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차별 거둬내고 평등한 세상 꿈꾸는 마중물교회 정광의 목사

9살 때 척수염으로 하반신 마비,
장애와 비 장애를 넘어 함께 어우러지는 삶에 도전

“어려서부터 장애·비장애 함께하는 것이
익숙해진다면 이해와 공감의 폭이 넓어지고
장애가 장애 아닌 세상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

 

▲ 정광의 목사

“장애인만을 위한 교회는 없어져야 합니다.”

그냥 들으면 장애인들을 차별하는 것인가 싶지만 이 말을 하는 정광의 목사(54, 마중물교회) 역시 휠체어를 사용해야 하는 지체장애 1급 장애인이다.

장애인을 위한 교회가 없어져야 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어느 교회든 장애인들이 출석하고 봉사하며 성도의 교제를 하기 위해 어울리는 데 불편함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불편함 없이 한국교회에 출석하는 장애인 숫자는 얼마나 될까? 장애 때문에 교회 가는 것이 힘겨워 장애인들만의 교회가 필요하다면, 그건 장애인에게 문 닫은 교회나 장애인들만을 위한 교회나 바람직하지 못한 건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정광의 목사가 섬기는 마중물교회는 2010년부터 성경공부로 시작해 자연스럽게 예배 공동체가 되었고, 현재 10여 명이 함께 작은 교회로 모이고 있다. 주일에는 카페를 빌려 예배드리고 그마저도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성도의 가정에서 모인다. 정 목사는 번역 일을 하며 교회를 섬긴다.

이들 중 장애인은 정 목사 혼자뿐. 가끔 의아하게 바라보는 밖의 시선을 느끼지만 정 목사는 “평범한 교회”라며 그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늘 장애와 비 장애를 넘어 함께 어우러지는 삶을 시도하고 도전해온 그에게는 오히려 장애인 교회, 장애인 신학으로 장애라는 범주를 구분하는 것이 더 이상하고 불편한 현실이라고 했다.

# 나는 배부른 장애인(?)
  
정 목사는 자신을 ‘배부른 장애인’이라고 말했다. 장애인이면서 비장애인과 간격 없는 삶이 가능했던 것은 끝까지 그를 포기하지 않은 부모님, 그리고 그의 장애를 걸림으로 여기지 않고 벗이 되어준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그는 고백했다.

정 목사는 9살, 초등학교 3학년 때 척수염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 되었다. 그 후 중학교 때 비로소 휠체어를 타게 되기 전까지는 어머니 등에 업혀서 바깥 구경을 했고, 학교에서는 친구들 등에 업혀 다녀야 했다. “세상에 장애인은 나밖에 없다”고 여길 만큼 장애인을 볼 수 없었다.

삶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는 일어설 수 없다는 것, 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때부터 더욱 공부에 매진했다. 하지만 장애를 이유로 고등학교 입학을 거부당해, 검정고시로 대입 시험을 치러 우수한 성적이 나왔지만, 역시 장애 때문에 도전하는 곳마다 면접에서 탈락했다.

부모님은 큰 결단을 내렸다. 장애의 몸으로 먹고살기 위해서는 공부보다 기술을 가르쳐야겠다고 판단하고 장애인이 운영하는 시계 수리와 도장 기술을 배우는 시설에 아들을 맡겼다.

이곳에서 기숙하면서 정 목사는 처음으로 장애인들을 만났다. 장애로 인해 늘 구경거리가 되어야 했는데, 그곳은 원장도 기술을 배우는 아이들도 모두 자신과 같이 장애인이었기에 내 집처럼 편안했다.
당시 방학기간이라 남겨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알게된 충격적인 사실은, 이들 대부분이 장애로 인해 부모로부터 버려지거나 부모가 있어도 버려지다시피 위탁된 아픔을 안고 있었다. 

새로운 날을 열어가기 위한 기술을 배우기 위해 방학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느 날 원장이 그를 부르더니 “너 나가야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곳에서마저 거부당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좌절감이 컸다. 분노의 눈빛으로 노려보는 정 목사에게 원장이 물었다. “이곳에서 내가 무엇을 가르치는 아는가?” “기술이요”, “아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르친다. 하지만 네가 여기 있으면 아이들에겐 절망이다”라며 더 나은 길을 찾아가라는 것이었다. 

