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신약학회 1월 간담회 | 발제자와 패널자의 토론

1월 20일 오후 1시 서울 연동교회에서 진행된 한국신약학회 1월 간담회에는 50여 명이 참석, 온라인으로 70여 명이 시청한 가운데 제4차 로잔대회에 대한 우려 및 방향, 기독교가 이 시대 어떻게 역할을 할지에 대해 심도있게 대화하는 시간이었다. 발제자 및 패널이 비교적 자유로운 이들이어서인지 냉철한 내용을 그대로 솔직하게 드러냈다. 숭실대 김회권 교수 발제에 이어  오형국 목사(청년신학아카데미)의 진행으로 차정식 교수(한일장신대학교), 김학철 교수(연세대학교), 홍동우 목사(작가)가 패널로 참여해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 오늘의 기독교의 문제점, 또 극복해 나가야 할 부분을 중심으로 의견 내용을 정리했다.

 

오형국 목사(청년신학아카데미)
오형국 목사(청년신학아카데미)

 

 

지금 미국 중심으로

포스트·넥스트 복음주의

담론이 굉장히

주류 학계까지 활발하게

토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 진행 : 오형국 목사 - 이번에 신약학회 임원들께서 아주 대범하고 개방적으로 해 주셔서 굉장히 뜻깊은 신학 간담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오늘 김 회원 교수님의 발제에 대해서 한 분씩 코멘트를 듣고 토론을 이어가겠습니다.

■ 차정식 교수  - 김회권 박사님이 후반부에 중요한 포인트를 얘기를 안 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빌리 그래함 전도협회가 로잔대회 대주주고, 존 스토트 목사님과 중남미 해방 적인 복음주의 신학자들의 기여로 언약의 15개 항 중에 5항과 6항이 여기 들어가고 개인 전도와 구령 사업이 그리스도인들의 사회적 책임과 두 개의 과제가 아니라 하나로 결부된 또 하나님 나라(미시오 데이) 선교 신학의 관점에서 한통속으로 이해된다고 하셨어요. 근데 그게 로잔대회 이후로 50년이 흘렀는데 서구교회나 제3세계 교회나 특별히 우리 한국교회에서 이 5항과 6항이 빛을 발하면서  복음주의를 지향하는 교회 현장에 제대로 적용이 되고 열매를 맺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왔던 선교사님들의  통전적 선교의 전통마저도 제대로 계승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을 언급 해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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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정식 교수(한일장신대)

 

갑질의 위기 속에

차별당하는

그런 차별화를 좀

넘어설 수 있는

세례 신학의 의미 살피는

교육 필요하다

제 페이스북에 로잔대회를 반대하는 이유, 소신을 피력했어요. 인형극은 사실 그 위에서 다 조종하고 있는 거잖아요. 거대한 군중집회나 행사를 봤을 때 피상적으로 보는 그런 단순한 논의가 아니고 구조를 파악해야 됩니다. 정부에서 30억, 한국교회의 헌금과 기부금 30억, 수천 명 참여자들한테 1인당 100~150만 원 참여비 받아 인천에 A급 오성급 호텔 빌려서 호텔에서 밥 먹으면서 행사를 하는 건 우리 한국교회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미자립 교회나 골목의 개척교회, 영세한 교회의 목사들과 성도들을 능멸하는 행위가 아닌가. 그리고 제가 듣기로 미국이나 또 외부에서 들어오는 이번 행사를 통해 유통되는 자금이 천억이니 얼마니 얘기가 있는데 일부 선교 현장에 지원도 하겠고 또 남아공 내에 빚이 있어서 그것도 갚는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개혁 운동으로 50년 전 출범한 로잔대회가 거대한 조직이 되어 그 조직을 먹여살리고 운영하는 운영비로 쓰이는데, 수입 지출 예산이 공개가 되지 않고 투명하지 않다는 것은 문제입니다. 

