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40주년 특집 / 들소리가 걸어온 길 40년! - 가난 속 타협 없이 걸어온 길

     

들소리 출발 1호

들소리 연습

소리소리 들소리. 
말 없는 소리. 
말 못하는 소리. 
말 안하는 소리. 
엉터리 참 엉터리….

세상에 소리가 너무 많고 
요란해서 못살겠다는 
사람 있으나 
진짜 소리 들어본 사람은 
그런 소리 안할 것입니다.

들소리 하지만 
들이 소리 합니까.
민들레 돋을 때 
소리 합니까.
들에 가 보세요.
들은 소리 하지 않지요. 
봄 무논에 맹꽁이 소리, 
가을 참새들 배부르다고 
가슴 두들기는 소리, 
메뚜기 저도 한 철이라도 
뛰는 소리가 
어디 소립니까.

법망에 걸려 
재판 받던 저 들사람 
어디 할 말 있다고 하던가요.

몰라서 소리소리 하지요. 
소리 참 듣기 힘든 것이 
세상입니다.
그럼, 너는 지금 
무슨 소리 하느냐고요?
네! 네! 
이것은 소리가 아니고, 
발성연습이요, 
걸음마입니다.
꾸짖어 주세요. 
헛된 세상에게 
지지 말라고….

- ‘들소리’ 1978년 4월 3일 제1호 권두언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은 옛말이다. 이제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되는 속에서 인류는 속도전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들소리’가 걸어온 길을 집약해 보자니 40년 전이나 오늘이나 외치는 그 소리에 변함이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예수의 십자가를 외면하고 복음으로부터 멀어진 한국교회를 향해 타협하지 않고 회개하고 본질로 돌아설 것을 촉구하는 날 선 소리 그대로다. 그러면서도 교회사를 통으로 보며 대안을 제시하고자 힘써왔다.

‘들소리’는 발행인 조효근 목사가 주께로부터 받은 ‘내 교회를 바로세워다오’ 요청의 구체적 행동으로 시작됐다. ‘들소리’ 하면 보통 예수의 오실 길을 예비했던 세례 요한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를 떠올리기도 하지만 그 본뜻은 본지의 이상(理想)인 이사야 11장 6~8절에서 찾을 수 있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기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들소리’는 하나님의 창조 본마당(들)에서 들려오는 완벽한 평화의 ‘소리’를 표현한 합성어로 이 땅에 예수 재림 시대, 본격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펼쳐 가실 그때를 부르는 마중물로서 언론의 예언자적 사명을 다하고자 진력해왔다.

 

# 회보 ‘예수의 빛 들소리’에서 언론 시대로

본지는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모토로 ‘진품 기독교 시대를 여는 주간 신문’을 표방하며 이 땅에 하나님의 요구를 전달하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의 지체로서 개개인마다 예수 생명으로 살아가도록, 인류 역사상 유일한 종교인 기독교의 위상을 삶으로 드러낼 수 있도록 제시하는 데 주력했다.

먼저 1977년 4월 3일 들소리선교회가 창립되어 직업청소년 계층을 향한 전도, 봉사에 매진했고 한때는 야간학교, 통신 강의록을 통한 교육도 병행했다. 당시 문서가 귀하던 시절 직업 청소년들을 위한 소식지 ‘들소리’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이후 발전하여 ‘예수의 빛 들소리’ 회보를 매주 64면까지 발행해 회원들과 긴밀하게 호흡하며 한국교회의 방향을 제시하고 복음의 길을 올곧게 걸으려는 이들에게 벗으로서 힘을 북돋는 데 힘썼다.

예배 자료가 부족하던 때에 예배의 부름부터 찬송, 말씀, 헌신의 결의까지 제시하는 ‘예배 모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말씀과 함께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오늘의 말씀’, ‘평신도 성경 연구’, 교회사에서 빛나는 인물들을 조명한 ‘빛을 남긴 사람들’, 회원들의 글과 기도를 나누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삶·지표·호흡’ 등으로 신앙의 삶으로 이끌었다.

당시 매주 발행된 ‘예수의 빛 들소리’에 실린 ‘우리의 바람’을 보면 ‘들소리’의 방향성을 뚜렷이 살필 수 있다. △예수구원-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생명의 구세주임을 믿는다. △확대선교-우리는 모든 문화권을 인정하며 그들의 세계에도 전진적인 대응을 한다. △생활신앙-생활이 신앙을 대표하는 날까지 신앙수련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자유 실현-인간의 완성은 궁극적 자유에 있음을 믿기에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에게도 걸림이 되지 않는 자유의 지점을 향하여 나아간다.

12년간 회보를 발행해오다 1988년 민주화시대가 열리면서 출판신문 등록이 허용되자 정식으로 ‘들소리신문’으로 등록, 1989년부터 신문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이후 1996년까지 소식지와 병행해오다 1997년부터는 신문만을 발행했다. 교도소, 군부대, 청소년 등 당시 소외된 계층에 무료로 보급하며 사랑받던 회보에서 좀더 공신력 있는 ‘신문’으로 전환한 것이다. 어느 한 교단에 속하지 않고 초교파 언론으로서 한국교회의 소식을 신속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을 넘어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방향을 제시하는 데 주력했다.

