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 목사 한국교회총연합 공동대표회장 /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

기독교대한감리회 이철  감독회장
기독교대한감리회 이철  감독회장

한국교회는 139년 전 부활주일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1885년 아펜젤러 선교사가 본국으로 보낸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부활주일에 제물포 항구에 도착한 직후의 심경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활절에 이곳에 도착했다. 오늘 사망의 빗장을 산산이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주께서 이 나라 백성들이 얽매여 있는 굴레를 끊으사 그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빛과 자유를 허락해 주옵소서!”

아펜젤러 선교사의 기도는 우리나라에서 부활신앙으로 응답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 근대문화를 꽃피우고, 민족정신을 일깨워 민족수난의 현장에서 역사와 전통을 지키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벌여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한 원동력이 기독교였고, 그 기독교의 핵심은 부활신앙입니다.

우리 역사에서 절대 잊을 수 없는 3.1운동도 나라와 민족의 암울한 시기에  ‘봄’을 가져다 준 신앙운동이었습니다. 이 신앙의 핵심이 바로 부활신앙이었습니다.

●●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십니다.

오늘 읽은 성경말씀은 ‘부활’과 ‘생명’에 대해 알려줍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산다는 것은 부활, 살아서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은 생명과 연결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것을 네가 믿느냐?” 고 물으십니다. 부활과 영생을 믿으십니까?

●●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부활이 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는 그 유명한 베드로의 신앙고백 후에 예수님은 자신의 고난과 부활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6일 후에 변화산 이야기가 나옵니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 3명의 제자들을 따로 불러 높은 산으로 가신 예수님께서 변형되어 얼굴은 해같이 빛나고 옷은 빛과 같이 희어진 모습으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대화를 하십니다. 3명의 제자들이 그 모습을 보고 “여기가 좋사오니 초막 셋을 짓자”고 합니다. 3명의 제자들이 어떻게 오래전에 죽은 모세와 엘리야를 알아보았습니까? 그들은 천국의 문틈을 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고난받고 죽임을 당하신 후 부활하실 것을 예고하신 후 등장하는 변화산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어떤 존재가 되실 것인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실제 예수님은 부활하신 이후 변화산에서처첨 변화되셨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분으로 활동하셨습니다. 부활은 예수님을 통해 일어난 사건이며, 우리에게 앞으로 일어날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소망을 간직하고 오늘의 삶을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합니다. 요한1서 5:11~13 말씀을 보십시오. 요한복은 3:16에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십니다.

성경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고 생명이 예수님에게 있다는 것이고, 그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부활과 영원한 생명은 하나입니다. 부활이 있어야 영원한 생명을 설명할 수 있고, 영원한 생명이 있어야 부활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부활과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을 설명하는 결론입니다. 부활과 영원한 생명이 있어야 하나님의 사랑을 설명하고 있는 성육신을 이해할 수 있고, 삼위일체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성육신과 성부 성자 성령이 하나라는 삼위일체는 끝이 없는 사랑으로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 왜 예수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하셨을까요?

첫째,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성경 요한계시록 21:4에는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는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눈물이 없습니다. 소망도, 사랑도 필요없습니다. 모든 것이 완성된 곳이기 때문입니다. 눈물이 있는 곳은 이 땅이고 소망도 사랑도 필요한 곳은 이 땅입니다. 살기편한 세상이라고 하기보다 어려운 세상이라고 합니다. 저출산, 다문화, 취업의 어려움 등 사회적 문제와 이곳저곳에서 벌어지는 갈등상황 등 무한반복적인 정치와 경제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 북한의 핵위협에 이상기후현상으로 인한 피해증가 등 곳곳에 다시 살아남에 대한 희망이 간절합니다. 개인, 사회, 기관, 단체 등 우리가 사는 모든 곳에 참된 위로와 소망이 필요합니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하루하루 죽어 가는, 노하고 쇠하여 가는 유한한 존재, 비극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요 괴롬이요 슬픔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는 위로가 필요하고 소망이 필요합니다. 

