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를 향한 여정 (1)

공동체적 소명에 이르는 3년 정도의 시간, ‘서번트 리더십 과정’ 필수 - 공동체에 참여하거나 새 공동체 만들어 나간다

이 훈련은 ‘관상기도’와 함께 하는 과정-부르심에 확신을 가지고 응답한 사람들만이, 아무런 대가 없이도, 공동체를 위해 헌신할 수 있다


필자에게는 세 사람의 영적 스승이 있다. ‘세이비어교회’의 고든 코스비, ‘라르쉬 공동체’의 장 바니에, 그리고 영성가인 헨리 나우웬이다. 필자가 함께 하고 있는 ‘선한목자공동체’는 ‘세이비어교회’의 미션 그룹들과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라르쉬’의 공동체 정신을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헨리 나우웬은 공동체와 필자가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도록 해준다.

헨리 나우웬의 저서 ‘예수님의 이름으로’는 우리를 공동체로 안내하는 처음 교재이기도 하다. 앞으로 5회에 걸쳐 이 책의 서문과 세 번의 강연 내용, 그리고 후기를 간단히 소개하면서, 비슷한 주제 아래 ‘선한목자공동체’가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걸어온 여정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라르쉬’로 가는 길

‘상처입은 치유자’라는 명저서로 유명한 헨리 나우웬은 1932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1957년 사제 서품을 받는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30대의 나이에 노틀담대학에서 심리학을 가르치기 시작하여 1971년부터는 예일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한다. 하지만 늘 ‘하나님의 사랑에 빚진 자’로서의 부담감을 안고 있던 그는 1981년 페루의 빈민가를 방문한다. 이듬해 하버드대학의 초빙을 받아 신학교수로 강의를 하지만, 끊이지 않는 내적 갈등을 겪는다.

1985년, 나우웬은 장 바니에의 초대로 프랑스 트로슬리에 있는 장애인들의 공동체 ‘라르쉬’(L'Arche, 방주)에서 1년간 생활하면서 자신의 소명이 교수가 아닌 다른 곳에 있음을 깨닫는다. 이듬해인 1986년 하버드를 떠나 캐나다 토론토 근교에 있는 라르쉬 공동체 중 하나인 ‘데이브레이크’(Daybreak)로 간 후, 그곳에서 영성지도자이자 사제로 활동한다. 그는 1996년(64세) 네덜란드 힐베르쉼에서 심장마비로 잠들 때까지 라르쉬의 장애인들과 함께 살았다.

‘데이브레이크’는 발달장애인들이 협력하는 이들과 함께 살고 있는 공동체다. 나우웬은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지냈던 이곳에서의 삶을 ‘철저하게 서로 연결된 공동체적 삶’이라고 고백한다. ‘목적과 이유도 없이 그저 사랑의 부름에 무조건적으로 응답하는 삶’의 진정한 가치를 깨달았던 것이다.

80년대가 저물 무렵(1988년?), 나우웬은 ‘인간개발연구소’(워싱턴 D.C. 소재)로부터 창립 15주년 기념 강연을 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주제는 ‘21세기 크리스천 리더십’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강의를 준비하면서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한다. ‘예수님은 말씀을 전하도록 제자들을 보내실 때 결코 혼자 보내지 않으셨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는 워싱턴에 함께 갈 사람을 선정해 달라고 공동체에 부탁한다. 이에 ‘데이브레이크’에서는 발달장애인인 빌 반 뷰렌(Bill Van Buren)을 함께 보내기로 결정해 준다.

필자에게는 나우웬이 빌과 함께한 이 여행이 하나의 상징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나우웬이 지금까지 ‘혼자 걸어왔던 여정’을 끝마치고, 라르쉬에서 비로소 ‘함께 하는 여정’을 시작했다는 상징이었다.
 

공동체를 향하여

필자의 목회는 1992년 부천시 심곡동 지하에 교회를 개척하면서 시작되었다. 수입예산의 50%는 소외된 이웃을 위해 지출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목회하던 중, 그들을 직접 만나서 돕고 싶다는 생각에 동사무소를 찾아갔다. 필자에게 호의적이었던 동사무소 사회복지사는 중학교를 그만 둔 10대 청소년들 셋을 만나게 해 주었다. 바로 다음날로 기억되는데, 필자는 교회 승합차에 텐트를 싣고 아이들과 여행을 떠났다.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하늘이 올려다 보이는 강가에 자리를 잡았다. 하룻밤을 보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들에게 물었다.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해 주었으면 좋겠니?’ 그러자 ‘공부를 하고 싶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필자는 이들이 살고 있는 임대아파트에 자리 잡고 있는 ‘종합복지관’을 찾아가 공부할 교실을 하나 얻은 후, 그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소문은 금방 퍼졌고 많은 청소년들이 몰려왔다.

