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공동체’, ‘기정장학회’ 통해 어려운 이들과 학생들의 동반자 역할 한다
“은퇴 했어도 목사는 목사”-고 기창모 목사에게 받은 사랑, 나누고 싶어

정연동 목사
정연동 목사

평균 연령 100세 시대, ‘은퇴 후 그때까지 뭘하면서 살아야 하나’ 말하지 않아도 심리 저변에 깔려 있는 생각인 것 같다. 

한평생 50년, 목회하다가 은퇴한 정연동 목사(평안교회 원로)는 2019년 은퇴한 후 ‘아껴서 나누자’라는 ‘아나공동체’를 통해 어렵고 힘겨운 이들과 나눔을 실천해왔는데 최근에는 ‘기정장학회’를 만들어 첫 번째로 장학금 전달식을 가졌다.

‘원로목사니까 교회에서 지원하나?’, ‘몇몇 후원자가 있겠지?’, ‘그동안 축적해놓은 재산이 많은가?’ 이런 생각을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가 평생 목회해 온 교회는 크지도 않을뿐더러 2019년 6월 2일 설교를 마친 후 은퇴를 선언하면서 “은퇴금이나 퇴직금, 원로목사라고 매월 사례도 받지 않겠다”고 깨끗이 정리했으니 큰 자본은 없는 셈이다.

집은 제주 동문교회를 개척해서 사역하다가 인천 평안교회로 임지를 옮겼는데, 서울에서부터 이 교회로 나오는 신자가 연립 한 채를 사준 것이 지금의 사택인 서민아파트의 기틀이 되어주었다. 

그러다가 조용히 ‘아나공동체’로 이 시대에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평생 목회와 함께 중국 선교를 혼자 곳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면서도 필요한 부분은 그때그때 채워주시는 손길을 체험했기에 ‘아나공동체’나 ‘기정장학회’ 역시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세우며 나아가고 있다.

주변 후배들은 정 목사가 은퇴했어도 밥도, 차도 사는 일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나 정작 정 목사 자신은 종이 이면지도 쓰고, 화장지를 반으로 나눠서 쓰고, 전기나 물도 아껴 쓰면서 베푸는 것은 모를 것 같다. 

+ 첫 ‘기정장학금’

“사람을 키워 세계 속에 주의 일꾼으로 세우자”는 모토 아래 시작한 ‘기정장학회’는 지난 2월 17일 초·중·고·전문대·대학생을 추천받아 각 부문에 한 명씩 장학금을 전달하고 격려하는 시간을 가졌다. 

기정장학회는 매년 봄 학기와 가을 학기 두 차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할 계획으로 올해 처음으로 성적과 무관하게 환경이 어려운 사람을 우선 선발해 지급했다. 이번에 장학금을 받은 학생은 5명이다.  

장학회를 운영하게 된 배경에는 교단(예성)의 어르신인 고 기창모 목사의 영향이 컸다. 그래서 이름도 기창모의 ‘기’와 정연동의 ‘정’을 따서 ‘기정장학회’라고 명명했다.

정연동 목사는 인천 평안교회를 목회하고 2019년 은퇴했다. 그리고 자신이 가난하게 자라며 힘겨웠던 것을 기억하며 ‘아’끼고 ‘나’누며 사는 ‘아나공동체’를 결성했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아끼고 절약하며 모은 것을 가난하고 소외된 힘겨운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배달부’ 역할을 하고 있단다.

그렇게 3-4년 하면서 아나공동체에서 산발적으로 해오던 장학사역을 좀 더 체계적이고 책임감 있게 운영하기 위해 ‘기정장학회’를 결성, 자매기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하기 위해 

정연동 목사가 가난한 산촌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고학하며 떠돌던 자신을 이북에서 단신으로 월남한 기창모 목사(압해중앙교회 원로)의 뜻을 기리는 것과 함께 정 목사 자신이 목사안수 받을 때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하는 목회자가 되겠다’는 다짐을 기억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기창모 목사와의 만남은 정연동 목사에게는 인생에 전환점이었다. 어려운 시절을 살다가 압해도까지 간 정연동 목사를 기창모 목사가 자신의 집에서 함께 살자고 했다. 명분은 아들 과외공부를 부탁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자존심 상할 것을 우려해서 그렇게 배려한 것이었다. 별도의 방이 없어서 내어준 게 기창모 목사 서재였다. 배움에 갈급함이 있었던 정 목사는 이해되든 되지 않든 그 책들을 모두 읽으며 지냈다. 그러던 중 정 목사는 고려신학교에서 공부했고, 기창모 목사의 권유로 기 목사가 속한 교단(예성) 성결교신학교로 재입학해서 공부를 마쳤다. 

그 즈음 기창모 목사는 ‘내 아들 하자’고 제안했다. 아들이 3명, 딸 2명이나 있어서 아이들 키우는 데도 버거웠을텐데, 정 목사를 양자로 삼을 정도로 사랑으로 길러주었다. 특히 사모님의 사랑이 컸다. 기 목사님이 돌아가시고 현충원에 모셨을 때 가족증명서에 있는 이름만 기입하게 돼 있었지만 사모님이 ‘내가 시집올 때 데리고 온 자식’이라며 비석에 이름을 올려달라고 요청할 정도였다.

