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종교개혁연구소 임태수 소장, 신학강좌에서 “구원 조건에 ‘행함’꼭 포함돼야” 강조

“마르틴 루터가 ‘믿음으로만 의롭게 되고 구원 얻는다’는 구호를 내걸고 성공한 16세기
종교개혁을 ‘제1 종교개혁’이라고 부른다면, 이를 넘어서 보완하는 21세기의 개혁은 제2 종교개혁”

 

   
▲ 제2종교개혁연구소가 주최한 신학강좌에서‘믿음으로만’이 아니라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구원이 이뤄진다는 내용의 강좌가 있었다. 발제 후 질의응답이 활발히 이뤄졌다.

“믿음만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마 7:21).”
제2종교개혁연구소(소장 임태수 박사)가 10월 16일 오후 1시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에서 가진 제2기 제2 종교개혁 신학강좌에서는 ‘믿음 구원론’을 뒤흔드는 내용이 제기됐다.

임태수 소장(호서대 명예교수)이 제기한 이 문제 제기는 단순한 임 교수의 주장이 아니라 성경을 근거로 펼쳐졌다. 또한 오늘의 한국교회가 사회로부터 ‘걱정’의 대상이 된 데에는 ‘행함’이 뒤따르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들이 많은 상황이어서 구원의 조건에 행함이 꼭 포함돼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주목을 받았다.

이날 임 박사는 ‘어거스틴의 믿음과 행함’ 이해, 그리고 두 종류의 믿음·의·행함에 대해 두 번의 발제를 했으며 안종우 목사(아가페교회)는 ‘행함 없는 거짓 신앙과 전통교리의 모순’에 대해 발제했다.


+ 행함 있는 믿음, 구원의 조건

임태수 박사는 서구교회가 텅텅 비고 죽어가고 있으며,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교회들도 서구교회가 앓고 있는 죽음의 병을 앓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이런 서구교회와 세계교회를 개혁하고 실릴 사명이 한국교회에 있는데, 한국교회 역시도 병을 앓고 있다”며 “죽음의 병을 이기고 자리를 털고 다시 잃어나 이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한국교회에서부터 제2 종교개혁이 일어나야 한다”고 임 박사는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제2 종교개혁은 무엇인가. 마르틴 루터가 ‘믿음으로만 의롭게 되고 구원 얻는다’는 구호를 내걸고 성공한 16세기 종교개혁을 ‘제1 종교개혁’이라고 부른다면, 이를 넘어서 보완하는 21세기의 개혁을 제2 종교개혁이라고 임 박사는 1997년부터 불러오고 있다고 말했다.

“제1 종교개혁과는 달리 제2 종교개혁은 ‘믿음과 행함으로 의롭게 되고 구원 얻는다’는 신학을 구호로 내걸고 주장한다.”

임 박사는 ‘행함 있는 믿음으로(fide cum opera) 구원’이 제2 종교개혁의 핵심사상이라고 강조하면서 이 구원론은 마태복음 7:21, 야고보서 2:24 등 철저히 성서에 기초한 것임을 강조한다.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약 2:17, 26)라는 말씀처럼 행함 없는 죽은 믿음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말했다. ‘믿음으로만’을 내세웠기 때문에 서구교회와 한국교회가 병들고 위기에 처해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임 박사는 ‘믿음으로만’의 구원론은 근래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유병언의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가 주장하는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선행은 구원과는 무관한 상급의 대상’이라는 구원론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믿음만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마 7:21). 행함 있는 믿음으로라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단언한 임 박사는 “행함 있는 믿음을 한국교회가 가지면, 철저히 실천하면 제2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한국교회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자신했다.

   
▲ 임태수 소장

+ 어거스틴도 주장한 ‘믿음과 행함’

임 박사는 1995년에 ‘믿음으로만 구원이 아니라 행함 있는 믿음으로 구원’이라는 첫 논문을 ‘행함 없이 구원 없다’는 제목으로 발표했는데, 2013년 우연히 어거스틴이 413년에 쓴 <On Faith and Works>(믿음과 행함에 관하여)에서 자신과 같은 주장인 ‘행함 있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구원론을 어거스틴이 정확히 100% 일치하게 말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어거스틴과 내가 사람들의 이론에 의존하지 않고, 성경과 성령에만 의존하여 구원론을 도출해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거스틴의 ‘행함 있는 믿음으로의 구원’의 내용에 대해 임 박사는 설명했다.

