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후보의 당선으로 대통령선거가 끝났다. 대선 결과에 대한 분석이나 평가는 접어두자. 선거에 연관된 구체적인 사안도 내겐 없지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사람도 많고 말도 많은 대선이 끝나서 우선 홀가분하다.
현실 정치는 최선이 아니라 차선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사람이 만들어낸 정치 제도 가운데 그래도 가장 좋은 것이 민주주의지만 현실 역사에서 보면 민주주의는 위태로울 때가 많았다. 최선은 어림도 없고 차선도 꿈꾸지 못할 때가 많다. 이번 대선이 그랬다. 오죽하면 ‘최악이 아니라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라고들 비아냥거리기까지 했을까.
한국 교계와 연관해서 보면 이번 대선은 아마도 역대 선거 가운데 교회가 가장 많이 개입한 선거가 아닐까 한다. 이명박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했고 조직적으로 밀었다. 선거 막판에 가서 진보적인 교계 집단에서 정동영 후보를 지지하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보수 쪽의 바람이 거셌다. 기독교에 반감이 많았던 참여정부의 섣부르고 서투른 국정 운영에 대한 심판을 톡톡히 보여준 셈이라고 봐도 좋다.
선거는 어느 쪽이 이기든 우열이 분명하게 끝나는 게 좋다. 우리나라에서 특히 그렇다. 툭하면 국민의 이름을 들먹거리며 아전인수식 자기주장에 능숙한 게 정치인들이기 때문이다. 선거 결과가 어느 정도 균형을 이뤘다면 한나라당이나 통합신당이나 또 다른 정당들도 국민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느라 바빴을 것이다.
대선은 끝났지만 문제는 이제부터다. 내년 총선을 얘기하자는 게 아니다. 한국 교계에 대한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정권 창출에 공로가 있는 집단이 새로운 정부에 참여하면 대부분 좋지 않은 결과를 낳는다. 참여정부에 참여하면서 망가진 집단이 여럿인데 그 중 시민단체와 이른바 386집단이 대표적이다. 386집단은 그렇다 치더라도 정부에 대한 비판과 견제가 사명인 시민단체는 제도권 정부에 들어가면서 제 본질을 잃었다.
교계도 마찬가지다. 군사정부 시절 정권과 가깝게 지내던 보수 교계 지도자들이 교회의 대사회적 소명을 흐려놓았다. 민주화와 인권 운동을 하던 진보 기독교계가 꺾인 것이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다. 같이 반독재 투쟁을 했더라도 김대중계가 정권을 잡는 순간 진보 기독교계는 정권과 선을 긋고 또 다시 비판과 견제의 길을 걸어야 했다.
이번에 한국 기독교의 보수 집단은 뉴라이트 운동을 통해 충분히 힘을 보여줬다. 이제 한발 뒤로 물러서야 한다. 이명박 정부와 자신을 동일시하면 또 실패를 반복한다. 가톨릭이 교황을 정점으로 한 안정적인 현실 조직 때문에 자연스럽게 정부와 구별되는 집단자의식을 가질 수 있는 데 반해서 기독교는 그렇지 못한 점이 많다. 뉴라이트든 이명박 장로와 가까운 교계 단체나 인사든 이제는 이명박 당선자와 거리를 두고 다시 건강한 비판자와 견제자의 자리에 서야 한다. 이명박 장로와 이명박 정부는 다르다. 이명박 정부는 이명박 장로 개인의 신앙 윤리적 결단으로 진행되는 집단이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의 사이에 서 있다. 교회가 자신을 하나님 나라와 동일시하면 교만에 빠진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가는 순례자이지 하나님 나라 자체가 아니다. 교회가 자신을 세상 나라와 동일시하면 타락에 빠진다. 교회는 세상에 있지만 세상 나라와는 다른 거룩한 기관이다. 필요해서 정치나 경제나 문화에 깊이 개입할 수 있지만 교회는 정치 사회 단체가 아니다.
어차피 미국처럼 한국 사회에서도 기독교가 적극적으로 정치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교회(Church)가 직접 할 것이 아니라 기독교 시민단체(Para-Church)가 주체가 되어야 하며, 정부에 직접 참여하는 방식이 아니라 성경의 시각으로 현실정부를 비판하고 견제하는 방식이 되어야 할 것이다. 기독교의 가치관과 세계관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와 토의를 거쳐 이 결과를 현실 정치의 정책으로까지 연결시키는 기독교 시민정치 운동이 자리를 잡아야 할 것이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쉽게 이용하려 들 수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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