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기억 주머니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의식이란 주머니요, 다른 하나는 무의식이란 주머니입니다. 의식이란 주머니는 잊고 싶지 않은 것을 담아 두고 관리합니다. 반면에 무의식이란 주머니는 잊고 싶어하는 것을 담아 두고 관리합니다. 이렇게 의식과 무의식이라는 두 가지의 주머니를 주신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요 은총이요 축복입니다. 이 기억을 관리하는 주머니가 고장이 날 때, 혹은 그 관리가 잘못될 경우 그 사람은 정신상태가 혼란스러워집니다. 이 기억주머니를 잘 관리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현상 중에 하나가 바로 `원망'입니다. 원망이란 기억해야 할 것은 망각하고 망각해야 할 것은 기억하기 때문에 생기는 병입니다. 오늘 본문 민수기 11장 1절을 보니, 백성이 하늘을 향해 원망합니다. 이 원망의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진노하십니다. 어찌나 화가 나셨는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진에 불을 내려 심판하십니다. 놀란 백성들이 모세를 찾아 간청하여 모세가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한번 더 봐주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들으시기에도 악한 말로 원망하게 되는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오늘의 말씀 속에서 그 원인과 처방을 함께 찾아 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니 백성들이 원망하게 된 원인은 탐욕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었습니다. 여러분! 항상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내 안에, 그리고 우리 안에 있답니다. 내 안의 탐욕, 우리 안의 탐욕이 원망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왜 그랬습니까? 답은 간단합니다. 그들은 만나의 소중함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굶어 죽기 직전에 내려 주신 만나가 없었으면 그때 거기서 죽었을 텐데 그 만나의 소중함을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그들은 지금 가나안 복지를 향해 가면서 오히려 잊어야 할 것들을 잊지 못했습니다. 바로 몸 팔고 자존심 팔아 얻어먹던 고기 맛을 잊지 못했던 것입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먼저 이스라엘 가운데 섞여 사는 탐욕의 무리를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원망하게 된 또 다른 원인은 그들이 만나의 첫 감격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첫 감격을 망각하면 그 자리에 원망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니 진주 모양의 만나를 거두어들인 후 맷돌에 갈아 먹기도 하고 절구에 빻아 먹기도 하고 가마에 삶아 먹기도 했지만 그 맛이 기름섞은 과자 맛 같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만나를 처음 맛보았을 때, 그들은 꿀맛 같다고 고백했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주신 만나의 그 첫 감격을 계속 기억하며 살아가십니까? 그 때 꿀맛 같던 느낌이 지금도 살아 있습니까? 오늘 본문 마지막 9절을 보십시다. 여기에 원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나옵니다. “만나도 같이 내렸더라!” 여러분! 늘 이렇게 노래하시기 바랍니다. 만나도 같이 주셨다! 만나도! 만나도! 만나도 주신 하나님! 참 감사합니다. 만나 밖에 주실 것이 없느냐고 투정부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원망은 감사의 마음을 삼켜 버립니다. 원망은 우리 마음에서 찬송을 빼앗아 갑니다. 원망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진노를 불러일으킵니다. 원망은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됩니다. 감사가 사라진 마음에 원망이 자리잡게 됩니다. 감사는 더 큰 감사의 사건으로 이어집니다. 감사는 그래서 기적을 낳습니다.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아무리 오늘의 삶이 답답하고 어둡다 하더라도 깊은 밤 저 너머에 밝아오는 새벽의 여명을 바라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만나를 감사로 받을 줄 아는 백성에게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가나안 복지를 허락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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