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500+1주년 맞아 215개 조항 ‘교회와 신앙 개혁안’ 내놓은 김 영 찬 목사

“하나님은 결코 목회자가 중심이 되는 교회, 돈과 재물로 가득찬 교회, 화려하고 웅장한 교회를 원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수많은 부패와 부정과 악행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신앙과 믿음이란 원하는 대로 능력과 기적을 기대하는 용도가 아니라 현실이 어떠한 환경일지라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흔들림 없이 수용하고 적응하는 지혜와 인내를 구하며 자연성을 잃지 않는 데 있다.”

▲ 김영찬 목사가 종교개혁 501주년을 맞아
내놓은 개혁안. 온라인으로 공유하고 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지나면서 돌아보니 진정한 의미에서의 개혁은 아직도 시작되지 않았음을 절감한다. 근본적으로 이기적인 욕심과 욕망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개혁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종교개혁 500+1주년을 맞이하면서 ‘교회와 신앙 개혁안 215개-인식의 변화와 생활실천 조항’을 내놓은 김영찬 목사(65세)는 이 시대에 함께 사는 신자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현재의 모습처럼 사는 것이 진정한 크리스천, 진정한 교회 모습은 아니지 않느냐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내야 하는 책무가 우리에게 있는 게 아니냐고.’

‘사랑은 하나님’이라는 주제로 발표한 이 개혁안 1장에서는 종교, 하나님, 만물과 인간의 근원, 인간의 무한한 욕심, 믿음과 구원, 예배, 교회, 깨달아라! 천국이 너희 안에 있느니라 등  ‘기본 인식의 변화’에 대해서 살피고 있으며, 2장은 ‘산상수훈을 중심으로 한 교회와 신앙 개혁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3장은 ‘왜 교회와 신앙이 개혁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설파하고 있다.

김 목사는 신학교 시절 개척한 것부터 시작해 13년간 목회를 했다. 그런데 사역하면서 진리에 대한 갈증과 목회에 대한 갈등을 겪었다. 그 즈음 고등학교 교사 시절 국민윤리의 동양철학을 강의하던 내용을 되새기면서 이웃 경전과 고전을 15여 년 간 공부하기도 했다.

또 호스피스 사역을 17년간 하며 아픔의 시간을 극복하는 이들 옆에서 암 환우들을 위로하고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친구’가 되어주었으며, 신앙갱신 세미나를 5년간 과천, 광명 등에서 진행하며 평신도를 깨우치는 운동을 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현재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글쓰기’에 주력하고 있다. 한국교회에 개혁이 절실하다고 강조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하나님은 결코 목회자가 중심이 되는 교회, 돈과 재물로 가득찬 교회, 화려하고 웅장한 교회를 원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수많은 부패와 부정과 악행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신앙과 믿음이란 원하는 대로 능력과 기적을 기대하는 용도가 아니라 현실이 어떠한 환경일지라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흔들림 없이 수용하고 적응하는 지혜와 인내를 구하며 자연성을 잃지 않는 데 있다.”

▲ 김영찬 목사

●● 부와 명예가 믿음의 완결판?

△ 어떤 문제의식에서 215개 개혁 조항을 발표한 것인가.

- 현장 목회도 열심히 했고, 평신도를 깨우치려 나름 노력도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하나님에게 집중하는 듯하다가 또다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을 반복하는 모습이었다. 이런 저런 방법으로 해봐도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인 글쓰기로 생활 속에서의 신앙이 실현되도록 돕고 싶었다.   
 

△ 많은 이들이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김 목사님이 보시기에 가장 시급한 것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 종교 지도자들이 기득권을 버리지 못한 채 마음과 양심으로부터의 개혁 의지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예수를 우리 신앙의 중심에 모시고 그의 가르침을 수없이 말하고 들어 왔지만 그 뜻과 의미를 살려내지 못한 채 예수를 통해서 기복(祈福)과 장수(長壽)를 갈망하는 모습이었다.

물질적인 부와 명예를 얻는 것이 곧 믿음의 완결판으로 생각하면서 예수 믿으면 복 받고 구원 얻어 사후에 영생을 누리는 것에만 집착해 왔다. 그러면서 우리의 일상생활은 교회 밖의 사람들과 조금도 구별되지 않은 채 도리어 예수와 하나님의 이름만 욕되게 하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적 교회로 부흥시킨 목회자를 부러워하면서 많은 목회자들이 성장하는 것을 하나님의 영광이요 축복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런 의식을 많이 갖고 있다. 목회 현장과 성도들의 믿음에는 ‘기복’ 신앙이 절대적인 권력이 된 것으로 보인다. 기복의 권력을 ‘성직자’들이 쥐고 있으면서 목회자에게 순종해야 복 받을 수 있다는 의식이 여전히 한국교회에 팽배해 있는 게 사실이다. 그것은 바로 진리에 대해 어두워졌기 때문에 신앙의 본질을 놓친 것이다.

