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에 만난 사람]
협성대 이충범 교수 〈웨슬리 따라 갓생살기〉 통해 ‘머리’로가 아닌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실천’ 강조

머리로만 알고 믿으면 신앙이 깊어지지도 않거니와
힘과 실력이 없는 부족한 그리스도인(Almost Christian)이 
될 수밖에 없어…‘웨슬리 되기
(becoming-Wesley, 웨슬리 영성)’ 따라 하기 위한 사용설명서

 

협성대 이충범 교수
협성대 이충범 교수

어느 유명한 사람, 특히 신학자나 목회자일 경우 그에 대한 정보나 이론을 이야기하는 책은 많다. 웨슬리에 관한 것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300년 전 인물이 주장하고 가르친 이야기들을 ‘오늘’의 현실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할까를 알려주고 있는 책이 바로  <웨슬리 따라 갓생살기>다. 이 책을 쓴 저자는 협성대 교수 이충범(60세). 그는 요즘 젊은이들의 관심인 ‘갓생살기’에 주목하고 풀어낸다. ‘갓생’이란 하나님을 의미하는 God과 인생을 의미하는 생(生)의 합성어로, 부지런하고 모범이 되는 삶,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는 계획적인 삶, 목표를 향해 열심히 사는 삶을 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갓생살기’를 할 수 있을까. 이 교수는 웨슬리는 ‘갓생을 살았던 교과서 같은 인물’이라며 그의 삶을 따르면 갓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웨슬리 따라 ‘살기’

사실 책 제목을 보고 웨슬리에 대한 또 하나의 전기집이나 신학적인 이야기 아닐까 했는데, 바로 오늘의 ‘나(우리)’와 연결시키고 있더군요. 또 사이사이에 교수님이 경험하신 이야기, 웨슬리를 따라 살기 위한 프로젝트 등이 구체적으로 제시돼 있어서 예수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하고 있더군요. 

- 머리로만 알고 믿으면 신앙이 깊어지지도 않거니와 힘과 실력이 없는 부족한 그리스도인(Almost Christian)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언급하신 것처럼 이제까지 존 웨슬리에 관한 정보나 이론서는 많습니다. 비단 한국뿐 아니라 미국이나 영국의 자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끔 이와는 좀 다른 보고서나 역사 형식으로 쓴 책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강한 웨슬리언들의 진짜 훈련’, ‘이 시대 웨슬리언으로 살며, 승리하는 법’과 같은 안내서는 없었습니다. 간혹 보이는 책들은 300여 년의 세월을 무시한 채 과거를 복사하는 정도여서 따라하기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웨슬리에 대한 지적정보를 담은 책은 많지만 ‘웨슬리 되기(becoming-Wesley, 웨슬리 영성)’에 관한 책은 찾기 힘들었습니다. 그야말로 웨슬리를 ‘머리’로만 알아 온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요즘 세대에게 웨슬리-되기를 따라 하기 위한 사용설명서를 만들어 주고 싶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웨슬리 영성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요. 

웨슬리가 자신을 헌신하며 처음 한 일은 하나님 앞에 그 누구도 아닌, 단 한 사람뿐인 ‘웨슬리 표 성자’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웨슬리가 영적 진보를 위해 읽은 책들이 나오던데요.

- 영적 훈련의 방법론을 제시해 준 책들을 시기별로 보면 (웨슬리는)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제러미 테일러의 <거룩한 죽음>에 심취했습니다. 이 책들을 통해 웨슬리는 자신의 삶뿐 아니라 생각, 말, 행위 일체를 하나님께 바치기로 결심하고 실천했습니다. 그리고 윌리엄 로우의 <경건한 삶을 위하여>가 있습니다. 이 책은 웨슬리가 평생 하나님께 헌신하는 방법론으로 금욕적 방식을 채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 세 가지 책은 소위 말하는 화용론(話用論)입니다. 사실 요즘 언어는 다 죽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죽은 언어를 가지고 계속 신학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건 제가 보기에 서구 근대사회의 가장 큰 패착입니다. 두뇌만 커지고 언어 구사 능력만 발달하지 실제로 삶에서는, 생명 언어가 다 빠져버린 상태로 보입니다.

몸뚱이 놀려서 근육을 키워야

그래서 오늘날에는 실천(행동) 없는 ‘말’이라면 차라리 입 다물고 사는 게 나은 거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거 같습니다.

