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교회 담임 목사본문:출 24:12∼18 , 롬 5:1∼5, 요 4:5∼15 모세는 `40일' 동안 하나님의 산에 올라가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기 위해 전념했습니다(출24:12∼18). 이처럼 40이라는 숫자는 하나님과 대면하는 중요한 고비마다 나타납니다. 뒤에 모세가 또 시내 산에 올라가 머물 때(출34:28, 신9:18), 엘리야가 천사들로부터 음식을 받아먹으며 호렙산까지 올랐을 때(왕상19:8), 예수께서 시험받으실 때(마4:2, 눅4:1) 등입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방황할 때는 40년으로 나타납니다). 이처럼 성경에서 40이라는 숫자는 온전함을 뜻하는 시험하는 기간, 믿음을 시험하는 기간 그리하여 오직 하나님께만 의존해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적의 힘으로 믿음을 강화시키는 기간으로 나타납니다.  사실 사람이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며 40일 동안을 살아있기란 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신언(神言)을 전하는 사람, 메시야성을 지닌 이에게 나타납니다. 이들은 하나님께 절대 충성하며 극한적인 어려움을 견딘 사람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생명의 양식으로 살아나는 이적을 체험을 한 이들입니다. 이런 극한적인 체험은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서 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죽을 수 있는가를 시험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육신으로는 이미 죽은 거나 마찬가지인 가운데서 비로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믿음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처럼 강건해진 믿음의 바탕 위에서 사도 바울은 “소망을 부끄럽게 아니한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소망'이란 세상적인 소망이 아닙니다. 타버린 재처럼 낡고 쇠퇴한 존재가 영원토록 변치 않는 신성(神聖)에 참여하는 소망 즉 `하나님을 바라는 소망'입니다. 그러면 누가 이처럼 어려운 길, 고단한 길을 가려고 하겠는가? 여기에 수가성 우물가에서 만난 여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수가성 우물가에서 만난 여인은 이 세상에서 마시는 물의 한계가 무엇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녀가 갈증을 일으킨 물은 H₂O로서의 물이 아니라 이 `세상의 물', 아무리 마셔도 기갈을 해결하지 못하는 육신의 갈망을 지칭하는 물입니다. 그녀에게 `세상의 물'은 아무리 마셔도 갈증이 깊어질 뿐이었습니다. 남편을 다섯이나 맞이할 정도로 호방한 여인, 사회적 편견과 억압구조, 종교적 독선과 모순에 저항할 수 있을 정도로 자의식이 강한 여인, 육체적 열망을 결코 굴종으로 체념하지 않을 만큼 `성숙한 여성'이었음에도 타는 목마름은 어찌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그처럼 어찌할 수 없는 목마름의 상태에서 예수님를 만나게 되고, 세상의 물, 육신의 물이 아닌 `생명의 물'에 대해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또 다른 의문에 부딪칩니다. 육신을 위한 여정에 목마름을 피할 수 없고, 영혼을 위한 여정에도 목마름을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결국은 마찬가지 아닌가? 이에 대해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3a-14). 육신을 위한 목마름은 심신을 피폐시켜 죽음에 이르지만, 영혼을 위한 목마름은 생명의 환희를 누립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물이라야 생명을 살려냅니다. 주님을 향한 영혼의 갈망이 인간을 참되게 하고,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이 세상의 모든 갈망으로부터 자유롭게 합니다.  우리는 지금 사순절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향했던 열망을 하나님께로 향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소망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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