 

# 들소리의 시선, 본질을 향하여

한국 선교 130여 년, 초기 복음에 대한 순수와 뜨거움을 잃어버리고 양적 성장에 치우친 한국교회를 향해 본지는 본질회복을 촉구해왔다.

본지의 사시로서 기독교의 1천년 미래를 내다보며 방향을 제시하는 ‘한국교회, 21세기 이렇게 대비한다’를 비롯해 주님의 몸 된 교회로서 지역과 사회 속에서 복음을 펼쳐내는 교회(공동체)들을 조명한 ‘주님의 공동체’, 그리스도인들의 이중적인 삶이 한국교회의 병폐로 꼽히는 가운데 신앙을 삶 속에서 풀어내고자 고군분투하는 성도들을 소개하는 ‘생활신앙’은 곳곳에서 묵묵히 교회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명을 다하며 복음의 순수를 지켜내는 땀내 나는 현장들을 발굴해 지면에 담아내왔다.

또한 성도들의 매일 예배를 이끄는 ‘오늘의 강단’과 ‘오늘의 말씀’, 교계언론으로서는 드물게 매주 한 면씩 책을 소개해 그리스도인들에게 양서를 소개해 온 ‘Book & Books’, 교회 안팎을 복음의 눈으로 읽고 제시하는 ‘사설’, ‘시사논단’, ‘포럼’ 등으로 지면을 꾸려오면서 교회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신문에 녹여내 왔다.

이 외에도 특집과 기사를 통해 주목해 온 부분들은 들소리가 한국교회와 호흡하며 본질로부터 멀어진 부분들을 가감 없이 밝혀내고 돌이키도록 촉구하며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앞당기기 위한 걸음들이었다. 그 핵심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1. ‘만인사제’ 구현

종교개혁의 핵심이요 예수께서 몸으로 보이신 ‘신인합일’의 지점을 목표하는 ‘만인사제’의 구현을 한국교회에 제시해 왔다. 그리스도인 누구나 하나님 앞에 단독으로 나아갈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요 모두가 제사장으로 살 것을 말하는 ‘만인사제’, 그러나 한국교회는 직분의 계급화가 고착된 속에서 그 구현은 요원한 현실이다. 

본지는 ‘만인사제’가 단지 구조의 개혁만으로 가능하지 않고 그리스도인 개개인의 인격(성품)이 예수로까지 높아질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점에서 교회다움과 성도다움을 지향해 갈 수 있도록 제시해왔다.

 

2. 교단 연합

분열, 한국교회의 특징이 되어버렸다. 같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서로 함께 할 수 없어 각기 다른 이름으로 존재하는 교단이 300개가 넘는다는데, 연합기관도 교단들의 이합집산 속에서 통합과 분열을 거듭하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교회의 각개전투 식 선교는 교세 확장을 낳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끼리의 경쟁”으로 비화되어 전도, 선교, 나눔 등에 있어 공회전을 가중시키고 사회로부터도 지탄의 원인이 되어왔다.

본지는 이런 현상에는 하나님 중심보다 인간적인 욕심이 작용하고 있음을 짚고 교단 간, 연합기관 간의 통합을 촉구해왔다. 

그 가운데 교회 간 거리 지키기, 교회 버스 운행 금지 및 거주 지역의 교회 출석하기, 교회 명을 지역 명으로 하되 교단을 초월해 순차적으로 번호를 붙여 하나 된 모습 지향하기 등을 제시한 바 있다.

 

3. 교적부, 신자의 실명화
 

한국교회의 역사 속에 이단 문제는 늘 있어왔지만 신천지는 신자로 둔갑해 접근, 교회 안방까지 침투해 교회를 뒤흔드는 사례가 급증하면서 그야말로 공포분위기가 확산됐다. 교회들은 저마다 ‘신천지 출입 금지’ 팻말을 내걸었지만 새신자의 탈을 쓴 신천지를 가려내기란 역부족이다.

본지는 신천지의 교회 침투 전략이 통할 수 있었던 데는 한국교회의 ‘수평이동’이 근본 원인인 것을 짚었다. 이웃 교회의 신자가 와도 막지 않는 풍토 속에서 신자들도 자유로이 교회를 이동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분위기가 신천지의 침투 전략에 당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진단이었다.

이에 본지는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주민등록증으로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듯이 교회들도 신자들마다 정확하게 신분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제시했다. 이는 이미 한국교회 초기 역사 속에 아름다운 전통으로 자리매김 했던 것으로 신자의 신앙이력을 기록한 교적부, 그리고 교회를 이동할 경우 담임목사의 확인을 주고받는 ‘이명증서’를 실시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4. 맘몬 견제, 소중한 작은 공동체 지향

한국에 복음의 씨앗을 심은 선교사들의 희생과 복음의 싹을 틔우고 그것이 뿌리내리도록 자신의 삶을 바친 신앙 선조들의 순교의 피 위에 세워진 한국교회다. 적은 숫자로도 민족의 희망으로 우뚝 섰던 한국교회가 오늘날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1/4이라는 교세 속에서도 복음에 힘입어 역동적으로 세상을 바꿔내기는커녕 지탄의 대상으로 전락한 현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 가운데는 맘몬(물질주의)이 교회 안에도 깊숙이 침투해 ‘대형=성공’이라는 도식 속에 교회들의 대형화가 급격히 진행됐다.