“어거스틴 당시에 ‘행함은 필요 없고 믿음으로만 구원 얻는다’는 사상이 교회를 위협하고 있었다. 이런 잘못된 구원론에 대항하기 위해 어거스틴이 <On Faith and Works>라는 소책자를 썼다.”

이 책 14장에서 어거스틴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구원을 위해서는 ‘믿음으로만’으로 충분하고, 구원을 얻기 위해서 선행을 하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확신‘이다.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고 말한 것은 선행이 불필요하다는 말이 아니라 이신칭의 이전에는 율법을 행하지 않아도 이신칭의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율법을 행하는 것은 이신칭의 이후에 필요하다.”

26장에는 “예수 이름으로 세례 받고 예수를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어떤 삶을 살든지 상관없이 구원 얻을 것이라는 잘못된 확신을 사람들에게 주지 말라. 기독교인의 삶은 세례의 성스러운 특성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영생은 세례 안 받는 자에게도 허락되지 않거니와 선을 행하지 않는 자에게도 허락되지 않는다”는 어거스틴의 주장을 소개했다.

그런데 루터는 <On Translating: An Open Letter>에서 “행함이 아닌 믿음만이 우리를 의롭게 한다고 말했으며, 믿음만이 의롭게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내가 처음도 아니요 유일한 사람도 아니다. 암브로시우스와 어거스틴,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주장을 한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루터는 ‘크리스천의 자유’라는 글에서도 “행함 없는 믿음만이 우리를 의롭게 하고, 자유하게 하고 구원한다”고 말했음을 임 박사는 소개했다.

임 박사는 이런 루터의 주장에 반박했다.
“루터보다 1500여 년 전에 야고보가 ‘믿음으로만 구원이 아니라 행함 있는 믿음으로 구원’(약 2:14~26)이라고 분명히 말했고, 루터보다 1100여 년 전(413년)에 어거스틴이 또 한번 ‘믿음으로만 구원이 아니라 행함 있는 믿음으로 구원’이라고 분명히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루터는 성경말씀도 무시하고, 기독교회의 큰 스승이신 어거스틴의 말도 무시하고, 그들의 주장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믿음으로만의 구원’이라는 주장을 과감히 했다.”

임 박사는 루터의 잘못된 구원론을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성경이 말씀하고 어거스틴이 말한 ‘행함 있는 믿음으로 구원’이라는 구원론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한국교회를 위기에서 구하고, 비어가고 죽어가는 서구교회와 세계교회를 살릴 수 있다.”

임 박사는 만약 루터가 이 자리에 있다면 “나를 껴안고 감사하다고 뽀뽀해줄 것”이라며 자신의 주장에 루터가 기뻐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 박사는 “나는 루터를 사랑한다. 지금 교회는 루터의 진리를 왜곡하고 있는데, 우리가 그것을 찾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루터 당시의 기독교(가톨릭)가 순수한 신앙이 아니라 인간적인 행함을 보태는 모습 속에서 루터가 ‘믿음’을 강조한 것이지 행함이 불필요하다고 한 것이 아니라고 임 박사는 설명했다.

“루터 자신이 행함 있는 믿음으로 살았으며, 생활은 검소했다. 그의 식사시간에는 고아와 과부 등 소외된 이들이 늘 함께 자리했다.”


“믿음만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마 7:21). 행함 있는 믿음으로라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 행함 있는 믿음을 한국교회가 가지면, 철저히
실천하면 제2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한국교회가 다시 살아날 것”

 

 

+ 두 종류의 믿음·의·행함

두 종류의 믿음이란 행함 있는 믿음과 행함 없는 믿음으로 임 박사는 구분한다. 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는 말씀에 두 가지 믿음이 있다는 것이다.

‘행함 있는 믿음’은 믿음을 가지고 있음과 동시에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지만 ‘행함 없는 믿음’은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예수님이 분명히 말씀하고 계신다고 임 박사는 강조한다.