- 방법은 하나 있습니다. 몸뚱이를 놀리는 것입니다. TV나 유튜브를 통해 잘 알려져 있는 심리상담가자 자기계발로 강연하는 유명한 교수들을 보면 그들의 영혼이 황폐해 있는 것이 보입니다. 자기가 강의한 대로 자신도 살지 못하는 것을 말로만 감화시키니까 그들에게 감화받은 사람들도 그때뿐인 것으로 끝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들이 삶으로 살아내지 못하니까 힘이 없습니다. 비유하자면 몸에 근육이 필요하면 운동을 해야 하는데, 근육은 어떻게 해야 발달한다, 이렇게 운동해야 근육이 생긴다며 얘기만 하고 있는 거와 같습니다. 신학교의 커리큘럼도 마찬가지에요. 100% 이론만 가르치는 잘못된 교육입니다. 결국 ‘근육’이 발달이 안 돼 있으니까 옆에서 툭 밀면 넘어지게 되고 권력, 명예, 성 등 앞에 걸려 훅훅 넘어집니다. 

만약 몰트만의 신학을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몰트만의 책을 읽고, 학생들에게 가르칠 것이고, 성도들에게는 설교할 것입니다. 확신에 차서 생명과 삶의 기쁨이 넘치는 삶을 말할 겁니다. 그런데 그건 몰트만의 얘기지 내가 그렇게 사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그걸 설교하는 순간 마치 그렇게 살지도 않으면서 자기가 그렇게 사는 것처럼 착각합니다. 일종의 리플리 증후군(Ripley Syndrome)이지요.

자기가 삶으로 실현해내지 못하면 아예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야 된다는 말씀인가요?

- 그렇지는 않지요.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러고 있으니까 문제지요. 달에 가본 사람이 한 명도 없이 모두가 달만 가리키고 있다면 그건 무슨 의미가 있나요? 적어도 달에 가본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어서 직접 보고 온 달에 대한 이야기를 해줘야 하는 거 아닐까요?

그런데 저도 웨슬리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너는 웨슬리처럼 사느냐는 질문이 생기더군요. 웨슬리처럼 사는 방법을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께 100% 헌신하기 전에는, 성직자나 수도승 등 외에 자기 삶과 가족을 위해 살아가는 95%의 일반 사람들이 웨슬리의 삶을 따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근육이 필요하면 운동을 해야 하고, 달이 중요하면 달만
가리키지만 말고 갔다 온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아우구스티누스 
신학이 중요해서 가르치고 설교하면 마치 자신이 아우구스티누스가 된 것처럼 착각”


신학교수가 연구만이 아니라 자기의 삶으로 구현해 본 내용이 곳곳에 들어가 있으니 웨슬리의 삶이 더 와 닿는 느낌이다.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 20여 년을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데, 15년 전부터 나 자신부터가 실천해 보고 실패담이나 성공담을 가르쳐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걸 정리해 보니 100개 가까이 꼭지가 나왔습니다. 이 책은 그것을 풀어낸 것입니다.

‘갓생’, 훈련하면 가능할까

삶에서 그리스도인의 살기, 웨슬리 살기를 위해 상당히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 제시돼 있던데, 이대로 하면 진짜로 웨슬리(예수)-되기가 될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 사실 아쉬운 거는 좀 더 구체적으로 쓰고 싶었어요. 영성과 지성의 균형을 맞추고, 마지막에는 내가 실천해야 할 생활 태도, 그리고 하루에 적어도 몇 시부터 몇 시까지는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안내를 더 잘해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 부분이 좀 부족해서 아쉬워요.

어떤 후배가 이 책을 읽고 질문을 하더군요. ‘고 김진영 선생님이 쓴 애도 일기에 교수님이 왼손으로 한 마디씩 일기를 쓴다고 돼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냐’고요. 책 읽는 모든 사람이 궁금할 것이라더군요. 그러고 보니 거기에 대한 설명이 없었어요. 그때 깨달았어요. 좀 더 구체적으로 알려줬어야 했다는 것을요. 사실 이것은 저의 실천 방법론이었어요. 저는 이 한 문장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독자들은 이유를 몰랐을 거에요.

제가 그렇게 굳이 왼손으로 한 마디씩 일기를 쓴 이유가 있어요. 일기는 종말론적인 삶을 사는 하나의 훈련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런데 김진영 선생님의 애도 일기는 서울대병원이나 수술 전후에 매일 밤 죽음을 기다리는 그분이 하루의 느낌을 쓰신 거에요. 그걸 하루에 한 구절만 묵상하더라도 큰 유익이에요. 오늘 밤에 잠들면 내일 아침에 일어나지 못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웨슬리처럼 살자’는 마음이 생깁니다. 

