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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6]오늘의 말씀
성의경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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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호] 승인 2003.08.27  12: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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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으라/마가복음 4:3∼20  예수는 제자들을 잘 가르쳐 보려고 애를 썼다. 어느 스승인들 제자를 바르게 가르치려 들지 않을까마는 주님은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다. 예견된 시간 십자가 앞에서 못다 배운 제자들을 남겨둔다면 어찌하는가. 너희는 내 말을 잘 들으라. 귀 있는 자, 들을 귀 있는 자가 듣는다. 너희는 들음으로 끝내지 말고, 듣고 깨달으라. 씨 뿌리는 비유다. 씨 뿌리는 자가 밭에 나아가 씨앗을 심는데 더러는 길가에, 더러는 돌밭에, 또 가시밭에 뿌린다. 그러나 어떤 이는 기름진 부분에 뿌린다. 옥토에 뿌린 씨앗은 최소한 30배, 또는 60배, 많으면 100배를 수확한다.  이렇게 일러 주신 말씀을 소화해내지 못한 제자들이 고민고민하다가 예수께 묻는다. 이 가르침이 무엇인가?  답답한 제자들이다. 오늘 주님의 제자들과 함께 이 글을 읽는 이들도 이 말씀을 들어 가슴에 진리로 담을 수 있는 귀 있는가. 조용히 묻는다. 들을 귀 있는가. 이 글을 읽는자여! 깨달으라/마가복음 8:14∼21  깨달으라! 벽력같은 말씀이다.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추상같은 말씀이다. 깨닫는다는 것은 벼락치듯, 가을 서리가 내 발바닥에 큰 상처를 내듯이 무서운 추궁이다. 제자들이 예수께서 떡 일곱개, 물고기 2마리로 장정만 4천명을 먹이시고, 제자들을 이끌고 건너편으로 가셨다. 가시면서 제자들의 다음 교훈을 마음으로 생각하다가 불쑥, 삼가 바리새인의 누룩과의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 말씀을 하시는 바로 그 시간 제자들은 강건너 언덕을 떠날 때 떡 가져오는 것을 깜빡했음을 발견했다. 그때 예수께서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저들이 놀랄 수 밖에.  아이쿠, 떡 가져오지 않았다고 예수가 꾸짖는구나. 가엾은 제자들, 예수께서 떡덩이 몇개로 수 천, 또는 수만명을 먹이시는 것을 못 보았던가. 또 예수 제자들이 겨우 떡 걱정이나 해서 되겠는가. 또 주님은 누룩, 바리새인과 헤롯의 잘못된 교훈을 경계하심을 모르는가. 내가 부끄러우냐?/마가복음 8:31∼38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을 경계하시는 예수의 간곡한 가르침을 쉽게 분별하지 못하는 제자들,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고 안타까워 하시는 예수는 그래도 믿음의 한단계 더 높여서 가르침을 주셨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여기까지 말씀하시고 예수께서 제자들을 쭉 한 번 둘러 보셨을지도 모른다.  그때 제자들은 눈만 껌벅이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린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지라니, 우리가 십자가 지고 망하고 죽는 일을 위해서 예수를 따라다닌단 말인가. 천만의 말씀 ….  그때 예수의 다음 말씀이 이어진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그렇지요. 십자가가 있지요. 내 몫의 십자가, 그리고 예수를 얻기 위해서 철저하게 자기를 부인해야지요. 더 이상 예수를 부끄러워하지 말아야지요. 변화된 예 수/마가복음 9:2∼8  제자들 중 좀 더 영특하다 싶어서인지 가끔 예수는 베드로·야고보·요한을 따로 부르셨다. 오늘도 이들 셋을 데리고 산에 올랐다. 나머지는 산 밑에 두고…. 산에 올라 기도하시는데, 왠일인가 예수 곁에 엘리야와 모세가 나란히 서지 않은가. 깜짝 놀란 시몬 베드로 가로되, `주여 여기가 좋습니다.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그 말이 떨어짐과 거의 동시에 하늘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기겁을 하여 정신을 차려보니 모세와 엘리야는 사라져 버리고 예수만 거기 계셨다.  이 무슨 말씀일까? 그때까지만 해도 예수 제자들은 예수와 모세, 모세와 예수, 또 예수와 엘리야 마저도 같은 수준으로 알고 있는 철부지였을까? 오늘날 예수 믿는 이들이 예수와 모세 구분을 못하듯이…. 누가 제일 크냐?/마가복음 9:30∼37  얼씨구, 갈수록 태산이다. 이런 수준을 데리고 3년 고생을 하신 예수가 안타깝다. 3년차가 다 되어가는 마가복음 9장에서 제자라는 인간들이 서로, 누가 크냐는 시비가 붙었다.  사람들아! 예수 공부 3년에 그 무슨 짓인가? 오늘의 신자들도 본문의 제자들 처럼 누가 더 크냐는 문제로 고민이 많다.  특히 목사님들 연합행사 때면 순서지 만드는 일 담당자가 진땀을 뺀다지 않던가. 자칫 순번을 잘못 정했다가는 귀빰을 받는 것은 몰라도 신상이 편치 않을 수 있다.  예수 제자들도 마찬가지. 예수께서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고 가르쳐 주셨다. 부끄러운짓 그만하고 제자들아, 서로를 영접하라. 어린아이까지도 섬기라는 말씀의 교훈으로 본문을 받아들이라. 서로를 지켜야/마가복음 9:42∼50  믿는 신자는 서로에게 좋은 이웃들이다. 서로를 지켜주어야 한다. 이웃하여 있는 신자들 때문에 같은 신자로서 보람을 느끼게 해 주어야 한다.  신자 때문에 신자들이 망신을 당하거나 곤욕을 치루게 되면 안된다. `네놈 같은 꼴 될지 몰라서 예수 못 믿겠다는 사람이 있거나 당신 때문에 망신을 당했어.'라는 말이면 부끄럽다.  놀랍지 않은가.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바다에 던지움이 나으리라' 무서운 말씀이다. 내가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 모범이 되지 못할 때, 그래서 이웃들에게 누를 끼쳤을 때를 깊이 생각해 보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차라리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리라.' 예수의 말씀이다. 참으로 무서운 말씀이다. 어서 우리의 행동을 바르게 또 온전케 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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