생활의 복을 바라다보니 비합리한 것을 보고 들어도 못 들은 척 유야무야 넘어가기 일쑤다. 그러다보니 강단의 메시지를 신도들이 정성스럽고 간절하게 듣지 않는다. 몸이 거기 있을 뿐이다. ‘성전 뜰만 밟는’ 신자들이 턱없이 많다. 목회자들의 메시지에도, 신자들의 발걸음에도 영성이 없다.

우리의 예배가 초대 교회를 닮은 것이 아니라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을 닮아 그 예배가 형식과 거짓된 의식(儀式)이 되고 말았다. 구약의 예배는 자아와 욕심의 희생을 제물로 상징하는 예배였다면 예수 이후에는 회복된 신령과 진실을 나누는 예배로 변모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향하여 ‘너희의 무수한 헌금과 성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냐고 물으며 헛된 제물을 다시는 가져오지 말라’(이사야 1:11-13)고 하신다. 다시 말하면 이기적인 욕심과 세속적인 기복에 치우친 채 이웃은 무시하고 경멸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와 복을 받기 위해 예배하는 것을 크게 책망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신자 사이에 금이 간 것은 ‘욕심’ 때문이다. 욕심이 진리의 본질을 상실하게 한다. 에덴동산에서의 선악과와 생명나무가 여전히 우리 앞에도 놓여 있는데, 재물과 성공에 눈이 어두워져서 선악과를 따먹는 것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신전과 기복사상이 없어져야 진정한 신자의 삶을 살아낼 수 있을 것이다.
 

●● 예배당과 권력의 상관 관계

△ 신전이 없어져야 한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 예배당 건물이 세워지고 담임목사, 부목사, 장로, 권사 등을 조직을 하게 되면서 ‘계급’이 형성된다. 권력을 행사하려 드는 일도 비일비재 하다. 그 속에서는 순종만이 요구되기 일쑤다. 루터의 종교개혁 95개 조항에서의 면죄부 얘기도 성전을 짓기 위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해괴한 방법이 동원된 것을 심각하게 문제시하지 않았나.

루터는 ‘만일 교황이 면죄부 판매 설교자들의 속마음을 안다면 자기 양(羊)의 가죽과 살과 뼈로써 베드로 대성당이 세워지는 것보다 차라리 이것을 불태워 재로 만드는 것을 좋아하실 것’이라고 주장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교회나 목회자의 부패는 예배당 건물이 커지는 것과 관련이 많다. 그만큼 권력이 강화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교회는 사람을 바탕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길과 참과 생명, 즉 성령을 바탕으로 세워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천지와 그 안에 있는 만물을 주재하실 뿐 결코 사람의 손으로 만든 성전에 계시는 분이 아니다(사도행전 17:24). 사람의 손으로 지은 교회당은 건물일 뿐 신전(神殿)이 아니다.

하나님은 결코 목회자가 중심이 되는 교회, 돈과 재물로 가득찬 교회, 화려하고 웅장한 교회를 원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수많은 부패와 부정과 악행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다만 교회 공동체는 초대 교회처럼 서로 영적, 물적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사랑의 공간이면 어디든 족한 것이다. 무엇이 더 필요한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교회는 신령할 뿐 세속적으로 부요하지 않다. 하나님 자신이 비움의 신(神) 아닌가? 우리에게 가난한 심령을 말씀하시고 그 심령이 곧 하나님 나라, 천국이라 하셨는데 어찌 하나님의 교회가 크고, 넓고, 높아야 하며 또한 고가(高價)의 비품들로 가득해야 하는가.

하나님은 내 안에서 영으로 계시며 너와 나 우리 가운데 사랑으로 계신다. 내 안의 신(神)을 깨닫지 못하면 진정 ‘신’을 만날 수 없으며 또한 우리 가운데 계신 신을 볼 수도 없다. 나와 이웃을 볼 때 몸 형상과 이름과 신분으로 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하나의 ‘교회’와 ‘나라’로 볼 것이다. 그래야 진정 사람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교회당과 성구들과 십자가 형상 등을 통해서 신의 감각을 느끼려고 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을 놓치고 말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랑 가운데서 존재함을 기억해야 한다.

●● 예배가 일상이 돼야

△ 그렇다면 어떤 대안이 있는가.

- 담임목사 한 사람을 중심으로 권력이 비대해지니 문제가 생기고 부작용이 많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힘을 분산시키는 것이 답이다. 평신도와 목회자의 역할이 필요할지라도 그것을 계급화 하여 목회자만 성경을 가르치는 데서 평신도 역시 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셀 목회를 얘기하는데, 거기서의 셀이 각 구역이라면 구역장이 바로 평신도 목회자로서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

각 부서나 구역마다 평신도들이 리더가 되어 자체적으로 모임을 이끌어가고, 재정 역시 각 부서별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랑을 행한다는 것은 어렵고 힘든 것이 아니다. 일상에서 늘 소소하게 따뜻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나누는 것이 하나님이 말하는 사랑이다. 사랑은 마음으로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물질로도 나누는 것이니 마음이 있는 곳에 물질이 따르기 때문이다. 많이 가진 자는 많이 나누고 적게 가진 자는 적게 나누면서 물의 흐름처럼 사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의 세계관이 달라져야 한다. 인생과 신앙의 가치관에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하나님은 기복적인 섬김의 대상이 아니라 말씀의 정신을 따라 이웃과 세상을 섬겨야 하고, 예수를 믿음의 대상으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작은 예수가 되어 예수처럼 살아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신앙이요 믿음인 것이다. 약자들을 찾아가 그들과 함께 하자. 예배는 의식(儀式)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日常)이 되어야 한다.
 

