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립의 성경번역이 완성되었다. 그의 성경이 출간되자 교회 당국자들은 경악했다. 이제는 위클립이 문제가 아니다. 위클립의 힘보다 천배, 만배, 그 이상 무한한 힘을 발휘하는 성경책이 영국인들의 글로 발행된 것이다. 앞서도 대충 말했지만, 그 시대에는 라틴어판 성경이 중심이었고, 또 어떤 천재가 개인적으로 공부하기 위해서 일부번역을 한다해도 그것은 지극히 일부일 것이며, 또 그 사람은 교황권 아래서 귀족들 이상의 세력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당시 교황권은 사제(신부, 주교)가 아닌 신분은 성경을 읽을 수 없는 시대였다. 그런데 그런 책을 영국인들의 언어인 영어로 번역·발행하였으니 출판기술이 미숙한 것을 빼고는 어느 누구든지 성경책을 볼 수 있었다. 금고를 열어 길바닥에 내놓고 아무나 그 안에 있는 귀중품이나 돈을 가져가게 방치해 두는 것과 같았다. 하늘나라를 아무나에게 열어 놓은 셈이다. 예수의 복음을 모든 사람들에게 거저 주는 것이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하는 말씀이 응하는 현장이 되었다. 물론 교황권이 `성경'을 제한적으로 공개하던 10세기 이전의 방침은 이해할 수는 있다. 게르만, 슬라브족 등이 야만에서 벗어나 문명으로 뛰어들 무렵 무식한 이들에게 성경을 함부로 읽지 못하게 했던 교육방침이 장기화되면서 일반 신자들에게 성경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 왔었다. 성경을 읽지 못하니 신자들은 성경의 내용을 모르는 무지랭이가 되어 버렸다. 세월이 흘러 위클립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교황권의 횡포가 극심하였고, 뜻있는 지도자들이 교황권에 등을 돌리기도 하였고, 정면으로 도전하는 항명이 있기도 했다.  그 가운데서 위클립은 교황권이 무서워하기까지 했는데 이제는 돌팔매나 주고받으며 싸움을 하는 수준에서 갑자기 핵무기가 등장한 셈이었다. 당시 영국은 영어로 된 성경이 없었기에 성경읽기를 금지하는 법이 없었다. 당국자들은 위클립의 성경책이 나오자 서둘러 입법을 하고 그 법을 공포하였다. 승려들의 서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러는 사이에도 위클립의 영어 성경은 민간에 많이 전파되고 있었다.  교황권은 위클립의 기세를 꺾고 제거하기 위하여 다시 음모를 꾸몄다. 위클립은 법정에 소환되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거듭되는 압박이다. 교권은 더욱 조여왔다. 젊은 국왕 리차드 2세를 그들 편으로 끌어들여 위클립을 몰아 세웠다. 교황의 이름으로는 물론이고 국왕의 이름으로 위클립의 성경은 읽지 못하도록 칙령을 반포하였다. 위클립은 의회(국회)에 호소하였다. 의회는 그의 요구를 받아들여 잘못된 법을 시정케 하고 교황권의 횡포를 지적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의회제도의 실험기에 불과한 시대에 교황권과 국왕의 연합세력에 위클립이 얼마 정도를 버틸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많은 동조자들도 병들고 늙은 위클립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러나 개혁자 위클립은 무너지지 않았다. 얼마후, 위클립은 교황권에 투항을 하든지 화형장의 이슬이 되든지 기로에 서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몸이 불태워 진다면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였으며, 그런 시간이 오기까지 그는 최선의 저항을 계속하면서 그의 백성에게 성경책을 더 많이 전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또 하나, 그는 얼마 남지 않은 자기 목숨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자기의 뒤를 이어 성경과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는 교황권과 승려들과 대적하여 싸울 그의 후사(후계자)도 생각해 보았다. 이에 대하여 성경을 되찾은 영국의 사람들이 성경이 주는 말씀의 은혜에 더욱 감화를 받아 자기가 죽더라도 자기와 함께 하는 믿음을 지켜내는 날이 하루속히 오기를 위하여 염려하며 기도했다. 위클립은 최후의 법정에 서는 자세로 피고인 석에 버티고 섰다. 그의 느낌으로는 성령의 권능이 재판정안에 충만하였다.조효근/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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