두 번째, 왼손으로 쓰는 이유는 내가 계속 오른손만 사용하는데 익숙한 관성을 좀 풀어보고, 좌우 뇌를 균형 있게 활동하게 하자는 의미가 있었어요. 그래서 왼손으로 쓰는 연습을 많이 했어요. 이유는 또 있어요. 오른손으로 쓰면 글씨를 빠르게 잘 쓰니까 주저리주저리 글을 많이 쓰게 돼요. 그런데 왼손으로 쓰면 한 줄만 써도 팔이 아프니까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딱 한 마디 내가 남기고 싶은 말, 그 엑기스를 생각하고 쓰게 돼요. 저에게는 굉장히 큰 영적 훈련이 돼서 나누고 싶었어요. 

책 곳곳에 교수님에게 적용하고 있는 이야기, 부족한 이야기 등을 서슴없이 툭툭 얘기하고 계십니다. 지금, 예수님을 따르는 길, 웨슬리를 따르는 여정이 잘 되고 계신가 하는 게 궁금해지더군요.

-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도 잘 되지 않습니다. 이런 얘기 조심스러운데, 저는 개개인이 갖고 있는 DNA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침형 인간이냐 저녁형 인간이냐에 따라서 훈련도, 역할도 달라지게 돼죠. 그리고 훈련인데, 사실 나이 50이 넘으면 타고난 성품을 훈련으로 극복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옛날 수도사들을 보면 어릴 때부터 시작하잖아요. 그때부터 몸에 배게끔 훈련을 해야 가능한 것이지요. 나이가 들어 정신이나 머리로는 이해가 되고 바뀔 수 있지만 몸이 바뀌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특별하게 영성 훈련을 하지 않았어도 어떤 목사님들 중에서는 정말 성자 같은 분을 보면 훈련을 통해 변화할 수 있는 여지는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요즘에 설교 초청을 받아도 가지 않아요. 제가 저 자신을 생각해서 70-80% 이상 말하고 가르친대로 이루었다 하면 할 말이 되게 많을 거에요. 남들보다는 잘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내 자신이 원하는 목표까지는 가지 못했어요. 인생 후반부, 나 자신의 성적표를 보고 반성해야 하는 시점에서 남들에게 뭘 하라고 가르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남들한테 말하지 않는 시간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침묵이 기도 중 가장 중요

웨슬리가 얼마나 기도와 말씀에 힘쓰고, 금식하고 일기쓰기는 얼마나 투철했는지, 나만의 나는 어떻게 계발해야 하는지, 공부와 시간 관리는 어떻게 하고, 지성과 영성의 균형은 어떻게 맞춰야 하는지, 공동체는 어떻게 만들고 설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건강 챙기기는 또 어떻게 했는지, 대중문화는 어떻게 포용하고, 저축과 투자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행하며 기도하기, 커피와 영화 즐기기, 권태 극복하기, 통증과 함께 살기 등 실생활에 너무 유익한 내용이 많던데요.

- 웨슬리 역시 그리스도를 닮아 살아내기 위해 노력했던 분이므로, 그의 삶에 동의하는 사람들 모두가 이 책을 자기계발서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기도가 깊어지고 풍성해지기 위해서는 공부, 배움, 노력, 훈련이 필수적입니다. 저는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침묵’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영혼을 백지 상태로 만드는 것이지요. 침묵 속에 머무는 것 자체가 훌륭한 기도입니다. 

웨슬리가 가르쳐 준 기도를 실천한다면 우선 △홀로 있을 수 있는 조용한 시간, 장소 만들기 △눈을 감고 하나님께 집중하기(계속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부르며) △묵상 시작(웨슬리는 묵상은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방법이라고) △주실 것을 믿고 간구하기 △거룩함을 구하기 △중보기도입니다. 이것이 웨슬리의 영성 지도에 따른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더 나아가 모든 피조물과 연결하고 공감, 교감, 공명, 감응, 교류하는 것입니다. 치유하는 힘입니다. 하나님과 나를 연결하는 것이자 사랑의 기술입니다.

예수님처럼, 웨슬리처럼 살기 원하는 독자들을 위해서 ‘이렇게 해보면 참 좋다’ 하는 실천 프로젝트 가이드라인이나 실천사항을 주신다면요?