△ 이번에 발표한 개혁안의 주제를 ‘사랑은 하나님’이라고 정했다. 일반적으로 아는 개념과 다른 것인가.

- 사랑 그 자체가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처럼 내 의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으로서 사는 것이어야 한다. 그 하나님을, 사랑을 존재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이란 무엇인가? ‘예수’라는 이름은 곧 ‘구원’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니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어 의롭게 된다고 하였다. 여기서 믿음이란 성경적 지식이나 교리를 지식과 입으로 긍정하는 신앙고백의 믿음이 아니라 예수와 하나 된 작은 예수로서의 체험적이고 경험적인 확고한 믿음을 의미한다. 그 경험과 체험이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말한다. 예수 십자가의 죽음은 곧 나의 죽음이 되는 것이니 거짓 나의 근원인 욕심은 죽고, 예수 부활은 곧 나의 부활이기에 죽었던 내 영(靈)이 소생하여 다시 태어난 참 ‘나’가 고백하는 믿음인 것이다.

호스피스 사역을 하면서 암 환자의 장례예배를 많이 인도했다. 적지 않은 목회자들이 ‘천국 입성’을 당연시 말하곤 하는데, 죽어서 천국 간다는 것은 사실 ‘거짓말’이다. 천국은 현재에 있다. 하나님의 사랑을 회복해서 그 사랑의 힘으로 사는 것이 천국이고, 그것이 바로 영생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신앙과 믿음이란 원하는 대로 능력과 기적을 기대하는 용도가 아니라 현실이 어떠한 환경일지라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흔들림 없이 수용하고 적응하는 지혜와 인내를 구하며 자연성을 잃지 않는 데 있는 것이다.
 

●● 산상수훈 시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

△ 신앙갱신 세미나는 얼마동안 어떻게 진행했었나.

5년간 과천, 광명 등지에서 평신도를 깨우치는 운동을 했다. 각자 자기 교회를 다니면서 함께 모여 공부했는데, 공부할 때는 모두 그렇게 살아야 한다며 열심인데 3, 6개월 과정을 마치고도 바뀌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호스피스 사역에만 몰두했다.

후회스러운 것은 ‘어떻게 신앙생활 해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 ‘당신이 제사장이 되어 살라’는 말을 당당히 하지 못했다. 목회자들에 의해 어느 정도 길러지면 영적으로 독립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힘이 없는 것이 문제다. 평생 갓난아기처럼 먹여주고, 똥오줌 다 가려줘야 할 형편인 것이 오늘의 한국교회 신자다.

또 우리는 마음에 욕심을 가득 채운 채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물과 예배를 드리고 있으며 예수의 이름으로 우리의 소원을 간구하고 있다. 오직 우리의 욕심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고 예수의 이름을 부르며 교회출석 하고 있지 않은가.
 

△ 올 여름에 <잃어버린 사람의 길>(상, 하)이란 제목으로 ‘목사가 풀어주는 도덕경 이야기’를 출간한 것으로 안다.

- 진리 공부를 15년 간 하면서 81장으로 기록된 노자의 <도덕경>에 큰 매력을 느꼈다. 성경의 기록된 문자를 그대로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 신학과 교리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나 자신을 키우기 위한 노력이었다. 이 책은 통치자와 각 계의 지도층들에게 주는 지도력의 지침서다. 곁길로 가는 연구가 아니라 나에게는 하나님의 이해가 더 깊어지고 넓어졌다. 그것을 나누고 싶었다.
 

△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나.

- 산상수훈을 시로, 혹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글을 쓰고 싶다. 교회와 신앙의 진정한 개혁은 삶과 신앙의 일치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기에 성경의 진수(眞髓)라 할 수 있는 산상수훈 가르침대로 살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일상에서의 변화가 구원이고 믿음이다. 믿음은 그래서 곧 사는 것이다.

사실 글 쓰는 사역은 나를 위한 작업이기도 하다. 내 인생과 신앙관을 정립해 가는 과정이다. 나를 위해 쓰기 시작했지만 그것은 곧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었고, 그래서 이웃과 함께 공유하고 싶었다. 이번의 개혁안 역시도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어서 온라인에 공개하게 된 것이다.

이 개혁안이 많은 이들의 마음에 개혁의 불씨가 되었으면 좋겠다. 평신도들의 마음에 주님의 마음으로 파도치는 그날을 열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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