“구원의 조건은 ‘믿음’ 한 가지만이 아니라 ‘믿음과 행함’ 두 가지라고 마 7:21에서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옳다. 믿음에는 구원을 얻을 수 있는 ‘행함 있는 믿음’과 구원을 얻을 수 없는 ‘행함 없는 믿음’ 두 가지가 있다는 사실은 다른 성경 구절들(마 7:24~27,
25:31~46, 고전 6:8~11, 고전 13:2, 갈 5:16~26), 약 2:14~26, 사 1:10~20, 암 5:4~27)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임 박사는 “루터가 말한 ‘믿음으로만 의롭게 되고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구원론은 행함 있는 믿음과 행함 없는 믿음을 구별하지 않고, 행함 있는 믿음뿐만 아니라 행함 없는 믿음에도 구원을 보장해주는 구원론이다. 이는 성경의 진리와 배치되는 구원론이다”라고 지적한다.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구원론은 많은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자기의 믿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행함 있는 믿음인지, 아니면 구원 얻을 수 없는 행함 없는 믿음인지를 검토해보지 않고 교회 다니면서 예수를 믿으니 믿음을 가지고 있으니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폐해를 낳았다고 임 박사는 지적했다.

‘두 종류의 의(義)’ 역시 믿음으로 얻는 의, 행함으로 얻는 의로 구분하는 것인데, 루터는 ‘믿음으로 얻는 의’에 대해서만 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루터는 1519년에 ‘Two Kinds of
Righteousness’(의의 두 종류)에 대해 말했지만 그 다음 해인 1520년에는 ‘크리스천의 자유’에서 ‘믿음으로만의 의’를 말한 이후부터는 더 이상 행함으로 얻는 의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믿음으로만의 의’에 대해서만 말했다고 임 박사는 설명했다.

“이렇게 본다면 루터는 두 종류의 의 가운데 한 종류만을 말했으므로, 절반의 진리만을 말한 셈이다.”

믿음으로도, 행함으로도 의롭다함을 받는 의인,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기독교인의 삶의 길이라고 임 박사는 말한다.

그렇다면 ‘두 종류의 행함’은 어떤 것인가. 행함 없는 믿음과 행함 있는 믿음(약 2:18)이 그것이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을 때는 행함이 필요하지 않으나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이후에는 행함이 필요함을 성경은 여러 곳에서 말씀하고 있음을 임 박사는 소개한다(창 17:1; 18:19, 마 19:16~19, 눅 10:25~28, 롬 13:8~10, 고전 6:8~11, 고전 13장, 갈 5:16~23, 엡 5:3~5)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는 말씀에서 ‘오직’이라는 단어는 “루터성경과 한글성경에만 있을 뿐 원어성경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라고 임 박사는 설명하면서 “이것은 루터신학에서 나온 것이지 성경에서 나온 게 아니다”라고 짚었다.

“구원을 얻음에는 믿음으로 얻는 의, 즉 이신칭의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신칭의 이후에 행함으로 얻는 이행칭의의 의도 필요하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루터보다 1500여 년 전에 야고보가 ‘믿음으로만 구원이 아니라 행함 있는
믿음으로 구원’(약 2:14~26)이라고 분명히 말했고, 루터보다 1100여 년 전(413 년)에
어거스틴이 또 한번 ‘믿음으로만 구원이 아니라 행함 있는 믿음으로 구원’이라고 분명히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루터는 이를 무시”

 

+ 임 박사가 제시하는 이행칭의 방법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행함들을 세례 받자마자 다 행할 수는 없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믿음에는 젖을 먹는 단계도 있고, 모든 것을 먹을만한 성숙한 믿음도 있다. 현재 위치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부터 낮은 단계에서부터 하나식 하나씩 차례차례 행하도록 노력해가다보면 점점 더 높은 단계의 계명과 율법까지도 지킬 수 있게 될 것이다.

1.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
눅 10:27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우리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우리 자신 같이 사랑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일차적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2.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이러한 행함은 우리 힘만으로는 안 된다.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우리는 성경이 말씀하는 율법과 계명들을 다 행할 수 없다.

