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노력에 대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여긴 지금의 결과에 대해, 하나님은 그것이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분명히 밝히신다.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서 한 것이라고 여겼던 것은 전부 가짜였다. 그들은 전혀 엉뚱한 일을 해왔던 것이다.

‘어린이식당 마루’는 부천에 있는 아이들을 위한 식당으로, 마을 주민 20여 명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고 있다. '그러면 이분들 가운데 크리스천은 얼마나 있을까?' 최근 현장실습을 나온 신학대학원생 32명에게 이 질문을 던졌다. 질문의 의도가, 적다는 뉘앙스였기 때문에 그들은 얼마나 적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가장 적게 대답한 학생도 세 명 정도는 될 것이라고 했다. 정답은 한 명인데, 그분마저도 ‘마루’를 이용하는 초등학생의 중국인 엄마로 주변에 있는 교회에 새신자로 등록한 분이었다.

우리 사회는 전쟁을 멈추고 성장에 매진한 지 70년이 지났다. 이 기간 교회도 부흥을 위해 열심히 달려왔다. 교회는 점점 성장했고 풍요로워졌다. 하지만 교회가 외쳤던 사랑은 어디로 간 것일까?

기원전 518년으로 돌아가 보자. 남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한 것이 기원전 587년경이므로 나라를 잃은 지 70년쯤 지난 후다. 베델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을 찾아와 물어보았다. “우리가 지난 여러 해 동안에 해 온 그대로, 다섯째 달에 애곡하면서 금식해야 합니까?”(슥7:3) 유대인들은 그 동안 예루살렘이 폐허가 된 쓰라림을 상기하기 위해 5월이 되면 금식했었다. 베델 사람들은 이런 금식 기간을 앞으로도 계속 지켜야 하는지에 대해 권위 있는 답변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상황이 나아진 지금, 70년이나 지난 일을 슬퍼하며 상기하는 것이 더 이상은 무의미해 보였을 것이다.

스가랴서는 이런 질문을 하게 된 당시의 상황을 정확하게 기록해 놓고 있다. “그 때에 예루살렘과 그 주위의 여러 성읍에는, 거주하는 사람의 수가 불어나고, 사람들이 마음을 놓고 살았다. 남쪽 네겝과 스불라 평원에도 사람의 수가 불어났다.”(슥7:7) 정치적, 경제적 상황이 안정되면서 사람들도 늘어나니 슬픔과 긴장보다는 마음을 놓고 사는 것이 당연해 보였다. 그리고 그렇게 된 것은 그들이 금식이든 제사든, 하나님께 헌신할 만큼 한 결과라고 여겼던 것이다.

두 가지 대답이 떠오른다. ‘그만하면 됐다. 이제 축복을 누려라.’ ‘무슨 소리냐? 더 열심히 금식하고 기도해라.’

그런데 스가랴를 통해 하신 하나님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너희가 지난 칠십 년 동안,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금식하며 애곡하기는 하였으나, 너희가 진정, 나를 생각하여서 금식한 적이 있느냐?”(슥7:5) 묻지도 않은 7월 금식까지 포함해서, 70년간 이루어진 금식과 애곡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다. ‘너희들은 한 번도 나를 생각해서 금식한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 해온 금식은 오직 자신들을 위한 것이며, 하나님에게 잘 보여서 자신들의 소원을 이루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너희가 먹고 마실 때에도 너희 스스로 만족하려고 먹고 마신 것이 아니냐?”(슥7:6) 결국 지금까지 해온 모든 것은 자기만족을 위해서였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노력에 대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여긴 지금의 결과에 대해, 하나님은 그것이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분명히 밝히신다.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서 한 것이라고 여겼던 것은 전부 가짜였다. 그들은 전혀 엉뚱한 일을 해왔던 것이다.

한국 교회는 지난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 왔다고 자부하고 있다. 특히 종전 후, 발전의 시기에 교회는 성장하기 위해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고, 금식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한국 교회는 그것을, 어쩌면 유일하게 자랑할 수 있는, 소중한 전통으로 여기고 있다. 그 결과 교회성장은 하나님이 내려주신 축복이며, 한국교회만큼 축복받은 나라는 없다며 세계를 향해 자랑해왔다.

요즘 한국교회는 예전처럼 금식하지 않는다. 새벽기도에서 흘리던 눈물도 사라져가고 있다. 젊은 목사들은 시대 변화에 따른 교회의 변신은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옛 향수에 기댄 반동의 목소리는 더 크다. 부흥의 시대를 살아온 목사들은 ‘무슨 소리냐?’며 예전처럼 열심히 해야 다시 부흥할 것이라고 외쳐댄다.

기성세대든 젊은 세대든 한국교회를 걱정하기에 쏟아내는 소리들일 것이다. 예전과 같은 열정이 사라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과거의 열정이 지속되어야 할 신학적 근거도 없다.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지난 칠십 년 동안이나 해왔던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너희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서 해온 것뿐이다.’ 한국교회는 교회가 누리는 현재의 풍요가 과거 신앙 열심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말도 안 되는 허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하나님은 똑같은 식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말씀하셨다. “나 만군의 주가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공정한 재판을 하여라. 서로 관용과 자비를 베풀어라.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가난한 사람을 억누르지 말고, 동족끼리 해칠 생각을 하지 말아라.”(슥7:9-10)

하나님은 우리의 충성, 사실은 자기만족을 위한 이기적 헌신에 전혀 관심이 없으시다. 우리가 하나님께 어떻게 했느냐는 결코 자랑거리가 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의 근거도 아니다. 정의와 사랑의 실천을 외면한 곳에서, 하늘에 계신 분을 향한 금식과 헌신은 시끄럽게 울려대는 꽹과리일 뿐이다.
 

선한목자교회 담임 김명현 목사
             선한목자교회
              김명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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