로잔대회에서 지향해온 가치가 인테그러티(integrity, 온전함), 심플리스티(simplest, 순전한), 휴밀리티(humility, 겸손)인데, 이렇게 거대한 자금이 유통되면서 결국 허장성세의 돈잔치가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대형 군중집회는 우리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그 구조 자체가 극장식 연출이라는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데, 그런 모종의 폐해가 심각한 게 아닌가 싶어요. 한국교회의 미래의 방향, 어떤 활로를 뚫어 나가는데 비판적인 성찰이 전제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  진행 : 오형국 목사 - 네, 지금 로잔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이런 외형적인 행사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 어쩔 것이냐 이런 문제의식이 많이 퍼져나가고 있는데 아주 그 부분을 아주 정확하고 신랄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 홍동우 목사 - 어려운 용어들이 너무 너무 많지만 잘 들었고요. 우리나라 한국의 선교사님들은 구두 복음을 전했지만 그 이면에 이제 컨텍스트(사회 참여)를 했다, 오늘날 로잔 대회도 소위 사회 참여를 통해서 이 컨텍스트를 잘 마련해야 복음 전도가 될 수 있지 않는가라는 그런 문제의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제 통전적 복음이라는 개념처럼 어쩌면 사회 참여는 복음 전도의 순수성을 주장하는 복음 전도주의자들에게 꼭 필요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거든요.제가 CCC 출신이라서 소위 순수 복음 전도주의자들 선배들이 좀 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면 복음 전도를 하기 위해서는 결국에는 선교사로서의 삶, 직장인으로서의 삶을 잘 살아야 되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김회권 교수님 말씀처럼 숨 막혀 죽어가는 이 5항을 살려야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5항은 과연 오늘날 유효한 컨텍스트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선교사님들이 병원이나 고아원을 만든 것 자체가 유효한 컨텍스트가 될 수 있겠지만 오늘날의 우리가 복음 전도를 위한 컨텍스트로 어떤 아젠다가 있을까 하는 문제의식이 있습니다.

■  진행 : 오형국 목사 - 지금 5항을 우리 아직도 금과옥조처럼 여기고 있는데 물론 떠나서는 아니 되겠지만 그것을 좀 더 잘하자는 중요한 안목을 제시해 주셨다고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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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학철 교수(연세대)

 

우리에게 참 삶을

약속하는 그것이

우상인지 살펴봐라.

예술 작품으로서 어떻게

우리 삶을

온전히 구현할 수 있는가

 

■ 김학철 교수 - 모삼열 목사 말씀을 하셨는데, 그는 구두 전도를 했습니다. 그 이유는 구두 전도만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문서나 온라인 구술 문화의 시대인 거죠. 그 당시만 해도 오늘날처럼 문서나 매체가 홍보하고 다양하지 않았으니까요.