정신이 퍼뜩 들었다. 장애로 인해 버려져야 했던 이들에 비해 “나는 배부른 장애인”이라는 생각에 아이들을 대신해서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낭비하지 말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이듬해 대입시험에 재도전해 서강대학교 전자계산학과에 입학했다.

  
# 익숙해진 차별에 질문하기
 

그곳의 아이들을 보면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사람이기를 포기하도록 강요당하는 현실에 도전하고 차별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커졌다.

입학은 했지만 대학생활에서도 장애로 인해 제약이 많았다. 이수과목 중 ‘체육’이 필수과목이었는데 교수가 장애인이기에 출석만 잘하면 ‘C’ 학점을 주겠다고 했다. 필수과목이니 자신이 할 수 있는 탁구로 시험을 보겠다고 고집했다. 하지만 일언지하에 거부당했다. 학과장을 찾아가도 소용이 없자 총장에게 상황을 이야기했다. 

당시 외국인이었던 총장은 이 문제를 교수회의에 부쳤고 결과는 ‘보건학’이라는 과목을 만들어 장애인은 물론 비장애인이라도 건강에 관심이 있다면 보건학을 선택하여 체육과목을 대체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정 목사는 보건학이 아니라 탁구를 통해 자신의 건강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며 버텼다. 끝내 담당교수로부터 직접 일대일 탁구 실기시험을 치러 체육 과목에서 ‘C’ 학점을 받았다.

출석만 하라던 제안에서 결과는 달라진 것이 없었지만 ‘장애인이니까’ 하고 당연시하던 차별에 문제제기하고 그런 인식이 당연한 게 아니라는 걸 보여준 것만으로도 자랑스러운 ‘C’ 학점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정 목사는 그 이후에도 장애인에 대한 차별 거둬내기에 힘썼다. 그는 장애인들 스스로도 차별에 익숙해져서 문제를 문제로 바라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변화를 기다리기보다 차별에 문제를 제기하고 변화를 주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지인들과 함께 IT 관련 벤처기업을 운영하며 장애인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 장애를 다시 보다
 

장애 너머를 바라보는 힘이 강해진 것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체험하면서부터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QT를 하던 중 로마서 말씀은 그의 눈을 번쩍 뜨게 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 1:21~23)

그 말씀은 똑똑한 체하며 “당신들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애쓰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했다. 그것은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치 않고 스스로를 ‘장애’의 굴레에 가두는 것은 아니었는지…. 그 후로 말씀과 기도에 전념했고, 교회 주일학교 교사를 자처해 처음 맡았던 초등생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봉사했다. 덩치 큰 아이들이 그를 교회 3층까지 업어주었기에 가능했다.

아이들의 고민이나 성경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더욱 성경을 들여다보며 말씀의 깊이에 빠져들었다.

그러던 중 주변에서 신학교 입학을 권유하는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심지어 그를 처음 본 목사님까지도 “하나님의 뜻”이라며 강권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장애의 몸으로 신학교 기숙사 생활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도울 자를 보내주시면 가겠습니다” 했는데 정말 하나님은 신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도울 자를 붙여주셨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2010년에 목사안수 받았다.
 

# 장애·비장애 간격 없는 세상
 

정 목사는 부모님과 생활하며 도움을 받지만 생계는 번역일로 해결하고 목회는 마음 맞는 이들과 함께하며 기쁨으로 감당하고 있다. 4년 전부터는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 이음다음통번역봉사단에서 단장을 거쳐 자문위원으로 봉사하고 있다.

정 목사는 장애와 비장애의 간격을 좁혀가기 위해서는 서로 눈높이를 맞추면 좋겠다고 했다. 100세 시대라는데, 나이 들면 누구나 눈 어둡고 거동이 불편해지는 법, 장애를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라고 여기고 준비하는 자세를 갖는다면 이미 장애 입은 이들과도 좀 더 거리를 좁힐 수 있지 않겠냐는 이야기다.

정 목사는 “또 어려서부터 장애와 비장애를 나누지 말고 함께하는 것이 익숙해진다면 이해와 공감의 폭이 훨씬 넓어지고 그런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었을 때는 장애가 장애로 여겨지지 않는 세상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라며 교회에서부터 그런 시도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했다. 이 봄, 장애인주일을 무심히 넘기지 말고 모든 교회가 관심 갖기를 바란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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