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 수장 네스토리우스의 사막 유배 현장
 
 너무 뜻밖의 발견이었다. 추정이 정확하지는 않으나, 일단 5세기 이후의 역사 자료인 것은 분명하다. 동굴 천정의 네스토리우스 교단 십자가 모형을 제대로 촬영 못해서 독자들에게 더욱 생생한 자료를 못드려 죄송하다. 그러나 내가 타지키스탄 방문일정이 유동적이었다가 갑자기 결정되는 과정에서 준비가 부족했다. 방문일정이 유동적이었다 함은 샘물교회와 인터콥이 저지른 아프칸 피랍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나의 탐사 일정은 본디, 터키 산 우르파(옛 이름 에뎃사)를 경유하여 이라크, 그리고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을 지나 타지키스탄까지의 여행일정을 1년 전에 잡아 두었는데 지난 8월에 ‘피랍사태’가 일어난 관계로 탐사일정이 뒤죽박죽 되었다.
앞서도 말했듯이 싸르투스 지방 방문의 조심성을 말하지 않을수 없다. 아프간 국경 철조망을 만지면서 그 주변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지난달(9월) 분위기로는 좋지 않았다. 오죽하면 국경수비대장의 `무장 동행'까지 부탁해서야 안심(?)하는 행위였을까. 더구나 동굴 속의 여건이 드러누워서 천정촬영이 부적절 했었다.
어떤 이들의 생각으로는 어디에서든지 쉽게 발견할 수 있을법한 동굴, 더구나 사도 바울의 무덤도 아닌데 뭘 대단한 것이라고 강조하느냐는 사람(독자)들이 있을 수 있다.
글쎄, 사도 바울의 무덤이라? 사도 바울은 아시아 선교를 열망하기는 했으나(행 16장 참조)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다. 네스토리우스의 경우도 그의 신분으로 볼 때 아시아 선교에 몸을 던질 만큼은 아니었다. 그는 안디옥 교회 감독으로 있을 때 황제 데오도시우스 2세의 방문을 받은 일이 있었다. 그때 황제는 네스토리우스의 설교능력, 인품 등에 감동을 받아 그를 콘스탄티노플 교회 총주교로 불러 올렸다.
네스토리우스는 당시 세계교회의 수장 자리인 콘스탄티노풀의 총주교좌에 올랐다(AD 428년). 그러던 그가 AD431년 에베소 종교회의에서 교리논쟁을 거치면서 이단정죄를 받았다. 그 후 그는 사막의 유배 중에 죽고 그의 제자들이 AD 451년경 에뎃사 본부에서 아시아 선교에 나섰으니 타지키스탄 땅 싸르투스 지방의 동굴은 아무리 앞당겨서 계산해도 5세기 중엽 이후의 발걸음이 된다.
타지키스탄 피안즈 강 1100km 긴 강의 사연 만큼이나 네스토리안들의 역사는 길었다. 그들의 아시아 선교역사가 약 1천년은 되는데, 현재 필자가 탐사 중인 ‘싸르투스’나 ‘피안즈’강변을 저들이 거닐 수 있는 것은 페르시아와 아프가니스탄을 경유하여 중앙아시아와 돈황을 거쳐서 중국을 향할 때, 또는 파미르고원을 넘나들 때, 그리고 중국의 학대로 변방으로 흩어졌다가 징기스칸 서진, 또는 세계전략을 따라 중앙아시아 일대로 다시 후퇴해서 아시를 다시 준비할 때, 악동처럼 고약했던 14세기 티무르의 학살정책에 쫓기던 때의 동굴교회당(기도처)이 아니었을까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타지키스탄의 동굴 발굴과정에 대한 대강의 내용을 타지키스탄 박물관과 러시아에 조회 중이니 준비되는 대로 독자들에게 더 정확도가 있는 사료를 밝히겠다.
그러나 이 동굴 16개처가 네스토리안들의 활동기반임이 분명한 이상 우리들, 오늘의 세계 기독교는 한 번 더 기독교의 과거와 현재까지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밝히는 바이지만 기독교 역사에는 로마의 박해시대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사산조 페르시아와 아르메니아는 물론 아제르바이잔 시대까지 생각해 두어야 한다. 예를 들어 사산조 샤프르 2세 때 한 사건으로 신자들(네스토리안, 수리아, 페르시아 신자들)이 무려 13만명이나 죽어갔던(순교했던)슬픈 역사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로마와 페르시아의 난형난제시대(4~7세기 중반)까지 저들의 경쟁심과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국교화시키는 과정에서의 시련이기도 했었다. 그리고 로마와 페르시아의 기독교 시대를 은근히 차별하는 오늘의 기독교 세계관은 유럽인들의 `오리엔탈리즘의 위선과 거짓’ 때문에 비롯된 결과인 것이다. 순수한 기독교 양심은 유럽식 우월주의를 말하는 그들의 오리엔탈리즘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다.
필자가 반백년 가까운 세월동안 아시아 기독교의 회복을 열망하는 것은 유럽인에 대한 견제를 드러내고 있음이라 할수 있다. 왜 나는 유럽주의 기독교를 싫어할까? 이는 예수께서 주신 마음이기도 하다.
나는 반드시 기독교를 바로잡으시려는 예수의 열망이 성취될 것으로 믿고 있다. 그날에 이르르면 기독교는 편견에 사로잡혔던 지난날에 대한 반성을 할 것이다.
아무튼 기독교의 독주시대는 곧 오게 된다.
아시아 기독교 시대를 위하여 꼭 필요한 것이 ‘네스토리우스 교단 1천년 역사’의 재구성이다. 바로 이 일을 위해서 희생이 필요하고 사람이 필요하다. 필자는 이 일을 위하여 착한 열정을 가지고 있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기독교가 안고 있는 난제들, 곧 유대교와 이슬람 문제가 드디어 풀리기 시작한다.
필자는 2008년 새해부터 이 지면에 네스토리우스와 함께 아시아 선교 역사에 뛰어든 모든 사역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되살려내고 싶다. 성원과 기도를 부탁한다.
〈조효근/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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