아버지 박성춘이 장티푸스에 걸렸을 때 그 백정 마을로 찾아간 사람이 바로 애비슨이었습니다. 세브란스 교장이었죠. 그리고 그 아들이었던 박성춘의 아들이었던 박서양은 백정의 아들이었지만 세브란스 의과대학 최초의 한국인 교수가 됩니다. 10년 동안 봉직하고 왜 끝났냐 하면 만주 쪽으로 넘어가서 우리나라 최초의 군의관이 됩니다. 그래서 독립운동에 헌신합니다. 거기서 병원을 세워 환자들을 무료로 진료해 줍니다. 이것이 한국 최초의 기독교 선교의 역사라고 생각하고, 한국 기독교가 오늘날 뭘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많은 시사점을 둔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 김회권 교수 - 제가 볼 때는 빌리 그래함 전도집회가 지금도 세계 복음주의자의 가장 대중적인 것이고, 지금도 미국에 다니는 13개 주, 미국 남부 주의 그런 신학적 지능이라는 것이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축약된 복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필립 얀시가 <내 영혼의 스승들>, <고통>이라는 책에서 자기나 유진 피터슨이 다녔던 교회를 회상할 때 말도 안 되는 그런 분위기, 너무 약식된 복음, 축약된 복음 가지고 바로 특정한 행동을 몇 가지 하면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특정한 행동을 기독교인이 하지 않으면 기독교인의 본질적인 정체성을 과시한다고 믿는 것이 미국 신자들의 특징입니다. 그러니까 미국 신자들은 아직도 신사도 운동이나 비냐드 운동 같은 이런 대중집회가먹혀 들어갑니다. 독일에 가면 그런 TV 아무도 안 보는데 미국은 그걸 보고 계속 돈을 보냅니다. 우리 한국이 약간 그런 것 같은데, 한국에 있는 신자들은 이렇게 지적으로 수준이 낮지 않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특수한 생화학적 변동이 와서 지능이 한 20, 30 떨어집니다. 놀라운 것은 대학 교수가 아동화가 돼버립니다. 지능 저하를 가져오는 복음성가, 대중집회 분위기가 미국 복음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토양과 흡사합니다. 그래서 한국은 아직까지 대중 집회가 가능합니다. 10만 명에서 20만 명 모입니다. 한국 담임 목사들한테 가서 인구 문제, 청년들이 진짜 예수 믿는 사람들 5%밖에 안 된다는 것을 말하면 아무도 공감을 못 합니다. 대형 교회는 여전히 엄청난 인파가 모이기 때문에 실감하지 못하는 것이죠. 이건 진짜 많은  차이입니다. 동시대 같은 공간에 살아도 사물을 너무 다르게 보는 것 때문에 절망하게 됩니다. 제가 옳다 그분들이 틀리다 이런 뜻 아닙니다. 다만 한국은 아직도 복음주의, 즉 매우 신학적 지성과 지능이 빈곤했을 때 득세할 수 있는 그런 워딩과 그런 레토릭(rhretoric)이 살아있구나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 차정식 교수 - 미국의 교회는 옛날 복음주의 운동, 로잔의 최초의 기상, 70년대 그 당대에 유럽 교회 또 서구 교회가 절박했기 때문에 그런 게 나온 거겠죠. 그래서 거기서 우리가 선한 영향을 받았으면 그 에너지로 선한 활동을 하면서 선한 신앙의 열매, 인격의 열매, 사회 변혁의 열매를 맺는 게 한국교회 위기 담론이 창궐한 이 시점에 중요한 게 아니겠는가 싶습니다. 사실 해아래는 새 것이 없다고 로잔대회 5항에 특별한 게 있겠어요. 성경에 다 나오는 것이고. 우리 서구 교회사를 보면 교회가 어지럽고 혼돈에 빠질 때마다 항상 개혁 운동이 생기고 수도원 운동 이런 반동의 흐름이 있었는데 이 로잔대회가 추구하는 3대 가치가 하나님 나라의 전통을 잘 담아내고 있다고 봐요.그래서 이 수도원 운동할 때 보면 기도와 노동 이게 항상 같이 같잖아요. 제가 인간에 대해서 정신병리학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그랬는데 특히 대중집회 같은 데서 동시에 생물학적인 이해의 관점도 필요하다고 봐요. 

그래서 인간이라는 게 동물이기 때문에 또 한없이 단순하게 보면 등 따시고 배부르면 늘어집니다. 엉뚱한 생각하게 돼 있고 그래서 그 동물성을 감안 할 때 열심히 기도하는 만큼 몸을 써서 하는 노동이 필요해요.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고 하나님 나라의 어떤 핵심 가치를 살아내는 건 의외로 간단해요. 땀 흘려서 땅을 파고 노동하는 현장을 억지로라도 만들어 봐야 해요. 동물학적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인간을 좀 제대로 이해하면 그 틈새의 진리가 보일 거에요.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그나마 그 당대에 뭔가 진정성 있는 가치를 살려서 역사에 큰 획을 그으셨다면, 그 아들이 그 재단을 물려받아 아버지가 지향한 가치마저도 제대로 계승하지 못한 채, 그야말로 좀 미안한 표현이지만 개차반 아닙니까? 근데 그 아들을 모셔다가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 수만 명 모여서 한국교회가 엄청난 대대적인 쇼를 했잖아요. 또 수많은 교회에 돈을 꼴아 박고. 이걸 우리가 미친 짓으로 봐야 정상적인 이성이 작동하는 거 아니겠어요?(거기서도 은혜받고 다 개인의 간증거리가 있겠지만)

