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IVF 한국교회탐구센터 소장 송인규 목사

종교개혁 핵심인 ‘만인제사장’, 
평신도는 누구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바른 인식 통해 실현해가야

목사나 목사 아닌 사람이나 
똑같이 ‘왕 같은 제사장’이요 ‘하나님의 백성’, 
교회 안에서 신분보다 직분이 강화될수록 한 몸인 
유기체적 공동체성 깨져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는 기념예배, 세미나 등 다양한 모양으로 이를 기념하고 종교개혁 정신으로부터 멀어진 현실을 자성하며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길 찾기에 한창이다. 이런 가운데 뜻 깊은 설문조사가 발표됐다. IVF 한국교회탐구센터가 ‘평신도 소명의식에 대한 개신교인 인식조사’가 바로 그것. 여기서는 종교개혁 당시 핵심 사안이었던 ‘만인사제’가 한국교회에서 구현되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목사와 평신도, 그리고 여러 가지 직분으로 나누어져 계급화 된 속에서 성경의 유기체적인 교회 공동체의 모습이 훼손된 현실이 드러났다.
IVF 한국교회탐구센터는 이번 조사 결과를 토대로 6월 8일 ‘종교개혁과 평신도의 재발견’ 주제의 제7회 교회탐구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목사와 평신도는 모두 하나님 앞에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각자 교회와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켜 가야 할 존재인 것을 분명히 했다.  - 편집자주

 

▲ 송인규 목사

 이번에 한국교회 신자들의 소명의식 조사 발표에서 목사와 평신도의 계급화가 고착된 한국교회 현실을 짚고 ‘평신도는 누구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제시하신 부분이 돋보였다. 종교개혁의 핵심이었던 ‘만인사제’가 한국교회에서 전혀 구현되지 못한 현실 속에서 이 부분을 주목하시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 한국교회의 평신도에 대한 관심은 나에겐 오래 된 화두였다. 이번에 성도들의 인식 조사를 통해 평신도에 대한 부분을 제기하게 된 것은 두 가지 갈래가 만난 것이다. 신학교에서 종교개혁과 루터의 만인제사에 대해 배운 것이 한 갈래였고, 또 하나는 IVF에서 성경공부하고 1974년부터 간사로서 활동했다. 그때 많이 느낀 것이 한국교회에서는 목사가 되지 않으면 평신도는 신앙 리더자로 활동할 수 없다는 거였다. 목사와 평신도로 계급화 된 현실은 성경을 위배하는 것이며 종교개혁 전통과도 맞지 않는 것이다. 그때부터 평신도는 누구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바른 이해와 문제제기가 필요하다고 여겼다.

미국에서 1996년에 돌아와 <복음과상황>에서 평신도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게 모아져서 <평신도 신학>(홍성사)이 나오게 됐다.

 

 한국교회 직분의 계급화가 성경에 위배된다고 하셨는데, 어느 부분에서 그런가?

- 신약성경시대는 교회에 직분이 수립이 된 때가 아니다. ‘목사’라는 말도 엡 4:11에서 각자의 은사를 말할 때 한 번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 외에는 목사라는 명칭 자체가 없다. 목사보다는 ‘장로’나 ‘형제’라는 표현이 많다. 성경에서 강조하고 있지 않은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표준인 것처럼 내려온 것이다. 물론 목사와 평신도의 구분이 다 나쁜 것은 아니지만 내가 고민하는 것은 이러한 전통이 성경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다수가 ‘장로교’이지만 실제로는 ‘목사교’가 되었다. 미국의 장로교에서는 목사도 가르치는 장로라는 의미로 ‘티칭 엘더(teaching elder)’라고 부르고 우리가 말하는 장로는 다스리는 의미의 ‘룰링 엘더(ruling elder)’라고 한다. 은사의 차이일 뿐 목사도 장로의 일종으로 보는 거다. 그게 장로교의 본 전통이다. 총회장을 장로가 하는 경우도 많다. 이번에도 보수적 장로교단인 PCA의 총회장이 장로가 됐다. 그런데 우리는 목사에게 장로라고 하면 큰일 난다.