본지는 교회의 대형화는 얼굴 없는 신자를 양산함으로 믿는 자들의 유기적 공동체인 교회의 특성을 파괴하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목회자가 성도들 개개인의 사정을 파악하고 위해서 기도할 수 있는, 목양이 가능한 숫자로 300~500명을 제시해왔다.

교회는 숫자로 성공과 실패여부를 가늠할 수 없으며 복음의 진보를 위해 진력하는 현장, 내가 죽고 예수 생명으로 살기 위해 혼신을 다하는 것이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5. 3대 종교와의 만남 
- 유일 종교의 포부

대안 없는 개혁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 본지는 교회 역사를 통으로 보면서 교회의 나아갈 방향 제시에 힘써왔다.

특히 같은 유일신 신앙을 말하면서 오늘에는 세계 곳곳에서 분쟁과 갈등의 중심에 서있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의 만남의 필요성을 제시해왔다.

우선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 이 땅에 오심으로 대속의 길을 여신 예수의 육화를 제대로 체득하고 제2, 제3의 예수 생명으로 살아냄으로 복음을 삶으로 보여주어야 할 책무가 기독교에 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구속사의 원류인 헤브라이즘의 흐름이 인본주의인 헬레니즘의 탁류에 휩쓸려 혼탁한 현실을 짚고 다시 헤브라이즘의 원류를 찾아가는 걸음을 시작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위해 기독교의 대안을 문학의 마당에서 펼쳐보자는 취지로 2009년 <계간 들소리문학>을 창간해 ‘헤브라이즘의 연원을 찾아서’ 주제로 특집대담을 진행해왔다.

또한 2000년부터 ‘들소리문학상’을 제정해 헤브라이즘 정신에 입각한 작품과 작가를 선정해 상을 수여해왔으며, 3년 전부터는 복음의 본질을 부여잡고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힘쓰는 이들에게 수여하는 ‘들소리 목회·신학상’을 제정해 수상자를 배출하고 있다.

이와 같이 5가지의 개혁과제를 들소리 힘에 부치도록 열심히 외치고 있지만 여전히 대부분 실현이 요원해 보이는 대목이다.

 

# 타협 없는 걸음, 가난은 필연

‘들소리’의 오늘은 교파를 초월한 교회와 성도들의 성원과 동행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40년 걸음 속에서 ‘들소리’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것이 있으니 ‘가난’이다. 혹자는 ‘한 해로 문 닫을 줄 알았는데 해를 거듭하며 생존하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말할 만큼 ‘들소리’의 생존이 주변에는 기적 같은 일로 읽힐 정도로 가난은 늘 들소리의 동행자였다. 

물론 가난이 자랑일 수는 없겠으나 척박한 교계 현실에서 초교파지로서 한국교회가 복음으로부터 멀어진 현실을 가감 없이 지적하고 회복의 길을 제시함에 있어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고 걸어오는 중에 동행되고 있는 가난은 부끄러움이 아니었다. 한국교회 안에서 ‘할 말 하는 언론’으로 자리매김 한 데 있어 가난은 필연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설립자인 조효근 목사는 단 한 번도 ‘사례비’나 ‘월급’ 개념의 재정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으며 통째로 ‘들소리’에 삶을 던지며 살았다.

들소리선교회 설립 당시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 1동 879번지에서 시작해 냉천동으로 이전해 신문을 제작·발행하던 시기를 마무리하고 2004년 종로구 연건동에 사옥을 마련, 소위 기독교 기관들이 모여 있는 ‘종로5가’ 시대를 열었다.

늘 맨손 맨몸의 살림에서 만년셋방살이를 면하고 사옥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은 들소리와 동고동락해 온 교파를 초월한 20여 분의 이사진과 들소리의 걸음을 격려해 주신 많은 교회와 목회자, 성도들의 헌신과 동참이 있어 가능했다.

한국교회가 어려운 때에 본질을 향해 개혁의 걸음을 걸어갈 수 있도록 제시하는 초교파 언론으로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자생력을 가져야 한다는 판단으로 들소리선교사업부를 통해 도서출판 들소리, 들소리 캘린더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많은 분들이 이에 뜻을 모은 덕분으로 들소리 살림에 보탬이 되고 있다.

또한 “독자가 승부처”라는 판단으로 ‘독자관리팀’을 가동해 독자들과의 소통을 원활히 하면서 들소리 운동의 동행자로 함께할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

<복음인in 들소리>는 하나님의 교회다움을 위해 진력하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동반자로서 여러분과 동역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 샬롬!

후원계좌 : 국민은행 010-9656-3375 (예금주 복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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