홍동우 목사(작가)<br>
홍동우 목사(작가)


 

5항은 과연

오늘날 유효한 컨텍스트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복음 전도를 위한

컨텍스트로

어떤 아젠다가 있을까

 

■  진행 : 오형국 목사 - 복음주의 전통에는 십자가 복음이라는 기독교의 근원적 진리가 있기 때문에 비판을 따로 허용하지 않는 그런 분위기였는데, 그런데 지금 미국을 중심으로 해서주의 포스트 복음주의, 넥스트 복음주의 이런 담론이 굉장히 주류 학계까지 활발하게 토론이 되고 있는 그런 상황에 있고요.그리고 그 복음주의가 전에는 한국과 미국 중심이었는데 이제 남미에서도 과거에 수백만 정도였는데 지금은 1억에 달하는 그런 인구가 복음주의권에 속한다는 그런 조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귀중한 강사님들만 모셨는데 이렇게 뿌리 깊은 뿌리 깊은 복음주의 전통 속에서 지금 지적해 주신 면들이 극복되기 위해서는 어떤 작업이 가능할 것인가 이런 점에서 좀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 김학철 교수  - 유대교 포함해서 기독교의 가장 큰 정신적 능력은 우상 비판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상은 자기가 줄 수 없는 것을 약속하죠. 실제로는 약속하는 주체 자체가 헛것이라고 하는 것이 우상 비판의 골자에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더 어렵다고 하는데 매우 웃긴 얘기입니다. 1955년부터 지금까지 경제 성장률 통계를 보면 1979년 오일쇼크하고 1997년 IMF 이후 모두 다 성장했습니다. 단 한 번도 성장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경제가 문제라고 하고 먹고사는 문제가 더 앞선다고 얘기합니다.한국 기독교가 사회에 공언할 바가 있으면 우상 비판을 실행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는 참인간을 실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 그리스도의 형상입니다. 주로 에베소서 2장 10절에 있는 하나님이 우리를 포이에마(작품)로 만들었다, 삼았다라고 하는 표현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이 지은 작품처럼 잘 살아가는 참 인간을 구현하는 것이고 참 인간을 구현하는 그 과정에 자신이 놓인 정치 역사 사회 구조의 면면이 모두 다 참 인간을 구현할 조건으로 대화상대 혹은 역동적 관계 속에서 재론되는 것을 뜻하겠죠.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신앙 역시 참 인간이라고 하는 온전한 하나님의 예술 작품의 구현 속에서 가능한 것이 아닐까요. 

저는 학교에서 거의 90%에 달하는 비기독교인들을 상대로 기독교를 가르칩니다. 원래 학생들은 공부하는 걸 싫어하니까 특별히 필수는 그래서 싫어하는 학생도 있지만 좀 죄송스럽지만 저는 한 200명 넘게 전도한 것 같습니다. 이 대학에서 한 300명 정도 교회 보낸 것 같은데 예수를 믿으라고 전한 적도 없고 세례받으라고 그런 것도 없고 교회식으로 예수를 위대한 분이라고 선포한 적도 없고 기독교와 예수에 관해서 소개했습니다. 역사적 예수, 기독교의 흑암, 문명이 발전한 그다음에 꼭 십자가 전쟁이 있다는 것들을 가르칩니다. 그런데 놀랍게 학기가 끝나고 2~3명씩 꼭 교회 다니고 싶다고 찾아옵니다. 기독교에 무슨 힘이 있는가, 저는 그 두 가지를 강조합니다. 우상 비판 정신, 우리에게 참 삶을 약속하는 그것이 우상인지 살펴봐라. 두 번째로는 사람이 바로 예술 작품으로서 어떻게 우리 삶을 온전히 구현할 수 있는가. 그것은 개인의 문제일 뿐만이 아니라 아까도 말한 역사 사회 정치 구조의 문제니까 그런 인간이 품은 영원한 질문을 기독교가 답해줄 수 있는 저장고가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려고 노력합니다. 기독교의 쓸모는 사실 쓸모를 묻는 사람들에게 저항하는 거죠. 그래서 저는 그런 면에서 기독교의 쓸모라고 하는 것은 두 가지 초점을 늘 가지고 있습니다.