 

목사와 평신도 간의 간격과 함께 교회 안의 직분도 계급화 되어 있는 현실을 어떻게 보는가?

- 한국교회는 유교적인 입신양명과 샤먼의 영향이 혼합돼 있다. 유교적 위계질서가 작용하다보니 말은 장로교인데 교회는 목사라는 직분을 중심으로 모든 게 돌아가고 장로나 여타 직분은 목사보다 낮은 것으로 여긴다.

성씨에 직분을 붙여 부르는 것은 사회의 호칭문화가 교회에 그대로 유입된 경우이다. 목사, 장로, 안수집사, 권사, 집사… 정 없으면 ‘성도’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성경과 맞지 않는다. 신약성경에는 명칭이 두 가지뿐이다. 신분과 직분에 관한 명칭이다. 신분으로 볼 때 그리스도인이라면 목사나 목사 아닌 사람이나 똑같이 ‘왕 같은 제사장’이요 ‘하나님의 백성’(벧전 2:9~10)이다. 하나님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룩함을 입은 ‘성도’이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는 이걸 직분과 연관시켜서 직분 없는 사람을 ‘성도’라고 부른다. 교회 안에서 목사나 목사 아닌 자나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동등한 지체라는 신분에 대한 공동체 의식은 약화되고 직분에 관한 것만 강화됐다.

흔히 평신도보다 목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더 잘 들어주신다고 말한다. 목사가 영적으로 우위에 있는 것처럼 여기는 것은 ‘샤먼’의 영향이다. 샤먼은 신과 백성 사이의 중간역할 하는 것으로, 목사를 그렇게 생각하는 거다. 목사도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인데 잘못하면 머리로 보게 된다. 그럼 이단이 된다.

교회 안에서 신분이 아닌 직분이 강화되면 나타나는 문제는 무엇인가?

- 신분에 관한 명칭들은 우리를 하나 되게 만드는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나게 한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 그리스도 십자가 사랑을 누리는 것, 성령님의 내주하심 등 이런 것들은 하나님께서 동일한 은혜로 주시는 것이다. 이것이 강조되려면 교회의 구성원들이 그리스도 몸의 지체로서 형제자매라는 신분을 부각시켜야 한다. 이처럼 하나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 됨이 드러나야 하는데 자꾸 직분으로 나누고 계급화 하는 속에서 하나 됨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직분은 은사의 문제이다. 목회자는 신약의 22가지 은사 중에 목양의 은사, 말씀의 은사, 리더십의 은사 등 세 가지 은사를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 장로는 리더십의 은사를 가진 사람이다. 긍휼히 여기는 은사는 집사에게 요구된다. 이처럼 직분은 은사 때문에 나눠진 것이다.

 종교개혁의 핵심이었던 ‘만인제사장’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목사나 평신도 모두의 의식 전환이 필요한 것 같다.

- 한국교회는 ‘평신도’ 하면 끊임없이 성직자의 도움을 필요로하는 존재, 성직자에 비해 무언가 급이 낮은 계층으로 보는 경향이 보편화되어 있다. 세상에서 평신도의 역할을 다룬 <예배당 중심의 기독교를 탈피하라>가 2002년에 출간됐는데 미국 뉴저지의 어느 한인교회에서 금서로 지정했을 정도였다. ‘평신도 신학’이라는 말이 처음 사용된 것은 핸드릭 크레머가 1958년에 쓴 <평신도 신학(A Theology of the Laity)>에서였다. 이것을 유동식 박사가 5년만인 1963년에 한국어로 번역해 대한기독교서회에서 나왔다. 그러나 <평신도 신학>은 한국교회 내 평신도의 위상 정립에 이렇다 할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우선 평신도가 누구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바른 인식이 필요하다. 하나님 앞에서는 목사나 목사 아닌 자나 제사장 신분은 같다. 그럼 제기되는 질문이 “그렇다면 평신도와 목회자 사이에 아무 차이도 없다는 말인가?”라는 것이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평신도와 목회자가 하나님 앞에서의 신분(state)의 관점에서는 동등하지만, 공동체 내에서의 직분(office) 면에서는 서로 차이가 생긴다. 은사를 다르게 받았기 때문에 공동체 안에서 직분이 다른 것이다. 누구나 다 설교 은사를 받은 것은 아니다.

