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나 칼빈의 16세기는 500년 전, 중세사 끝자락이었다. 첨단 21세기도 중턱에 오르려 하는데 500년 전 수재들의 영웅적 요구에 아직도 인류가 취해 있으면 안 된다. 종교의 핵심은 교회와 신행의 축복된 만남과 조화에 있다. 종교개혁은 로마 가톨릭의 교리적 부족분을 바로잡고, 그들의 낡은 행위신앙을 바로잡기에 있었다.

그러나 16세기의 선물이기도 한 프로테스탄트는 교리신학은 지켜갈 수도 있으나 행위방식이 낡아서 가톨릭의 16세기까지의 과오보다 오히려 더 볼품 없어졌다. 그래서 지속적 관리와 개혁이 필요하다. 오늘의 시대는 신구 기독교 모두 작심하고 변화된 모습을 하나님 앞에 내놓아야 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로마 가톨릭은 전 세계 200여 개 이상 국가들을 중앙집권적 단일 조직화 하고 있다. 그러나 16세기 종교개혁의 산물인 프로테스탄트 신교는 대책이 없다. 한 지역 국가단위가 아니라 한 지역 국가 안에서도 수십 개, 심하면 수백 개 교파요 교단으로 분리 분열을 해가면서 복음이요 정통 기독교라고 우긴다. 우기는 정도가 아니라 “웃긴다” 해야 더 정확한 표현이다.

어찌하여 예수 한 분에게서 그토록 수많은 교단들, 세계적으로 볼 때는 수천, 수만 개의 교단이 된다 할 수도 있다. 더이상 종교를 농락하지 말고 가지고 놀려는 생각을 거두고, 최소한 1국가 1개 교단으로 조직관리를 하고 세계교회들과의 연대와 유기성을 발휘하여 복음의 힘을 결집해야 한다.

복음은 세계인들이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는 요구에 있다. 복음으로 장난치지 말자. 복음으로 사사로운 이익을 취하지 말자. 복음은 내가 너를 이롭게, 복되게, 기쁘게, 편케 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16세기 칼빈과 루터의 개혁운동에 열광했던 지난 날들을 떠올려 보자. 앞으로도 종교개혁을 떠올리고 루터와 칼빈의 이름을 떠올리면 가슴이 울컹거리고 감동이 있게 하자.

프로테스탄트의 개혁과정이 각 지역, 각 나라들의 산발적인 운동이었기에 조직력의 불편함을 이해하지만 그 기간이 지난 500년 정도이면 충분하다. 이제는 더 이상 변명하지 말고 예수 이름으로 최소한 각 국가 단위마다 한 교단, 한 교파, 한 교회운동부터 21세기 개혁의 과제로 삼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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