■ 차정식 교수 - 저는 에베소서 말씀대로 세례도 교육만 잘 시키면 우리가 사회에 가장 큰 난제로 여기는 이른바 차별 문제, 갑을병정의 새로운 계급 사회 속의 갑질한 문제를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우리 기독교 복음의 사회 참여에 굉장히 중요한 방향 중에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어요. 그래서 갈라디아서 3장 27절인가요? 차별이 없다, 인종, 종교, 성별의 차별 또 자유인이나 종의 차별이 없다는 것이잖아요. 오늘날 자본주의 위기가 있잖아요. 항상 갑질의 위기 속에 핍박당하고 차별당하는 그런 차별화를 좀 넘어설 수 있는 세례 신학의 의미. 갈라디아서 3장과 로마서 6장 1절에서 10절까지가 바울 서신에 나오는 대표적인 세례 신학의 구절들이 있는데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으로 세례 교육하기 전에 먼저 이 신약성서에 의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세워주는 세례 신학적인 토대 위에서 교육하는 게 필요하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념적인 이슈에 대해 논쟁이 생겨서 상처받거나 교회가 분열로 치달을 수 있는 이런 위험 요소 때문에 목사님들이 조심하고 그런 것을 가급적 회피하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 신학자들이 좀 여유로우니까 자유로운 발언을 하고, 할 얘기 좀 하면(온라인 채널) 좋겠어요.

■ 김회권 교수 - 김학철 교수님 말씀 중에서 우리가 귀담아 들을 것이 크리찬 특별 계시 용어를 쓰지 않고 하나님의 형상만 가지고도 충분히 대화가 된다는 거에요. 기독교인의 특별 경험에 호소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기독교의 쓸모를 충분히 말할 수 있어야 해요. 미로스 폴퍼가 정확하게 기독교의 쓸모를 이렇게 말합니다. ‘광장에서, 토론의 공론장에서 기독교가 기여할 것이 너무나 많은데, 기독교가 특별계시의 용어 전제주의를 가지고 고집을 피우기 때문에 토론장에도 입장을 못한다’는 거에요. 

■ 홍동우 목사 - 저는 처음에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을 때 그때 들었던 복음 혹은 그때 들었던 설교를 생각해보면 어떻게 보면 천박하다, 너무 얕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근데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사실 여기 모인 분들도 처음 내가 예수를 믿었을 때 생각해 보면 정말 통전적이거나 혹은 깊이 있거나 혹은 김학철 교수님에게 전도된 그런 케이스는 거의 없다고 생각해요. 로잔의 5항이 그 어떤 사람에게도 영향을 주지 못했지만 박철수 강경민, 이문식, 김회권, 고직한, 한철호에게는 영향을 줬고 그 대학생들이 로잔을 계승했다는 말이 굉장히 저한테는 의미 있게 다가왔거든요. 어떤 의미에서 여기 모여 있는 대다수의 분들이 로잔 대회 자체를 굉장히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위에 언급되신 분들과 같은 이들에게 영감을 줄 수도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떤 의미에서 중심지에서 대형 교회가 많은 이 지역에서 우리가 논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조금 안 들릴 수 있는 소리를 계속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1월 28일자 들소리신문
1월 28일자 들소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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