교회 역사를 넓게 보면 두 극단이 있어왔다. 하나는 만인제사장 이론만을 강조하고 직분론을 무시하는 것이고, 반대는 만인제사는 약화되고 직분이 강조되는 것이다. 성경에는 두 가지가 다 나온다. 둘 사이에 긴장은 있지만 두 가지 모두 강조해야 한다.

나는 이걸 모이는 공동체와 흩어지는 공동체로 나눠서 제시한다. 교회는 세상과 구별되어 존속하는 공동체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세상에 흩어진 가운데 그 정체를 유지하는 공동체이기도 하다. 이중 후자의 관점이 세상 속의 평신도가 어떤 사명을 가지는지 밝히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모이는 공동체에서는 목회자가 전문성 띤 사람이기에 평신도들이 목회자가 주도하는 가운데 같이 협력해야 한다. 그러나 흩어지는 공동체로서 세상 속으로 가면 평신도들이 주도권 잡는 가운데 목회자가 보조자로서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거다.

한국교회가 그동안 모이는 공동체 중심으로 해오면서 흩어지는 공동체는 중요시하지 않았고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목회자는 모이는 공동체 생활에 대해 가르쳐야 하지만 동시에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도 강조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세상 속에서 평신도로서의 사명을 다하고자 할 때 필요한 것은 △세상의 일상적 삶 가운데에서도 견지하는 ‘예배의식’ △자신이 세상 속으로 보냄 받은 존재임을 인식하는 ‘선교 의식’ △사회적 관계와 역할 또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해당한다는 신념을 의미하는 ‘소명의식’ 등이다.

하지만 만인제사장은 목회자뿐 아니라 평신도들에게도 배척당하고 있다. 그 이유는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데 첫째, 평신도의 사명이라는 표현이 수반하는 부담감, 둘째, 평신도 신학을 지지하는 데 따르는 대가가 너무 크고, 셋째, 평신도들이 세상적 사명 수행으로부터 뒷걸음질 치기 때문이다.

 

한국교회 현실에서 만인제사장이 실현은 가능하다고 보는가?

- 사실 비관적이다. 평신도에 대한 목회자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하는데 이에 대해 무지와 무관심을 비치는 목회자들이 많고 평신도 목회를 시도하는 경우도 교회 성장의 수단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오늘의 한국교회와 같이 유기체적 공동체성이 무너진 모습은 성경에 위배된다. 지상 교회에서 조직체를 무시할 수 없지만 유기체 교회가 바탕이 되어 조직체가 서야 하는데 한국교회는 유기체성보다는 교회 건물, 예산, 교인 숫자로 판단한다. 이는 성경의 가르침에서 굉장히 멀어진 것이다. 

만일 평신도 신학의 원리와 정신이 성경의 가르침에서 연유하고 지속적으로 개혁되어야 할 교회의 참된 모습과도 일치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떤 식으로든 우리의 현실 가운데 추진해 나가야 한다. 

                                                                                                                    

송인규 목사는
장로교 목사(합신)이자 기독교 신학자, 저술가이다. 서구의 신학 이론보다 성서 텍스트에 천착하여 자신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씨름해 온 신학적, 신앙적 이슈를 글쓰기에 담아내는 ‘생활 신학자’로 불린다. 한국기독학생회(IVF)에서 간사와 총무로 일했으며, 총신대학교 대학교에서 신학(석사), 미국 칼빈 신학교에서 신학(석사), 시라큐스 대학교에서 철학(박사)를 공부했다.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1996년부터 조직신학 교수로 근무했고 2014년 5월 정년퇴임했다. 저서로는 <예배당 중심의 기독교를 탈피하라>(IVP), <아는 만큼 누리는 예배>(홍성사), <고립된 성(性)>(IVP)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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