바울은 자기 자신의 힘만으로는 죄의 유혹을 이길 수 없음을 알고 절망에 가까운 울부짖음을 토해냈으나(고전 7:24) 죄의 유혹을 이길 수 있는 길을 발견하고(롬 8:3~4) ‘우리 육신으로는 연약하여 할 수 없지만, 성령의 도움을 받으면 율법의 의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고백한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면 우리는 예수님이 명령하신 계명들을 행할 수 있다. 우리는 예수님이 명령하신 계명들을 지킬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을 다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일부 기독교인들은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롬 3:10)는 바울의 말을 앞세우면서 어차피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을 바에야 아예 지키려고 시작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말이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지키려 하지 말고, 완벽하게 못하더라도 지금 단계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3. 회개하여 용서를 구해야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 하지만, 말씀을 어기고 죄를 짓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때로는 십계명을 어기기도 하고, 형제를 미워하고, 마음으로 음욕을 품는 등 죄를 범하게 된다.

이럴 때마다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용서다. 우리는 하나님의 무한한 용서가 필요하다. 이런 하나님의 무한한 용서 없이 우리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 하나님은 자비하시고 무한히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다(출 34:6~7, 느 9:17, 사 55:7, 단 9:9, 엡 4:32, 골 3:13, 요일 1:9).

4. 날마다 두루마기를 빨아야
율법 지키는 일을 비유로 말해보자. 진흙탕 길을 가는 A, B라는 두 사람은 모두 깨끗한 흰 옷을 입고 십리의 진흙탕 길을 조심조심 걸어갔다가 되돌아왔다. 진흙탕물이 묻지 않도록 조심조심 걸었지만, 어쩔 수 없이 흰 옷에 진흙탕물이 묻었다.

그 다음날도 똑같이 해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그러자 B는 “아무리 조심히 걸어도 진흙탕물이 묻는 것을 피할 수 없으니, 나는 더 이상 조심하지 않고 마음 놓고 편안하게 진흙탕 길을 걷겠다”고 마음먹고 날마다 그렇게 걸었다.

A도 똑같이 날마다 진흙탕 길을 걸었지만 조심조심 걸었고, 갔다 와서는 날마다 옷을 세탁해 입었다. 이렇게 두 사람은 1년간 십리의 진흙탕 길을 걸었는데, 1년 후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B는 진흙탕 물로 범벅이 된 더러운 옷을 입고 있었고, A는 깨끗한 흰 옷을 입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진흙탕의 인생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다.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최대한으로 죄 짓지 않도록 노력하되, 혹시 잘못해서 죄를 지으면 즉시 회개하고 용서를 받아야 한다. 그러면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해 주실 것이다(마 18:22).

그래서 주님께서는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계 22:14)라고 말씀하셨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는 말씀에서 ‘오직’이라는 단어는
“루터성경과 한글성경에만 있을 뿐 원어성경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은 루터신학에서
나온 것이지 성경에서 나온 게 아니다”

 

   
▲ 안종우 목사

+ 안종우 목사, 루터에 반박하다

안종우 목사는 마태복음 7:15~27의 말씀을 언급하면서 “주님의 이 말씀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거짓 믿음이라 하는 것”이며 “이 말씀은 ‘프로테스탄트’의 개혁주의 ‘이신득의’ 교리와 정반대되는 말씀”이라고 반박했다.

또한 오직 신앙, 오직 성서, 만인제사장설을 프로테스탄트 3대 원리로 제시하는 마르틴 루터의 이신득의(以信得義) 교리는 여러 면에서 성경 말씀과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안 목사는 “루터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거짓 믿음’(약 2:14~26)이라고 한 야고보서를 ‘지푸라기로 만든 서신’이라고 혹평하여 정경으로 인정치 않았다”며 “그것은 이신득의 교리가 행함이 없는 믿음만을 의미한 것임을 말하는 것이며, 이는 성경과 다른 잘못된 주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롬 3:31, 고전 6:9~10, 갈 5:19~21, 엡 5:5~7 말씀 등을 언급하며 자신의 주장이 타당함을 뒷받침했다.
안 목사는 또 ‘두 아들의 비유’(마 21:28~32)에서 “말로 행하겠다 하고 실제로는 행치 않은 첫째 아들은 아버지께 불순종한 자였고, 말로는 거역했으나 나중에 뉘우치고 행한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뜻대로 순종한 자라고 했다”며 “믿음과 행함은 따로가 아니고 하나”라고 강조했다. 아브라함도 믿기 때문에 순종하고 행한 것임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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