- 딱 하나에요. 하루에 일과를 만들어 그대로 실행해보는 거에요. 책을 읽고 깊이 생각하고, 사색하며 성찰하고, 그다음에 말씀이나 자기의 상황을 묵상하고, 기도하기 등 4가지를 삶의 구석구석에 집어넣어서 지속적으로 실천하면, 그게 기본이 되게 하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찰하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배운 게 없다보니 어려워하는 이들이 많은 거 같아요. 이제라도 이런 부분을 제대로 배우고 가르쳐야 합니다. 기독교(신교)에서는 묵상 자체를 해본 적이 없어요. 너무나 다양한 기도가 있다고 생각도 못해요. 저는 걸으면서 기도하는데, 그 기도가 얼마나 깊이 들어가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그런데 무작정 교회를 탓할 수 없어요. 우리 세대에서는 그런 걸 구체적으로 배우지 못했으니까요. 기도와 간구는 반드시 구별해야 합니다.

요즘 교수님의 간구는 어떤 걸까요?

- 제 염원, 간구는 하나에요. 이번에 발행한 책이 제발 손익계산서에 맞아 쓸데없이 종이 버리는 짓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이 책을 내는 데 들어간 돈과 희생된 나무들이 아깝지 않을 만큼이면 좋겠습니다.

 

  에필로그

그의 이런 바람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는 간절함으로 느껴졌다. 처음 만나는 이 교수님과 갑자기 ‘아점’을 먹었다. 분당 집 근처에서 만나기로 하고, 거의 왔다고 문자를 남겼는데, 만날 장소를 직접 손으로 그린 약도를 보내오셨다. 그리고는 전화가 왔다. “아침 드셨어요?” 그렇게 해서 오전 10시 조금 넘어 동태탕을 먹었다.

자리를 이동해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인터뷰를 하면서 그가 공부하고 학교에서 가르친 이야기를 들었다. 연세대학교 철학과와 감리교신학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드루(Drew)대학 신학부에서 신학 석사학위를 취득할 정도로 공부를 열심히 했다. 1994년에 미국에서 공부하며 목회를 하고 10년 만에 한국에 와서 협성대학교에서 교회사 교수로 학생들을 19년 동안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교회사 뿐 아니라 중세신비주의, 일상신비주의, 영성, 감리교 역사, 사람다움, 자기에 관한 연구를 지속하며 나누고 있다. 

웨슬리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은 미국감리교회사를 공부하니 비로소 이해가 되더란다. 영국에서 시작된 웨슬리 운동이 미국 신대륙에서 꽃피우고 기틀을 다졌기 때문에 미국교회사를 공부하지 않았을 땐 자신이 잘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80년대 후반 교회에서 영성을 가르쳤더니 이단이니 가톨릭이니 비판도 받았지만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출판을 의뢰하니 '영성'에 관한 책이 아니라고 거절당할 정도로 영성이 큰 유행이 되었음을 체험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20년 가까이 지난 현재, 영성은 출판물, 강연, 부흥회 현장에서만 논의될 뿐 정작 그리스도인의 삶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 마음이 불편하단다. 

사실 이 교수 집안은 모두 장로교인데, 처음에 식구들은 왜 남의 물에 가서 고생하냐며 안타까워했단다. 신학교에 가기 전까지는 항상 세상의 중심에서 살던 이 교수는 신학교에 오면서 항상 남에게 굽신거려야 하고, 아웃사이더가 되더란다. 2000년도까지는 억울했단다.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었단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감사하다며 눈시울을 적신다. 미국에 있을 때, 2000년도 고난주간에 특별새벽기도를 하면서 ‘이게 축복의 자리구나’ 하는 깨달음을 주셨단다.

요즘은 어떨까. 학생들이 배우는 자세가 되어 있지 않아서 갈등의 시기도 있었단다. 수업시간에 영화를 보며, 친구들과 키득거리는 모습 등을 보기가 힘들었다. 미국에는 핸드폰이나 노트북, 태블릿을 수업시간에 사용하지 못하게 해도 괜찮다고 하는데, 한국은 달랐다. 그러던 중 하나님이 깨닫게 하셔서 이제는 디지털 기기를 활용하는 학생들에게 ‘강의 시간에 들은 거 필기하고 캡쳐해서 PDF화일로 내면 학기말에 가산점을 주겠다’고 했더니 강의 인원도 많은데, 모두 조는 사람 한 사람도 없이 열심이란다. 강의 후기를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해주는 것도 재미에 한몫한단다.

학생들이 딴 짓을 할 때는 ‘아직까지도 밤새워서 강의 준비를 하는데’ 하며 속상했었다는 사람 같지 않게 기자와 헤어지고 강의하러 학교로 향하는 그는 행복해 보였다. 
 

갓생살기, 잘 안내되어 있는 책이다.
갓생살기, 잘 안내되어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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