안타깝게도(?) 이 이야기는 가난한 동네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그중에 일부는 의사나 변호사, 혹은 대기업에 취직했다는, 한국교회가 좋아할 만한 ‘성공스토리’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아이들은 공부하는데 금방 실증을 냈다. 필자는 다시 물었다. ‘공부 말고 무엇을 하고 싶니?’ 아이들은 축구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축구를 시작하자 더 많은 청소년들이 모였고, 한 팀으로는 감당이 안 되어, 두 팀으로 나누어 모여야 했다. 새벽에도 축구하러 나온 중학생들은 학교까지 데려다주곤 했다. 이들은 필자와 함께 동네 독거노인들을 찾아다니며 반찬배달도 했다.

한편, 교회를 찾아온 노숙자들을 도와주었고, 1998년, IMF 시절에는 공원에서 노숙자들과 노인들을 위한 무료급식도 열었다. 임대아파트에 거주하는 장애인들과는 매달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그러자 교인들이 말하기 시작했다. 요약하자면, 저들에게 쏟는 애정의 일부라도 자신들에게 보여 달라는 것이다. 이웃 사랑이 교회의 본질임을 설파했던 필자는 이해하지 못하는 교인들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혼자 하는 목회 또한 목회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2000년도가 시작될 무렵이다. 선배 목사가 갈등하던 필자에게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세이비어교회’를 소개해 주었다. 교회를 사임한 필자는 워싱턴으로 갔다. 한국 목회자들을 위한 계절학기 과정을 운영하던 ‘웨슬리신학교’에 등록하고 2년 간 학기 때마다 세이비어교회를 방문했다. 놀랍게도 필자가 어렴풋이나마 상상하던 교회가 바로 그곳에 실재하고 있었다. 목회의 길에서 헤매고 있었던 필자에게 진정한 교회의 모델이 선명하게 제시된 것이다.

세이비어교회는 ‘서번트 리더십’이라는 훈련과정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소명에 이르는 훈련인데, 과정을 마치고 소명을 확신한 사람들이 함께 ‘공동체’를 세워나간다. 이렇게 그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 수십 개의 공동체들을 세웠고 계속해서 세워가고 있었던 것이다. 필자의 아내이자 지금은 상설화된 공간으로 운영되는 ‘청개구리밥차’의 리더 이정아 대표는 세이비어교회의 미션그룹 중 이주민 자녀들을 위한 ‘선한목자’(The Good Shepherd Ministry)에서 자원활동을 했는데, 나중에 이것이 우리 공동체의 이름이 되었다.

공동체를 세우고 공동체로 함께 산다는 것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높은 지위나 많은 재력, 뛰어난 전문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교회가 크다고 세울 수 있는 것도 물론 아니다. 공동체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수도원에 입교하는 과정은 개인이 가진 재능이나 열정에 상관없이 보통 3년 정도의 시간이 누구에게나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즉, 공동체적 소명에 이르는 과정은 3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그 과정을 세이비어교회처럼 ‘서번트 리더십 과정’이라고 부른다. 이 과정은 공동체에 관한 이해와 서번트 리더십, 신학과 교회사, 그리고 사회문제에 대한 공동체적 접근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과정이 끝나면 공동체를 향한 소명에 관한 확인의 절차가 있으며, 소명을 함께 하는 이들이 ‘서번트이자 리더’로서 공동체에 참여하거나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간다.

한편 이 훈련은 ‘관상기도’와 함께 하는 과정이다. 관상기도는 너와 나를 하나로 엮어주는 공동체를 향해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해준다.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주변의 모든 소음을 벗어난 침묵 가운데서, 비로소 그분의 미세한 음성은 들려올 것이다. 이 부르심에 확신을 가지고 응답한 사람들만이, 아무런 대가 없이도, 공동체를 위해 헌신할 수 있다.

김명현 목사/선한목자교회
김명현 목사/선한목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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