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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3]오늘의 말씀
김재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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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호] 승인 2003.07.30  11: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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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성교회 담임 칭찬 받는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닙니다/누가복음 6:25 어느 목사님은 젊은 시절, 만일 자신이 목회하는 것을 한 사람이라도 반대한다면 그 길을 가지 않겠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이 얼마나 교만하고 잘못된 생각이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모든 사람들이 나의 의견에 찬성하며 나를 좋아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모든 사람이 당신을 좋아합니다”라는 말을 듣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너희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하는 사람들은 박해와 미움을 받습니다. 그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빛이 되어 세상 사람들의 죄를 밝히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만일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혹시 내가 세상 사람들의 사고와 죄에 적당히 타협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 보십시오. 성도는 타협하여 칭찬 받기보다 의를 행하면서 핍박을 받는 길을 가야 할 것입니다. 칭찬 받으므로 죄와 타협하지 않게 하소서. 내 눈에 들보를 먼저 제거 합시다/마태복음 7:4 안과 의사는 다른 사람들의 눈을 고쳐 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의사 자신의 눈에 병이 났다면 그는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을 치료할 수 없습니다. 만일 다른 사람들을 고치고 싶다면, 일단 자신의 눈부터 고쳐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바로 눈에 병이 난 안과 의사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죄를 쉽게 비판하고 정죄하며 그것을 고쳐 주려고 하지만 정작 자신이 죄에 빠져 있기 때문에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더 심한 병이 들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조차 못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정죄하기 전에 먼저 자신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며, 거짓과 불법을 행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처럼 우리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먼저 십자가와 성령의 능력으로 치료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만, 남을 정죄하고자 하는 마음이 아닌 사랑의 마음으로 형제들을 권면하고 도와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의 죄를 먼저 철저히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마음껏 하나님을 찬양 합시다/누가복음 19:40 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분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조용한 묵상을 통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도 있고, 때론 소리 높여 찬양하고 춤을 추며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교적인 배경을 가진 우리나라의 그리스도인들은 손을 들고 춤을 추며 드리는 찬양에 어색함을 느낍니다. 요즘에 많이 바뀌었다고는 해도 아직까지 모든 표현을 절제하고 꾹 참는 것이 진정한 경건이라는 착각에 빠진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크신 은혜에 감사하여 온 마음과 방법을 다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유 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감사와 찬양이 멈출 때 주님이 지으신 만물들이 일어나 소리 지를 것입니다. 우리의 썩어빠진 옛 습관을 과감히 깨뜨리고 옷이 벗겨지는 줄 모르고 춤을 추며 찬양했던 다윗의 믿음과 열정 속에 우리의 신앙을 담가 보십시오. 억압된 감정에서 벗어나 온 힘을 다해 주님을 찬양하게 하소서. 자신을 위해 우는 자가 됩시다/마태복음 5:4 이사야는 웃시야가 죽던 해에 성전에서 거룩하신 하나님과 하나님을 찬양하는 천사들을 보았습니다. 그때 이사야는 자신이 얼마나 부정한 사람인지를 깨닫고 자신도 모르게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사람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하나님을 뵈었음이로다”라고 소리치며 울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이사야의 입술에 제단 숯불을 대어 그의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사 6:1-7). 예수님께서도 기뻐하는 자보다 오히려 우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즉 이사야처럼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부정한 자인가를 깨닫고 우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자신이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주님의 은혜 없이는 도저히 살 수 없다고 생각합니까? 바로 지금 자신의 부정함을 인하여 울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위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위로의 은혜를 체험하게 하소서. 요셉처럼 승리 합시다/마태복음 9:4 요셉이 애굽으로 끌려가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종노릇할 때였습니다. 장군이 집에 없는 어느 날, 보디발의 아내가 젊은 요셉을 유혹했습니다. 그때 요셉은 “내가 어찌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겠습니까”라며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초리가 우리를 살피고 있는데 감히 하나님의 목전에서 죄를 지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죄는 늘 우리의 주변에 맴돌면서 유혹의 손길을 뻗칩니다. 우리는 때론 그것을 과감히 뿌리치지만 또 가끔은 슬쩍 넘어가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말합니다. 또한 ‘남들도 다 하는데’라는 생각으로 합리화시켜 버립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이 보기에는 어쩔 수 없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시각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우리의 악한 생각을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세상 사람 보기에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깨끗한 사람이 되기 위해 몸부림 칠 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의 친구 되시는 예수님/요한복음 15:15 바울은 우리를 지칭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종의 개념은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주인 되신 예수님을 위해 살아야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종이라 하지 않고 친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의 종은 ‘주인이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서 알 필요가 없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런 점에서 바울이 말하는 ‘종’과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종’의 개념을 혼돈하지 말아야 합니다. 친구는 모든 것을 털어놓는 비밀이 없는 관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인으로 영접하면 우리와 더불어 먹고 마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아버지의 뜻을 우리에게 알게 하시며 또한 그 뜻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과 성도의 하나 되는 신비입니다. 창녀와 세리 등 천하고 약한 자의 친구로 오셔서 함께 아파하셨던 그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를 친구로 부르셨으니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아프고 소외당한 작은 이웃을 찾아가 그들과 하나 되는 친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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