정 목사는 기창모 목사님께 늘 빚진 자였다. 사실 기정장학회는 그 빚 갚는 일환으로 하는 것이다. 빚쟁이가 마음의 빚을 갚으면 기쁨도 크다는 데 정말 그렇다. 사랑의 빚을 받은 자로서 자신도 누구에겐가 그렇게 줘야겠다는 생각으로 목회하면서도 구제에는 늘 힘써서 했었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여야 한다는 데는 또 한 가지 이야기가 있다.

정 목사가 목사안수를 받기 전날, 잠을 자지 않고 예배당에 혼자 앉아 있었다. 기도도 아니고, 잠도 아닌 상태에서 혼자 대화를 했다. ‘하나님, 이 나라에 목회자가 5만 명 정도 된다는데, 저 하나 숫자 늘어나는 목사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가난하게 자랐으니 가난한 사람을 위하는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그렇게 다짐하고 목사 안수를 받았으니 늘 마음에는 그 생각이 가득해서 개척해서 어려울 때도 구제비나 장학금은 꾸준히 했다.

그리고 공부에 대한 한이 늘 있어서 목회하면서 미국에 7년간 다니면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것 또한 어렵고 가난한 이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은 생각이 많았다. ‘나같이 어려운 사람도 하니까 되더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코피 쏟으면서 제대로 된 학교에서 공부하느라 너무 힘들었지만 그래도 ‘공부’의 맛을 제대로 본 계기였다.

+ 장학금, “큰 용기가 됐다”

최근 첫 기정장학금 전달식을 가졌다. 이날 학생들과 함께 식사도 하면서 격려하기도 했다. 자신이 기창모 목사님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그에게 사랑을 받은 것처럼 이들도 누군가에게 받은 사랑과 은혜를 나누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정연동 목사는 말한다.<br>
최근 첫 기정장학금 전달식을 가졌다. 이날 학생들과 함께 식사도 하면서 격려하기도 했다. 자신이 기창모 목사님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그에게 사랑을 받은 것처럼 이들도 누군가에게 받은 사랑과 은혜를 나누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정연동 목사는 말한다.

 

이번에 장학금 선정은 추천서를 받아 심사해서 전달식을 가졌는데, 한 학생의 어머니가 전화했다. 남편이 목회자였는데 돌아가시고, 가족간의 갈등도 심해서 딸이 학교를 중도에 포기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데, 마침 이런 장학금을 받게 됐다며 “큰 용기가 됐다”, “고맙다”고 했다. 보람이 느껴졌다. 정 목사는 “액수가 많지는 않지만 그런 용기를 가져줘서 제가 더 감사하다”고 말했다.

기정장학회에는 기창모 목사의 장녀 혜현 씨의 남편이 교육자여서 그분을 이사장으로, 정 목사가 회장으로 하고 몇몇 이사들로 구성했다. 이사장과 회장은 기씨와 정씨 가문에서 섬기도록 했다. 양쪽 집안의 자손들이 이 뜻을 기려서 ‘미래의 꿈’인 아이들을 키우는 데 계속 힘써줬으면 하는 게 정 목사의 바람이다. 그리고 동참하고 싶은 이들은 재정이 아니더라도 마음과 힘을 함께 더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한 번 하면 끝까지 해야 하는데’라며 걱정을 먼저 하곤 하지만 정 목사는 ‘안 하는 것보다 한 번이라도 하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힘써서 하고 있다. 

그리고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이 이후에 계속 나눔의 정신을 이어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We Are Relay Racer!"(우리는 릴레이 경주자)를 모토로 삼고 있다. 

정 목사 자신이 기창모 목사의 사랑과 후원으로 삶의 레이스를 잘 달렸던 것처럼 받은 자도 언젠가는 주는 자가 되자는 의미다.  

+ 은퇴했더라도 멈추지 말고

정 목사는 어려운 얘기를 어렵게 꺼냈을 때 목회자가 ‘기도합시다’라며 말로만 때우려는 태도의 말을 경계한단다. 작은 것이라도 실질적으로 실천해야 그 말이 진정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은퇴했으니 모든 활동과 일을 멈추지 말고 나름대로 기여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을 찾으면 좋겠다고 제안한다. 박스나 종이를 줍는 일도, 그것을 통해 어려운 이들을 돕기 위해 줍는다면 ‘작은 일이지만 보람 있는 아름다운 일 아니냐’고 반문한다. 

50년 간 목회할 때도 신자에게 강제적으로 일을 시키는 법이 없었던 정 목사는 지금도 이런 좋은 일을 하면서도 누구에게든 요청을 잘 못한다. ‘아나공동체’ 운동을 하면서도 마찬가지다. ‘아끼고 나누자’며 캠페인을 벌일 법한데, 그는 조용히 ‘아끼고 나누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빗줄기’가 되어 주고 있다. 

“은퇴했어도 목사는 목사입니다. 놓지 말아야 할 끈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으로 저 자신부터 이것저것 아껴서 나눕니다.”그런 모습을 보고, 그 뜻을 따라주는 가족과 지인들, 함께 해주는 이들이 고맙다고 정 목사는 말한다. 특히 손녀는 원룸에서 생활하다가 그것을 아끼고 싶다고 ‘할아버지 정연동 목사’ 집에서 함께 살고 있다. 무엇이든지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그리고 함께 아껴서 나누는 보람으로 ‘아나공동체’도, ‘기정장학회’도 쓰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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