위로를 받는 것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돈으로 위로를 받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통해 위로를 받습니다. 그러나, 그 위로가 참된 위로가 되었습니까? 사람으로 하여금 현실을 잠시 잊게 만드는 것, 현실로부터 순간적으로 도피하게 하는 것, 그래서 짧디 짧은 꿈같은 시간이 끝나는 즉시 현실의 무게가 가져다주는 중압감을 더 느끼게 만드는 것은 참된 위로가 아닙니다. 참된 위로란 현실로부터 도피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면서 그 현실의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깨달아 그 현실을 수용하고 극복케 하는 힘입니다. 참된 위로를 주시고 부활의 은혜를 주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죽음을 이기신 분의 위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한 분이시기에, 그분의 생명 안에서 모든 사람을 영원히 살려내실 수 있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하고 연약한 존재이기에 이 험한 세상에서 매일 그 심령이 지치고 찢어질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 하여금, 죽음을 뛰어넘어 영원한 생명을 영원토록 소유케 하는 참된 위로와 소망을 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두 번째, 세상의 가치를 뛰어넘는 영원한 가치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죽었다 살아나는 일은 우리의 삶 모든 영역에서 일어납니다. 영원히 사는 일도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일어납니다. 지금의 나의 삶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와 이어진다는 것을 깨달으면 전혀 다른 삶의 질이 형성됩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세상이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실망하는 것은 부활과 영생의 사건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내용이 되지못해 삶이 변하지 않고 세상사람들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 생명이 약동하는 봄에 부활절이 있는 것은 우리 안의 겨울을 떨쳐내고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어려운 ‘오늘’보다 새로운 ‘내일’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부활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물질의 넉넉함이 내일을 살아가게 하지 않습니다. 지위가 높아진다고 행복한 내일을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새 것은 물질적이거나 외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이고 내적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도록 이끄는 것이 부활신앙입니다.

내일은 달력에 나오는 내일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새로운 날, 내일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부활하셔서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을 의지하므로 주어지는 새로운 내일은 어떤 어려움도 슬픔도 가로막지 못합니다. 고후 4:16에 말씀하신 것처럼 겉사람은 하루하루 낡아져 가지만 속 사람은 날로 새롭게 해 주시는 부활의 예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날마다 새로운 내일을 만들어 주십니다.

마지막으로, 이 세상이 하나님 나라가 되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문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가 실재가 되도록 하시기 위해서 부활과 영생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며 사는 것은 부활과 영생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부활절은 기독교 달력에서 가장 오래된 절기입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유일회적 사건이었으나, 부활의 의미는 결코 일회성 행사에 그칠 수 없습니다. 초대 교회가 고난과 시련을 딛고 부활신앙의 터 위에 굳게 세워진 것처럼, 여러분도 부활신앙으로 거듭나시길 바랍니다. 

●● 이것을 네가 믿느냐?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확신이 없는 믿음은 흔들리는 그릇과 같아서 원하는 것을 담기가 힘들 뿐 아니라 그릇 안의 것까지 쏟아버릴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였습니다. 부활신앙은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 무의미하고, 하나의 속임수와 같이 여겨지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관심은 바로 믿음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과 영생을 말씀하시면서 물으십니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부활절은 다른 종교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하고 신비한 날입니다. 사실 죽음은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입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 불안,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부활을 믿고 축하하는 신앙은 유독 기독교 외에서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러므로, 부활신앙으로 여러분의 삶에서 기쁨을 회복하십시오.

부활신앙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영원한 희망을 품는 일입니다. 부활에 대한 믿음은 얼마나 희망스럽습니까? 생기가 넘치는 푸른 신앙이고, 따듯한 봄의 신앙입니다. 나중에 죽어보고 행할 약속은 허황되기 짝이 없습니다. 부활신앙은 바로 지금 내 안에서 이루어질 사건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부활의 증인으로 부름 받은 우리 교회와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떠한 고난이나, 십자가도 그 너머 부활이 있음을 굳게 믿고 말씀대로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가야 합니다. 부활의 참 증인이 되는 길, 거기에 영원한 희망이 있음을 믿는 참된 신앙인의 길이 있습니다. 올해의 부활절이 이 땅의 모든 기독교인들이 회복되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한국교회가 다시 살아나는 기회가 되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쓰임받는 교회로 부활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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