 모시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빌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 내 뜻대로 예수님을 부리는 능력자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결국, 종교 장사꾼 내지는 영혼 사기꾼으로 전락되었거나 되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세상 사람들이 하늘을 향해 아니요! 하며 그것이 이 시대를 사는 지혜와 능력과 재간으로 여기고 살 때 하늘 사람은 세상 안에서 세상을 향해 아니요! 안 돼요! 외치며 하늘을 향하여는 예! 하는 그 한 사람으로 살라고 부름을 받은 그리스도의 사도들이다. 그러기에 그리스도 신앙고백을 하는 자는 모두가 사도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죽음 자리를 예루살렘으로 결정하시고 돌아가심의 때를 유월절로 택하신 데는 이유가 있다. 유월절은 이집트라는 죽음의 세력 아래에서 자유와 독립된 나라를 건설하신 시작의 날, 하나님의 날이다. 그날 유월절 전날 밤에 문설주에 바른 구원의 증표로 죽은 양과 피가 되어 예수님은 돌아가신 것이다. 새 이스라엘인 하나님의 나라 역사가 예수님의 돌아가심을 통해 시작되는 것이다. 또 다른 출애굽이 시작된 것이다. 이런 죽음을 향한 예수님의 모습을 보며 백성들과 많은 여인이 가슴을 치며 울었다고 '누가'는 현장을 전하고 있다(눅 23:27-31). 우는 여인들에게 ‘너희는 예루살렘의 딸들이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와 네 자녀를 위해서 울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은 평화가 온전히 이루어지고 세상을 향해 평화를 펼칠 시발점으로 하늘이 점찍은 장소다. 그러나 그날 예수님의 예루살렘과 유월절은 평화가 아니다. 국가권력과 종교와 문화와 전통이 한 생명을 죽이는 힘의 세상이었다. 예수님은 우는 여인들에게 눈물의 현실을 넘어 자녀들이 살만한 나라를 일구어야 하는 예루살렘의 딸이라고 하셨다. 죽임을 당하는 그 한 사람 예수는 무능해서도, 약해서도, 모자라서도 아니다. 하늘나라 완성과 옳음의 길을 위해 생을 다하신 그 한 사람이기에 ‘나는 다 이루었다’ 하시고 숨을 거두셨다. 다 이루어 놓으신 새역사 시작 점에서 평화를 넓힐 일은 우리의 몫이다. 한 사람을 죽이는 그 힘을 향해 “아니요”와  “예”를 바르게 외치지 못한 나약한 그 사람들이 나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눈물의 한 사람으로 저항하고 작고 어린싹을 키우며 평화를 일구는 너와 나로 살 수 있다. 너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그리스도의 사람이다. 새 예루살렘의 사람이다. 사순절에 교회와 나를 향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말씀이다.

<복음인in 들소리>는 하나님의 교회다움을 위해 진력하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동반자로서 여러분과 동역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 샬롬!

후원계좌 : 국민은행 010-9656-3375 (예금주 복음인)

저작권자 © 복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